주일 말씀 325

세상의 친구인가? 하나님의 친구인가? (약4:1-12) 2022.03.27

세상의 친구인가? 하나님의 친구인가? (약4:1-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까? 이 질문에서,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①첫 번째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 이거나,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에 대해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분들을 말합니다. ②두 번째 부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만, 그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그런 사람들을 [Follower]라고 부릅니다. ③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친구]로 살다보면,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사..

주일 말씀 2022.03.27

하늘에서 오는 지혜 (약3:13~18) 2022.03.20

하늘에서 오는 지혜 (약3:13~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야고보서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신약의 지혜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읽다 보면, 구약의 [잠언]을 읽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권면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함으로 믿음의 온전함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그 [주제]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지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믿음]은 [지혜]를 만나야, “온전한 행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혜 없는 믿음이 ”얼마나 해로운 믿음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우리의 삶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혜 없는 ..

주일 말씀 2022.03.20

행함으로 온전해지는 믿음 (약2:14~26) 2022.03.06

행함으로 온전해지는 믿음 (약2:14~26)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은 행함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①첫 번째는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다.”는 말씀이고, ②두 번째 말씀은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본문 14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이여, 만일 누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자신을 구원하겠습니까?”(약2:14) 이 말씀은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 있는데, 행함이 없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

주일 말씀 2022.03.06

차별하지 마십시오 (약2:1~13) 2022.02.28

차별하지 마십시오 (약2:1~13)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은 야고보서의 네 번째 시간으로, 지난주에 “경건한 삶”에 대한 말씀이고, 오늘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이여,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약 2:1) [믿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나, [신앙]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가 “주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면 되는데,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어요. ▶왜, [영광]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 그를 거..

주일 말씀 2022.02.27

참된 경건 (약1:19~27) 2022.02.20

참된 경건 (약1:19~27) 말씀: 이재훈 목사님 야고보서에서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은 성도들“과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통해 ”성령님을 체험한 성도들”이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쓰여 진 서신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또 성령님을 체험하는 신앙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공감대 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경건]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건]이라는 단어는 [종교]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앙]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헬라어 원어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의 의미”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 27..

주일 말씀 2022.02.20

우리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이유 (약1:13~18) 2022.02.13

우리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이유 (약1:13-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북극에서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잡는 방법”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에스키모인들은 날카로운 칼에 피를 흠뻑 묻혀서, 칼날을 위쪽으로 향하게 세워서, 땅에 꽂아서 늑대를 유혹합니다. 그러면 어디선가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와서, 칼날을 핥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늑대의 혓바닥이 날카로운 칼끝에 찔려서, 자기도 모르게 늑대는 자신의 피를 흘리게 되는데, 그 피에 더 끌리어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칼날을 핥게 되어, ”나중에는 죽게 된다,”고 합니다. 또 “소를 편안하게 죽이는 방법”으로, 어떤 장치를 만들어서 그 과정을 지나가면, “결국에는 소가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낯선 환경에 처하면 소들이 불안해서 요동치기 때문에,..

주일 말씀 2022.02.13

나무 위에서 만난 친구 (누19:1~10) 2022.01.30

나무 위에서 만난 친구 (눅19:1-10) 말씀: 이재훈 목사님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병이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2018년 1월에,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영국의 메이총리가 국민들의 외로움을 담당할 장관을 시민사회 장관을 “외로움 담당 장관(미니스터 로니리스)”라는 명칭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것은 영국 인구의 6천 500만 명 중, ”그 중에 900만 명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영국 적십자사의 설문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360만 명의 노인이 TV(텔레비전)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하니, 이 외로움은 비록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외로움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삶을 나눌 친구가 ..

주일 말씀 2022.01.30

거꾸로 보는 인생의 지혜 (전7:1~4) 2022.01.23

거꾸로 보는 인생의 지혜 (전7:1~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말씀은 제가 예전에, [러브 소나타]에서 사용했던 [예화]를 다시 인용하려고 합니다. 어느 [부자]가 아들에게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7살 난 아들을 데리고, 가난한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거대한 저택]을 나와서 아들을 데리고, 작은 시골 농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어렵게 사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그곳에 있는 아주 작고 허름한 집에서 이틀 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아들이 가난한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궁금해서, 아빠가 ”아들아, 너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너는 무엇을 느꼈느냐?’고 물으니까, 아들은 서슴없이 대답했어요. “아빠 정말 좋았어요. 우리..

주일 말씀 2022.01.23

다시 새롭게 소명을 따라 (요21:15~17) 2022.01.16

다시 새롭게 소명을 따라 (요21:15~17) 말씀: 이재훈 목사님 미래를 새롭게 열지 못하는 원인은 “과거에 대한 상처와 기억” 때문입니다. 그 중에 “실패에 대한 기억”은 “잠재력을 가로막고, 소명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과거의 상처와 그런 기억”을 치료하지 않고는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거기에 묶여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새로운 미래를 살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실패에 대한 상처”가 있다면, 반드시 치유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치유하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 시작하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회복시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누..

주일 말씀 202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