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내 안에 있는 유다의 배신 (눅22:1~6) 2024.03.25

다이나마이트2 2024. 3. 25. 08:23

내 안에 있는 유다의 배신 (눅22:1~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난주간]은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옛사람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을 처형으로 끌고 갔던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입니다.
이들은 그저 예수님을 죽이려는데 골몰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 너머에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의 핵심인 “유월절의 어린 양”은 [예수님]이고,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함]을 아시고, 유월절에 대속 제물이 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했기에, 섣불리 예수님을 체포하고 재판에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조용히 예수님을 비밀리에 체포하고,
하룻밤 사이에 모든 재판을 다 끝내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을 체포하려면 “누군가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측근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얼굴을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가룟 유다]가 그 역할을 하고, 예수님을 넘기는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돈을 받고 팔아넘김으로써,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원래 “영광스러운 이름”이고, 그 뜻은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다 족속]이라는 이름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칭송받던 [유다]라는 이름이 [가룟 유다]로 불려 지게 된 것은 ”가룟 지방의 출신“인 [유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이렇게 ”악한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유다 복음]으로 나돌았고, 
그것이 위조문서로, [가짜 문서]라고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나타났을까요? 
그것은 유다의 배신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악]을 행하도록, 충동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유다]는 예정된 희생자가 아닙니다. [유다]는 그가 움직임으로 [표적]을 알려 준 것이고,
그를 체포하도록 역할을 분담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강제적으로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탄을 초청하고, 사탄이 자신을 돕기를 바라며,
사탄을 환영할 때, 우리가 [배신자]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탄]을 초청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때로는 그것이 죄악임을 알고도,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므로, [악]을 행하고, 사탄이 동조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따랐다.“고 하는데, 그것은 합리화하는 말입니다. 
 
[정치적 신념]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의 희생적인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에게서는 어떠한 자기의 희생적인 모습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다 아셨지만, 차곡차곡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시며, 
”유월절 어린 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고난주간]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옛 사람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죽음에 넘겨지는 체험을 하는 주간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유다의 배신]“을 묵상하며,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