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그리스도의 대위임령” (마28:16~20) 2024.01.20

다이나마이트2 2024. 1. 20. 23:08

 “그리스도의 대위임령” (마28:16~20) 이재훈 목사 

16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 주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17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뵙고 경배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
18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6~20, 우리말 성경)


교회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인 증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체계를 가진 집단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을 만난 이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증거를 가진 일들을 증거하는 

이들이 계속 나타난 것이 교회의 역사입니다. 

명칭에 갇혀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질믄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신앙관이 필요합니다. 


증인이게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정직성입니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않았고 만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를 만난 교회가 맞는가하는 심각한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분열과 다툼으로 분열된 교회들… 
그런 것들이 예수를 만난 증거인가?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께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가 증인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두번째는 담대함입니다. 
증인의 증거로 인해 잘못된 생각이 바뀌고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진실이라면 위협과 피박에서도 침묵하지 않는 담대함이 증인에게 필요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증인은 곧 순교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인정되기 전에 엄청남 핍박이 있었고 증인됨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순교하여야 했습니다. 
주님이 한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배반하겠는가? 

증거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불러옵니다. 
세상은 창조를 증거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종교다원적인 시대에서 오직 주님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사회가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진리를 타협하는 비겁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직성과 담대함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참인가? 
세상에서 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주님은 최초의 증인들을 세우기 위해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당시에 많은 엘리트들이 있었지만 학식이 적은 어부들을 초기에 왜 증인들로 삼으셨을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게 위해서입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떤 부류의 사람을 뽑을까요? 
최초의 증인들을 주님은 어부그룹에서 뽑았습니다. 
왜 어부인가? 
적어도 어부는 한마리 고기를 잡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하여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해야하는 지를 아는 사람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수고를 하여야 하는 지를 체험적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부들이 어떻게 고기를 더 잡을 수 있을까하고 의논했습니다. 
더 잘 잡기 위해 세계 어장으로 가서 고기잡이를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가지 하지않은 것이 있었는데 직접 고기를 잡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우리의 모습입니다. 

고기를 잡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어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난 40일 던졌던 영적 도전을 드립니다. 
적어도 나는 한명을 전도는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년 새벽기도가 시작될 때 전도한 것을 감사하는 그런 기도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유람선과 같은 교회와 군함과 같은 교회입니다. 


군함과 같은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각자 자기의 일을 감당합니다. 

유람선과 같은 교회는 성도들이 참관자 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인가 유람선인가, 군함인가? 

사도행전적 교회는 군함과 같은 교회입니다. 
군함은 명령에 따릅니다. 

교회의 위기는 명령을 잃어버렸을 때 다가옵니다. 
명령을 붙잡고 살아가는 교회는 위기를 돌파하고 나아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휘관의 명령입니다. 
군인은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1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실 것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내가 엄숙히 명령한다.
(디모데후서  4:1, 우리말 성경)

자기를 부른 명령권자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에 순종할 때 정체성을 잃지 않게 됩니다. 

부활하신 후 주님이 이제 승천하십니다. 
그 모습 앞에서 제자들이 경배합니다. 경배하는 모습으로는 처음으로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의심하는 자들을 구별해 내지 않았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여전히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주님이 명령하십니다. 

명령에는 3가지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부분입니다. 

18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마태복음  28:18, 우리말 성경)

그것은 예수님 자신에 대한 선포입니다. 

모든 권세가 주님께 주어진 것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얻은 구원을 통해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누구의 명령인가가 중요합니다. 
모든 권세를 받은 분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 안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늘의 권세가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제자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9~20, 우리말 성경)

4복음서 모두에 지상 명령이 나오나 강조점이 약간 다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 강조됩니다. 
가라,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 가르쳐 지키게 하라. 

왜 가는가? 제자 삼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주라!  세례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양육하는 것입니다. 

가고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는 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공동체 어디에 있든지 예수 제자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3전째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20, 우리말 성경)

현재형입니다.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주님과 상관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선교를 제외하고 예수님의 임재를 항상 논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예수님의 임재입니까?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주님이 동행을 하시는 것을 약속한 것은 선교를 함께하시기 위함입니다.

임재의 약속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야합니다, 


울리암 보덴이라는 선교사는 백만장자의 상속자였습니다. 
세계여행 중에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증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집에 편지를 합니다, 선교사로 살기를 선포합니다. 성경책에 ‘남김없이  드리리라’라고 씁니다,. 

그리고 예일 대학에 입학해 전도합니다. 전교생이 1300명인데 1000명을 전도합니다. 

예일 대학의 영적 최고의 전통을 세웁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선교사로 삽니다. 

성경책에 ‘물러서지 않으리라’하고 추가합니다. 
무슬림에 전도하기로 헌신하고 중국으로 향합니다. 
이집트에 머물러 언어를 배우다 전염병이 걸려 26살의 나이게 천국으로 갑니다. 
성경에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추가로 적습니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누가 보덴의 삶을 가치 없는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영원한 그리스도의담대한 증인으로 산 것입니다. 
그는 26살의 생을 살고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후회없이 많은 이들을 전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들입니다. 온누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