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눅22:39-46) 2024.03.26

다이나마이트2 2024. 3. 26. 13:37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눅22:39-4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예수님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예수님의 고뇌를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①41절에서, ”땀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알고 계셨고, 
또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②”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라는 기도는 우리가 오해 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할 수 있거든, 내게서 거두어 달라.“는 [잔]은 ”죽음의 잔“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죽음의 잔“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재가 깨어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③예수님께서 육체적인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신 7마디의 마지막 말씀,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는데, 죽음을 향한 ”외마디 소리“이고,
죽음을 이기는 ”승리자의 절규”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
”하나님과의 연합“이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④그래서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바, 사박다니.“(아버지, 아버지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버리심]은 죽음으로 인한 [버리심]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끊어짐]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죽을 지경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런 표현은 [불평]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심으로 인류를 사랑하시고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라는 [감탄]인 것입니다.
 
오늘, [겟세마네의 기도]는 육체의 고통과 죽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더 고통스럽게 여기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단지 [패션 오브 더 카이스트]라는 영화에서 보인 것처럼,
온 몸에 피가 흘려지고, 몸이 찢어지는 고통만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십자가] 고통의 진실“인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잘 관리해야 되겠지만,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하며, 우리들의 삶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오래 사는 것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여 불순종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금지된 선악과]를 먹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피할 수 있는 [죽음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온전히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에 집중하셨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다가올 시험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하여 승리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