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기는 인내 (약1:1-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부터 야고보서에 대한 말씀을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올바른 교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믿음대로 살아가는 실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라”는 것은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만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이 있고, 그 시험을 이길 때에 참된 믿음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시험을 통해서 인정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믿음이 올바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 [믿음]은 머릿속에만 담겨져 있는 믿음이고,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시험을 통과하여 검증이 되고, 연단이 되었을 때, 그 [믿음]이 바로 우리의 인격이 되고,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3절에서 ”믿음의 연단은 인내를 이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연단]이란 ”어떤 금속을 불에 녹여서, 순수한 물질로 남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이란 ”믿음의 순수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①첫째로, “[연단]의 의미로 사용되는 시험(Test)”이 있고,
②둘째로, ”[유혹]의 의미로 사용되는 시험(Temptation)“이 있습니다.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즉,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① 1- 2절의 내용은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는 연단”으로서의 시험, (테스트)를 말하고
② 13-15절까지는 “믿음을 무너뜨리는 유혹”으로서의 시험, (Temptation)을 말합니다.
같은 헬라어 단어인데, 문맥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첫 번째 시험으로, “믿음을 세우는 연단으로서의 시험”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실제적이고, 견고하게 세우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장 26절에서, “마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약 02:2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장 26절의 말씀에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야고보서] 전체에서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형제들아”라는 호칭이 나오면, “이제 새로운 교훈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라고 이름을 부르면, ”지금부터 형제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신약에 [야고보]라는 인물이 여러 명이 나오는데, [야고보서]를 쓴 저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 형제를 의미하고,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친 형제인 [야고보]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십여 차례 나타나시는 가운데, 형제 [야고보]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난 뒤에, 그가 변화가 되었고,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이제 사도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고 소개합니까?
”예수님의 친 형제였던 [야고보]”라고 소개하지 않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친 형제였기 때문에, 그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그가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전체 주제가 [행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지만,
[바울 서신]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면,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만일에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이라면, ”진정한 믿음인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에서 강조하는 두 가지 중요한 [시험]이 무엇입니까?
①하나는 ”핍박“이요, ②또 다른 것은 ”가난이라는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는가?
이런 시험 속에서, ”어떻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에서 “인내하라”는 말씀은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여기서 [인내]라는 단어를 [영어 성경]에서는 Steadfastness (ESV 번역)인데, “인내가 온전히 역사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장래에 회복될 것이다.”라는 [소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내하라.”라는 말씀은 낙심이 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험]이며, [믿음의 연단]이기 때문에,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성향을 바꿀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냥 참으라.”는 뜻이 아니라,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목적이 있으니,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믿음으로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야고보서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1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시험을 견디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인정을 받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01:12)
또 5장 7-8절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주께서 오실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땅의 열매를 참고 기다리며, 이를 위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기까지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오래 참고, 여러분의 마음을 굳건히 하십시오. 주의 강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약 05-07-08)
이렇게 여러 구절에서, [인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서 전체에서 나타나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인내가 아니라, 인내 그 자체에 맡기고, 참으라.”는 의미입니다.
▶[인내]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인내가 역사함으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종교계 학자들은 이러한 표현들을 가리켜 “성도들의 견인이라”는 [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신자라면, 이 땅에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지만, 우리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또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해서, “끝까지 인내함으로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라는 것, “그게 성도들을 견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때로 시험에 빠지면, ”니의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우리 안에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 인내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6절의 말씀에서,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다시 설명하면,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는 말입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17장 1항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 안에서 받아들이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은 끝까지 은혜의 상태에서 확실하게 보존되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좀 복잡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인내하고 참아내면,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이루는 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낙망하게 되는 건, 나의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내를 통해서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내 속에 역사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온전히 역사하도록 하라.“는 것이고, ”그 [인내]가 우리 가운데 역사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버텨서 인내하는 그런 차원의 인내가 아니라,
우리의 견디는 능력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역사하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인내해야 하는지?”를 세 가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교훈은 야고보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1)첫 번째의 교훈은,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1장 2-4절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내 형제들이여,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러분의 믿음의 연단은 인내를 이룹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온전하고 성숙하게 돼, 아무것에도 부족한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약 01-02-04)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믿음]이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그럴 때, 믿음이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요, 역사를 이루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반드시 사단이 공격을 받으니까, 그 시험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험이 올 때에, “그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시험] 그 자체는 기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에 근거하여, 계산하면, “우리는 기뻐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험을 [믿음의 시험]으로 만날 때, [인내]가 만들어지고, 그 인내가 온전히 역사하면 우리가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히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2)두 번째/ 인내의 자세는 “부족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5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주실 것입니다.”(약 01:05)
▶첫 번째로 “인내를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왜, 부족한 지혜를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다른 주제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의 [지혜]는 “잘못하지 않기 위해, 지혜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내로 시험을 통과할 때, 필요한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험 가운데 온전히 기뻐해야 될 이유를 발견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시험 가운데는 [판단력]이 중요한데, 잘못 선택해서 더 큰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시험 가운데 가장 많이 빠지는 잘못은 “잘못된 선택으로, 또 다른 시험이 오고,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의 유혹은 이런 [시험의 연단]을 피해야 합니다.
그런 [연단]을 통과하지 않고, 도망가려고 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면, 더 큰 위험이 옵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그런 [유혹]이니, 그럴 때에 [지혜]가 필요하니, ”믿음으로 구하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왜, 당황합니까?
그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장 13절과 17절을 이어서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한 행실을 통해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위를 보이십시오.”(약 3:13)
17절에, ”그러나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무엇보다도 성결하고, 또한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약 03:17)
이렇게 이 지혜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셋째로/ 인내의 세 가지 태도 중에서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영적 위치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9-10절을 같이 읽으십시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는 자신의 높은 위치를 자랑하고, 부자는 자신의 낮은 위치를 자랑하십시오. 이는 부자는 풀의 꽃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01-09-01)
①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며 인내하라”고 했고,
②“부족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며, 인내하라.”고 했는데,
③이제 세 번째로, 가난한 형제와 부한 형제에게 “영적위치를 자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갑작스럽게 [주제]가 변하는 것 같지만, ”가난함과 부유함의 문제“도 야고보서 전체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서론에서 말씀한 대로,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이 “지금 가난하다.“는 [시험]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하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성도나 부유한 성도에게 평행을 이루는 교훈을 주시는 겁니다.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자랑하라?”라고 권면하는데, 무엇을 자랑합니까?
①가난한 자에게는 “자신의 높은 위치를 자랑하라.”고 하고,
②부유한 자는 “자신의 낮은 위치를 자랑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아주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①첫째로/ 가난한 성도에게 높은 위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난한 자체를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높은 영적인 위치에 하나님께서 바라보실 때 “얼마나 존귀한 존재로 여기시는가?“ 그것은 그 높은 영적 신분을 기뻐하고, 자랑하라는 것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②또한 부유한 성도에게는 “낮은 위치를 자랑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부유함 자체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낮은 위치이니까, 성경은 절대로 그 부유함 그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인생에 대한 평가를 재물에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인 위치에 두고 “기뻐하라”고 하니까,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모두 시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가난에서 빠지기도 하고, 부유해 지기도 하는 시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높은 위치를 잃어버리게 되고, 부유한 자는 세상과 함께 덧없이 사라질 재물의 낮은 위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참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영원한 나라에 있으니, 그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야고보서]를 읽는 성도들이 직면한 시험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은 ”인내를 통해서 온전해 지고“, ”인내가 시험을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 빛 속에 견디어 내야,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반대로 여름의 태양 볕 아래에서 견디지 못한다면, ”견디는 인내가 없다”면,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인내를 통해 온전해 진다.“는 아시기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 우리는 인내를 통해서, 성숙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오늘, 야고보서 말씀에서 ”시험 가운데서, 인내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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