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친구인가? 하나님의 친구인가? (약4:1-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까?
이 질문에서, 사람들은 세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①첫 번째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 이거나,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에 대해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분들을 말합니다.
②두 번째 부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만, 그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그런 사람들을 [Follower]라고 부릅니다.
③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친구]로 살다보면,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부류의 신앙으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달라집니다.
①우리는 하나님과 [이방인]으로 살아갑니까?
②아니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추종자]로 살아갑니까?
③아니면,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갑니까?, [Friend]입니까?
성경의 인물 중에서 [하나님의 친구]로 살았던 [모세]와 [아브라함]을 소개합니다.
①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친구처럼 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마치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모세의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3: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과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어 주신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입니다.
②하나님께서 모세와만 이런 관계를 맺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하게 친구로 상대하습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라고 하는 성경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렀습니다.”(약 02:33)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른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러졌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아브라함만 그렇겠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친구]로 대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15절의 말씀에서,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가 만일 내 개명을 지키면, 너희는 내 친구다. 나는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의 일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었으니,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다.”(요 15-13-15)
▶여기서 [종]과 [친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먼저, [종]은 [주인]이 시켰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하는 것”이고,
[친구]는 친구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에 의지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능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계획과 지혜를 따르고, 그것이 [하나]가 될 때에, 더욱 [우정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친구인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단지 Follower로써, 따르는 이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야고보] 사도가 권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를 초대하신 이유와, “어떤 마음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1)첫째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정결하게 나가라”는 [정결함]입니다.
오늘의 본문 4장 8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어,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약 04:08)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데,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정욕]입니다.
이 [정욕]은 “정결함을 거슬러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우리를 이끌게” 됩니다.
이 [정욕]은 “관계 속에서 싸움과 다툼”을 만들고,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잘못되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 떼어놓으려고 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의 동조자가 되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할수록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친구]가 되어, [세상의 친구]로서 “사탄과 함께 동역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있는 이 [정욕]이 “옛사람의 영향력”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고, [능력]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세상 가운데 찾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고, 믿게 하심으로,
[성령님]의 일이 끝나는 게 아니고, 예수님과 더 깊은 교제와 연합으로 이끌도록, 우리를 이끄시며 강권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할 때, 반드시 우리 안에서 ”성령님의 시기하심“이 느껴져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친구 관계가 되려고 할 때, 우리 안에서 [성령님]이 작동합니다.
[성령님]이 시기하시는 그 불편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정결함]으로,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①정욕에 이끌려 ”[세상의 친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②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고 살아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때, 중요한 태도는 [겸손]입니다.
오늘 본문 4장 6절 7절의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여러분을 피할 것입니다.(약 04–06-07)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교만] 때문이고, “교만의 끔찍한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교만으로 속게 됩니다.
짐승은 자신이 짐승인 줄 모르지만, 짐승의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자신이 짐승같이 됐다.”는 걸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므로 [겸손]이란 교만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신 안에 교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 안에 이 죄 가운데 엄청난 [교만]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고, 사탄은 그 교만을 이용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만들고, [세상의 친구]가 되어서 자기와 한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단의 도구]가 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교만]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세상의 친구요, 하나님을 대적 하는 편에 서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까?
그것은 [교만]이 자기 숭배이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그 영혼이 겸손한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3) 셋째로, 권면하는 것은 “서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4장 11절의 말씀을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이여,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형제를 비방하거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율법을 판단한다면, 당신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하는 사람입니다.”(약 04:11)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지 않고, 정욕을 따라 행하고, 또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할 때는 반드시 서로에 대한 비방과 판단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최후의 심판자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서 행하는 판단은 어떤 것들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의 동기에 대하여, “최악의 경우로 추정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만이 [온전한 판단자]일까요?
11절에서 그 해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주시 분”도 “심판하시는 분”도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고, 멸망시키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위선과 악을 편견 없이 판단하시는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로 초대하셨습니다.
타락 이전에 [아담]이 에덴동산을 거닐며, 하나님과 대화하였던 그 대화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로 우리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친구]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 동행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정결함]이 필요하고,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판단]이 아니고, [하나님의 판단]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축복이 예비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의 친구]로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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