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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그 진리와 하나님 나라 (고전1:18-31)

다이나마이트2 2023. 4. 4. 20:17

십자가, 그 진리와 하나님 나라 (고전1:18-31)   말씀: 이주연 목사님
 
[고난주간]에,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고난을 받으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선 마태복음 26장 36절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직전에, 하신 행실을 보면,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거기서 간구한 내용을 보면, “우리의 주님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시고, 세상에 오신 빛이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오르신 곳이 어디입니까?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누구와 함께, 무엇하러 갔을까?”를 묵상하면, 예수님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궁이 아니고, 습관을 따라서 [겟세마네]에 가셨고,
거기에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완전한 사랑을 이루는 [십자가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을 만났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사십니까?
우리가 따르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분이 예수님입니까? 자문해 보십시오.
 
▶그 때, 예수님은 누구와 함께 가셨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거기에 [다른 이]는 없습니까? 
예수님과 함께하는 이들은 [제자들]밖에 없습니다. 
혹시 [동업자]를 데리고 갔습니까? 예수님 곁에는 처음부터 동업자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의 재물로, ”진리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께서도 동업자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데, 동업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이외의 방법이 있습니까?
그 외에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길 외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말고, 또 어느 누구도 데려간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하]들을 거느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코 부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칼과 창으로는 진리를 이룰 수 없으니까, 예수님은 부하가 없습니다.
 
군사력으로는 원수까지 사랑할 수 없으니까, [부하]가 필요 하지 않고, 예수님은 오직 제자들만을 두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오직[ 제자만]을 찾고 부르셨습니까?
그분 자체가 길이고, 진리이고, 자체가 생명이고, 자체가 빛이시기 때문에, 어둠이 없고, 거짓이 없고,
그릇됨이 없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우리는 그분이 이룩한 진리를 우리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제자가 된다면, 그분이 가신 길을 우리도 갈 수 있고, 그가 넘어간 [십자가]도 우리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제자인가?”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여러분들과 내가,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그 누구든지, 진정으로 우리가 참된 제자가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유사 크리스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자]가 아니라, 단지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일 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치유를 받고 은혜를 입었지만, 10명의 나병 환자 중에 9명은 다 떠나 버리고, 한명만 남은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9명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한 명에 속한 사람입니까? 
그가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새 신자든지 간에, 누구든지 [제자]일 수 있고,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제자]이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부르시는 것은 “우리를 [제자]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동업자]도 아니고, [동지]도 아니고, [부하]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경꾼]도 아니고, [추종자]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제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에게는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함께 나눌 때, 우리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청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는 “주와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자]는 주님 곁에 머물러, 그분과 함께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함께 있으면서, 깨어 있으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육신에 의지하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이용하고, 이용해 먹는 사이가 아니라,
“그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좀 더 멀리 떨어지셔서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거기서, 예수님이 보이신 [기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그의 [얼굴]이고, 그의 [머리]입니다.
그런데 가장 낮은 [흙, 바닥]에 머리를 파묻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자복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흙이 묻을까봐, 무릎을 꿇지도 않고, 서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①예수님은 조용한 곳에서, 골방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②그 시간은 ”절대 고독의 순간“이고, 기도하는 자에겐 반드시 필요한 시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 고독의 순간이 왔을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홀로] 기도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자기 스스로 홀로 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지기 전에,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자신의 십자가]를 제자들에게 맡길 생각이 전혀 없었고, ”도와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에 ”하늘 아버지께 뭐라“고 기도하셨습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어요.
 
▶이 얼마나 [연약한 기도]입니까? 그러나 그 [진실]은 연약한 거예요. 
[진실한 사람]은 부드럽고 연약해요. 살아있는 생명과 살아있는 영혼은 연약한 거예요. 
 
▶왜, 그럴까요? [죽은 것]은 굳어 있고, [죽은 것]은 딱딱해서 연약하지 않습니다. 
죽어 있는 나뭇가지는 둔탁하고 쉽게 부러집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은 다 연약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잘 휘어집니다.
 
예수님은 이념이나 분노에 찬, [광신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속에 물 들은 세상의 [혁명가]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는 혁명투사의 피와 다릅니다.
[예수님의 피]는 진리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흘리는 “사랑의 피“입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게 [십자가의 길]이고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연약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애절하게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용기와 단호함으로, 절대 복종의 마음으로,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마음으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순교의 역사이고, 믿음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런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온누리 교회도 그렇게 [순교의 역사]를 써 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어둠 속에서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우리 온누리교회가 얼어있는 바다에서 [쇄빙선]이 되어, [십자가 사랑]으로 녹여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