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푸른 초장에 눕혀진 양처럼 (시23:1~6) 2025.01.07

다이나마이트2 2025. 1. 8. 21:48
푸른 초장에 눕혀진 양처럼 (시23: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시편 23편]은 모든 시대를 뛰어넘어,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말씀”입니다.
어떤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두 가지 체험을 통해서, ”이 글을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①첫째는/ “목자로서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가 직접 양떼를 몰고 나가서, 물가로 인도하고, 양들을 풀밭으로 인도하는 목자였습니다.
때로는 서늘한 산등성이로 인도하여 바람을 쐬게 하고,
골짜기를 지날 때는 그 양떼들을 위험에서 보호하려고 막대기와 지팡이로를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그가 그 목자의 체험을 양 된 입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어떠한 목자가 되심을 고백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②두 번째는/ 그 너머에 있는 “인생의 체험”을 겪은 것입니다.
 
[다윗]은 양의 모든 행태를 우리 인생에 적용하여, 이 글에서 대입시키고 있습니다.
그에게도 “평안한 인생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는 많은 원수들을 대적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잘못을 해서 원수가 생겼다기보다는, “다윗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생긴 대적들입니다.
그래서 더 억울했고 힘들었을 겁니다. 
 
그가 황혼기에 접어들어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과 평안, 하나님의 인도하심, 특별히 하나님의 돌보심을 되돌아보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의 힘]을 잃어버리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서 의심하고, 염려할 때, [영혼의 힘]은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한 것이 없다.”는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시니, [우리]는 ”그분의 양이라.“는 거죠.
[이사야] 말씀에도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인간의 본성과 습관을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을 살펴보면,
①[양]은 아주 완고하고, 고집이 셉니다. 
②[양]은 두려움이 아주 많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어떤 스포츠 팀이든, [양]을 마스코트로 쓰는 팀은 없습니다. 봤습니까?
 
③[양]은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적으로 의존적이라.“는 겁니다.
다른 동물들은 스스로 생존하지만, [양]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설 수 없고, 위험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냥 혼자 두면,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헤매다가 죽는 연약한 동물입니다.
 
④또한 [양]은 ”매우 근시안 적인 눈으로, 바로 “앞밖에 보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양]은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앞에 가는 양의 뒷꽁무니를 따라가는 습성으로,
낭떠러지로 가면 그냥 같이 가서 떨어져 죽습니다.
 
⑤[양]은 사람과 같이, “군중 심리에 이끌려 가는 동물”입니다.
많은 양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돌이킬 수 없어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양이라.”는 고백이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상태]를 잘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 23편]에서는 “그분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눕히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목자]가 존재하기에, [양]은 눕혀질 수 있습니다.
[양]은 배가 부르고 평안함을 느끼지 못하면,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양]이 누웠다.“는 것은 ”평안함과 안정감이 들었다.”는 것이죠.
그것은 [목자]가 있기 때문이고,
2절에서 “그분이(목자가) 나를(양들을) 푸른 초장에 눕히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시23:2)
 
[양]들을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양]들이 ”[목자]의 돌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절에 와서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렇게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있던 양들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시23:3)
이 [말씀]에서, “뭔가 회복이 필요한 상태”를 말하고, 
그 [길]은 [의의 길]이 아니고, “올바른 길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니,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이 지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니까 구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회복]이라는 것은 
”뒤집어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빨리 소생시켜야 합니다.
 
 
[양과 목자]라는 책을 쓴 [필립 켈러]라는 분은 실제로 양을 치는 목자의 경험을 다년간 하면서,
[시편 23편]을 해설한 책을 썼습니다.
 
[양]이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사람처럼 한 번에 넘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구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르다가, 네 발로 똑바로 서는 양은 없고, 그냥 뒤집어진 상태로 있습니다.
 
[양]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여, 내버려두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넘어진 [양]을 일으켜 세워주는 [목자의 수고]를 3절에서 고백하는 겁니다.
 
4절에서는 더 심각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를 지날 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시23:4)
 
때로는 [목자]가 푸른 초장을 인도할 때, 그곳으로 오고 가는 길에 [골짜기]가 나옵니다.
들판이 모두 다 [푸른 초장]이 아니기 때문에, [골짜기]에 빠지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목자]는 불가피하게 막대기와 지팡이를 쓸 수밖에 없어요.
[목자]가 자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해서, 양들을 때리는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푸른 초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어둡고 위험한 죽음에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골짜기를 지날 때,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골짜기가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때로는 우리를 때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리시고 치시는 까닭은 
“더 위험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시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럴 때는 “하나님이 나를 치시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나를 보호하려는 [사랑의 손길]”로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양]처럼, “근시안적인 인간”이기에, 그 너머의 위험을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때리신다.”고 느끼면, 그러면 감사하고, 
“나를 더 큰 위험에서 보호한다.”는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생각하시시오.
 
5절에, “주께서 내 적들 앞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칩니다.”(시23:5)
 
이 구절에서 [시편 23편]은 절정을 이루고 있어요.
[주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에서, “내 잔이 넘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를 채워서, 부족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고,
죽음에 그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를 지날 때, 위험에서 건져주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렇게 “차고 넘치게 하심”으로,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적들 앞에서, 나에게 상을 베푸신다.”는 겁니다.
 
이 원수 된 적들 앞에서 베푸시는 상 이것은 잘했을 때 주는 프라이즈,
잘했을 때 주는 그런 상이 아니라 밥상 테이블입니다.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베풀어 주신다.”는 거예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원수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면 우리는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워하면서, 평정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수가 앞에 있는데, “내 앞에 상을 베풀어 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에게 “얘야, 신경 쓰지 말고, 나랑 식사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우리가 원수 앞에서, 하나님과 식사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 식사하는 이 잔치로서 우리가 넘치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루를 시작한다면
원수의 목전 앞에서 우리는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믿습니다.
원수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수가 앞에 있어도 여유 있게, 하나님과 식사하는 거예요.
 
6절에서, “내 평생의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진실로 나와 함께하실 것이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시13:6)
 
평생에 이런 [하나님의 목자 되심]으로, 돌보심이 나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①푸른 초장에 있으나, ②길을 잃었을 때나, 
③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때나, ④원수의 목전에 있을 때나,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까?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양으로서, 그분의 돌보심”을 경험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 함께 주어지는 것이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러니까 목자 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우리가 의지하여,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따라가는 저희들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