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오늘 낙원에 거할 준비가 되었는가? (눅23:33-43) 2024.03.28

다이나마이트2 2024. 3. 29. 09:54

오늘 낙원에 거할 준비가 되었는가? (눅23:33-43)  말씀: 이재훈 목사님
 
누구든지 죽음의 목전에서 [마지막 말]을 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진실”일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일곱 마디의 말씀[= 가상칠언]은 예수님의 진심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말씀으로, “[용서의 기도]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만 하신 것이 아니라, 반복하여 여러 번 기도를 하셨습니다.
골고다에 이르는 [비아둘로사]라는 마지막 고난의 길에서도, 기도를 하셨고, 못 박히는 순간들에도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떤 기도가 나올까요?
아마도 우리는 ”심판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판을 구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자신을 못 박는 이들에게도 임하여 주실 것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을 때,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 가운데, ”[한 죄수]에게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오늘에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이들의 외침“이 나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했다지?“라고 유대 지도자들이  조롱을 했고, 
”자기가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이라면, 자기도 구원해보라지?“라고 군인들도 조롱했고,
또 ”네가 유대 사람의 왕이라면, 어디 네 자신이나 구원해 보라.“고 죄수들도 조롱했습니다.
 
▶ 누가, 왜, 이런 조롱을 했을까요? 마가복음 15장에서는 
”좌우에 못 박힌 죄수들이 함께 조롱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서, ”그중에 [한 죄수]가 변화되었다.“고,
그리고 다른 죄수를 책망하면서, ”예수님께 구원을 간청했다.“는 기록이 나온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0- 42절에, “그러나 다른 죄수는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너도 똑같은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마땅히 받을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잘못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눅23:40-42)
 
여기서 [한 죄수]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는데, 
▶여기서 [한 죄수]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변화가 생겼나요?
그것은 [그 사이에] ”예수님의 기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용서의기도“를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한 죄수]는 기도를 어떻게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붙어서, ”옆에서 못 박혀 있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기도]는 어쩌면 조롱하는 유대 지도자들과 군병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곁에 있었던 [죄수]의 귀에는 이 [용서의 기도]가 들렸던 것입니다.
 
[용서의 기도]가 ”성령님의 도구“가 되어, 그 영혼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용서의 기도]에 응답하신 사람이 ”십자가상의 한 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두 죄수 사이“에 매달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역사에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군병들은 아무 생각 없이 ”두 죄수 사이에“ 예수님을 세웠지만, 
이사야 53장 12절에,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두 죄수 사이에 두신 것은 ”단지 범죄자로 여김을 받도록 하신 것“만이 아니라,
[한 죄수],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용서의 기도]를 듣고, 변화된 [죄수의 간청]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나요?
43절에,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영혼에게 구원이 임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이 [용서의 기도]를 듣고, 변화된 죄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①첫째로, 그가 간구하는 [예수님의 상태]가 기적을 베푸실 때가 아닌, ”연약한 죽어가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②두 번째로, 주변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이고,
③세 번째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적은 지식만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이것은 자신이 구원을 간청하는 그분이, 자신과 똑같이 못 박혀 있는 상태인데도,
그분에게 구원을 간청한다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고 [죄인 됨]을 고백하고,
그러니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한 죄수]가 ”기억해 달라.“는 겁니다.
 
그는 ”구원해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기억해 달라.“는 것은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의 요청]에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대답합니다.
 
이 [응답]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죄수]는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기억] 정도가 아니라,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죄수]는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언급했지만, 
”아직 확신이 없는 그 나라“를 막연히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곳이 낙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바로 오늘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죄수]가 간청한 것에 ”더 넘치는 은혜“로 임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수]가 죽기 전에, 먼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낙원에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이 상황을 두고,
”이 땅에서 우리 주님의 마지막 친구였던 [이 사람]은 천국 문에서는 예수님의 첫 친구가 되었다.“고
매우 위트 있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이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응답되었습니다.
거기에는 ①유대 지도자들의 모습 속에, ②군중들의 어리석은 모습 속에, 
③빌라도의 비겁한 모습 속에, ④유다의 탐욕스러운 죄악의 모습 속에,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또 예수님 곁에 있었던 [한 죄수]의 모습 속에, 우리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 오늘 우리가 주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 마지막이 올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생각하고, “주와 함께 낙원에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지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주와 함께 낙원에 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가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를 들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용서의 기도]에 응답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 모두의 [정체성]은 [단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용서받은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용서의 기도]가 우리 자신과 이웃에게 응답되는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