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사냥꾼의 덫에서 풀려난 새처럼 (시124:1~8) 2025.01.10

다이나마이트2 2025. 1. 11. 23:42

 

사냥꾼의 덫에서 풀려난 새처럼 (시124: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는 꿈이나 자신의 체면 때문에, 착각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여러 번 자신의 편에 서서, 일하고 계심을 체험했고, 
또한 자신의 삶을 통해서 미래에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예측 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124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라“고 부정적인 가정법을 사용해서,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을 두 번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분노에 불을 지폈을 때, 그들이 우리를 산 채로 잡아먹었을 것이고,
홍수가 우리를 삼키고, 급류가 우리 영혼을 덮치며, 넘쳐 일어나는 물이 우리 영혼을 휩쓸어 갔으리라.”(시124:3~4)
 
①첫 번째 표현은/ 사람들을 공격하여 산 채로 잡아먹는 굶주린 야수에 의하여, “희생되었을 것이다.“고 말씀하는데,
어떤 분은 이 구절을 ”지진 같은 재해로 인해 희생되는 경우“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②두 번째 표현은/ 홍수로 인한 급류가 다 삼켜버리므로 ”순간에 폐허가 되는 상황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영혼까지 휩쓸어 간다.“는 표현입니다.
 
[다윗]은 그가 위협 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①그는 야수에 의해서 삼켜지는 희생을 당하거나, 
②아니면, 홍수에 휩쓸려 가는 ”희생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①우리의 대적, 곧 사단 마귀는 굶주린 야수처럼, 무리를 삼키려 하고, 
②홍수의 급류처럼, ”우리를 휩쓸어 버리려고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상대할 [적]은 [마귀]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원수 마귀와 맞서 싸우는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면, 
①우리는 원수 마귀의 먹이가 되고, 
②그 마귀에 의해서 희생되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마귀를 대적할 수 있도록, 
우리를 경고해 주시고, 우리 편이 되어 주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에 대해서, 두 가지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1)첫째로/ 마귀의 존재를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된 태도입니다. 
우리 생활에 “곳곳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무시합니다. 그것은 
 
①끔찍한 살인 사건들을 일으키고, 
②수많은 대참사가 발생하고, 
③영적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④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마귀]가 일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 [잘못된 태도]는 모든 것을 다 마귀와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①감기가 걸려도 “[감기 마귀]가 걸렸다.”고 말하고, 
②내가 원치 않는 모든 일들은 “다 마귀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①마귀는 전능하지 않습니다. 
②마귀는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접근합니다. 
③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대상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④마귀는 언제나 유혹할 대상을 찾고, 누구나 유혹합니다.
⑤마귀는 어디든지 부지런히 찾아가고, 일합니다.
⑥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접근합니다.
마음에 병든 자, 영적인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자,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어떤 사람은 [유다]처럼 돈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삼손]처럼 성적 유혹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노아]처럼 술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약함을 알고 공격합니다.
 
⑦마귀는 점진적으로 유혹하며 공격합니다.
처음부터 마귀는 울고 다니지 않고, 조용히 접근하고, 한 단계씩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런 [마귀의 유혹]을 다 통틀어서 한마디로, 
7절에서는 ”[사냥꾼의 덫]이라.”고 표현합니다.
 
“새가 [사냥꾼의 덫]에서 나오듯, 우리의 영혼이 벗어났구나.
새 덫이 부수어져서, 우리가 벗어났도다.”로 기록되어 있으니, 
“덫이 끊어짐으로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6절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먹이로 내주지 않으셨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대적의 먹이로 내주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새가 사냥꾼의 덫에서 나오도록,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덫]이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그물]을 사용해서, 새를 잡았다.“는 벽화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의 영혼은 여러모로 새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새]와 같아서, ①연약함, ②어리석음, ③쉽게 유혹당하는 [새]와 같아서, 
[마귀]는 “새를 잡는 사냥꾼처럼, 그물로 우리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 걸리면, 스스로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 [덫]에서 “탈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사냥꾼의 덫에 걸려 있는 새처럼, 스스로 자유하지 못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그것은 “참 자유롭다.”고 느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중요한 선물이 [자유]입니다.
 
우리는 [그물]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은 “[죄의 종]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겉으로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냥꾼의 덫에 걸린 죄의 종”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애매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지만, 실상은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떤 때에 [자유]를 느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을 지킬 때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물고기는 바다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육지 동물은 육지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존재할 때,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것을 깨뜨렸기에, [죄의 종]이 되었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있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본능을 따라 사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자유해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죄의 종 된 상태“에서 자유케 되는 길을 말씀하셨죠.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있는 인간)이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진리를 알고(= 진리 대신 예수님을 알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영적인 법칙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자유를 계속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십자가]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진리에 우리가 온전히 순종할 때,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냥꾼의 그물”을 찢어버린 사건입니다.
그런데 사냥꾼의 그물이 찢어졌는데도,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새들은 날아갈 줄 모릅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죄의 종]으로 살았기에, 그물이 찢어져서 날아갈 수 있는데도, 
그물 안에 거하는 것이 익숙하기에, 그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길”을 이렇게 설명하죠.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만족을 위한 기회로 삼지 말고, 도리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한마디 말씀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삼키면, 피차 멸망할 것이니 조심하십시오.”(갈5:13~15)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랑을 따라 [서로 종노릇]을 할 때, 
(= 놀랍게도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물어뜯고 삼키면, 피차 멸망할 것입니다. 
이게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의 모습“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서로 물어뜯고 삼키면, ”피차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우리의 자유를 찾아,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것, 
그 [진리의 핵심]은 여도 야도 서로 함께 “서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2025년 한 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쓰임 받는 귀한 백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