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부를 통한 시험 (약 4: 13-14~5:1-6) 2022.04.03

다이나마이트2 2022. 4. 8. 23:40
부를 통한 시험 (약4: 13-14~5: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야고보] 사도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서신을 썼습니다.
그들은 핍박 가운데 흩어졌고, 또 삶의 터전을 떠나 흩어졌기에 가난했으며,
서로 분열이라는 시험까지 겪고 있었기에, 편지를 써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로마 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분들은 상업과 농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장사를 하는 [상업]을 했고, 나머지는 땅을 많이 가진 대지주들이 소작농들의 수고를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었는데, 4장 13절에서 17절은 [상인]들에게 주어지는 교훈이고, 5장 1절에서 6절은 [대지주]들에게 주는 책망의 교훈입니다.
 
[야고보]는 그들을 [부자]라고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야고보서의 대상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보면, “주의 뜻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권면으로 해석하는 근거가 됩니다.
 
5장 1절에서 6절에 나오는 이 [대지주]들에 대하여는 “부자들이여”라고 호칭하며, 심한 책망을 하는데, 또 이들은 불신자들 가운데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불신자들이기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들의 착취로 인하여, 가난한 이들이 더욱 가난 속에 시달리게 되는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노예 신분]이었고, 이들에 대한 착취는 “곧 교회에 대한 핍박”이 되기도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들에게는 어떤 권면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책망하는 무서운 경고를 했습니다.
먼저 4장 13절에서 17절의 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상인으로 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세 가지 권면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첫째는, “내일의 모든 일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13-14절에,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지내며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여러분은 생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입니다.“(약 04-13-14)
 
이 말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업가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업에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 자신이 ”모든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잠언 27장 1절의 말씀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내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01) 
 
내일이 나에게 보장된 ”[나의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한 것과 같이, 인생의 짧음을 모르고 하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 권면은 ”교만한 자랑이 사업의 목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장 16절의 말씀에,  ”그런데 여러분은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합니다. 이러한 자랑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약 04:16)
 
사업의 목적이 ”[교만한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허탈하고, 악한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만족시키는 계획이라면, 거기에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업의 목적이 ”공공성에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또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공익이 따라야 합니다.
 
(3)세 번째 교훈은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말입니다.
 
17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약 04:17)
 
지금 야고보 사도가 교훈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둑질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범죄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제/ 5장 1절로 6절의 말씀은 ”부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부자와 가난]에 따라서 4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상태와 영적인 상태로 보면, ①물질적으로도 가난하고 또 영적으로도 가난한 분들이 있고, ②물질적으로도 부유하고, 영적으로도 부유한 분들이 있어요.
 
구약의 [욥]과 같이, 그는 부유했지만 경건했고, 시험도 정말 그가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그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승리를 경험한 사람이고, 또 아리마데 요셉과 같이,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유한 이들이 있습니다.
 
③그러나 정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부유하나, 영적으로는 가난한 이들도 있습니다.
④물질적으로도 가난하고, 영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네 종류의 인생 가운데, 어느 부류의 인생입니까?
 
여기에도 세 가지 교훈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①첫째로, 불리하게 쌓은 재물은 ”결국 자신의 삶을 무너지게 할 것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5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입니다. “부자들이여, 여러분에게 닥칠 고난으로 인해, 슬퍼하며 통곡하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은 썩었고, 여러분의 옷은 좀 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슬어 여러분에게 증거가 될 것이며, 불처럼 여러분의 살을 삼켜버릴 것입니다.”(약 05-01-03)
 
여러분은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는데, 그 재물은 썩었고 녹슨 재물이 되었는데, 그것은 과도하게 축적되어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재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재물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한 재물은 불의한 삶의 증거가 되어서 “심판의 날에, 오히려 정죄의 근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는 금과 음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으면, 녹슬게 되어 있듯이, 그것이 바로 불처럼 삼켜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의한 재물]은 “결코 우리의 삶을 세우지 못하고, 도리어 무너지게 한다.“는 말입니다.
 
②또 두 번째로 ”정당한 품값을 지불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개입하신다.“는 말입니다. 
 
당시에 많은 지주들이 마땅히 주어야 할 [품삯]을 주지 않고, 많은 일꾼들이 울부짖게 하는 그런 불의한 이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고, 개입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③세 번째 교훈은 “의로운 사람을 정죄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말하는 [죽음과 살인]은 진짜로 사람을 죽인다기보다, “법적인 살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적으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상황“을 [비유]로 일컫는 것이죠.
 
당시에 부유한 지주들이 가난한 이들을 [채무자]로 만들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하여, ”노예로 살아가게 하는 일”을 [법]으로 포장되어 시행했습니다. 이것은 생계의 수단을 빼앗았으므로,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하여, “정의로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18세기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어리석은 부자“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17세기 때, 네덜란드는 무역의 황금기로, 엄청난 [부]을 쌓았어요. 
 
그것은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선물로 그 나라가 부유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부유하게 될수록 네덜란드는 큰 딜레마에 빠졌는데, 그것은 술집과 퇴폐주의가 늘어났기 때문이죠. 
 
당시 [렘브란트]가 18세의 나이에 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 부자의 방 안에는 온갖 서류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다 돈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얼굴은 밝지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자의 얼굴에 어두운 걱정이 먹구름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렘브란트]가 18세에,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에 수많은 [어리석은 부자]들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30세가 넘으면서, (그가 유명한 화가가 되면서) 그가 많은 돈을 벌게 되면서, 그 또한 사치하게 되었고, 정숙하지 못한 아내를 만나게 되어, 허랑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고, 결국에는 36세에 그는 파산하게 됩니다.
 
그는 자녀의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죽고, 가난하게 되어, 불행한 인생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이 [그림]은 어쩌면 ”그의 30대의 인생을 보여주는 예언적인 그림이 되었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것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 그 부유함이 찾아오면, “그 부유함을 통한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부], 그 자체”가 아닙니다.
“[부],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 [부]를 얻는 방식“과/ 또 “[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부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부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시는 겁니다.
 
지난 대선일인 3월 9일에, 천국 환송예배를 드린 우리 교회 장응복 장로님이 계십니다.
[의사]로서, 북한에서 전쟁 때 내려와, 홀로 정말 힘겨운 삶을 살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분의 비전은 ”내가 백억이라는 돈을 벌면, 나는 장학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오시면서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한동대학교 비전이 ”배워서 남 주자“이듯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그분은 ”벌어서 남 주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재산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시고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귀하게 실천하는 분들의 삶을 우리가 이어받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