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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어떻게 할까? (마16: 24-25)

다이나마이트2 2023. 4. 5. 20:42

십자가를 어떻게 할까? (마16: 24-25)  말씀: 김영련 목사님
 
우리는 고난 주간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3년의 공생애 중에서 마지막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군대를 몰고 간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누가 불과 일주일 후에, 45일 후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실 거라고 상상을 했겠습니까?
이와 같은 “역사의 반전”이 또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당한 [십자가 형벌]은 그 당시에 가장 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방법입니다.
[십자가 형벌]의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데, 가급적으로 오랫동안 살려두면서,
모든 고통을 맛보게 한 후에 죽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3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첫째로/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사실로 그렇게 처형을 받을 만한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당시에 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고, 그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에게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냐?”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하여,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처형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유대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기 때문에, 사형의 권한이 없어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가서, “사형 집행”을 의뢰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을 보고, “그가 죄가 없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지만,
정치적인 그 부담을 덜기 위해서 거의 사정하다시피 하여, [십자가 형]으로 집행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지만, 죄 없는 사람이 죽는 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 53장 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사 53:6)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는 말인데, 
▶어떤 사람은 누구이고, --- 그분은 [예수님]이고, 
▶그가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는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그 [우리]가 바로 여기에 계신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될 형벌을 그분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언제 [십자가]가 여러분의 죄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그것을 알았던 순간이, “바로 여러분들이 거듭 태어난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바로 여러분이 “구원받는 날”입니다. 
그날이 바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된 날”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깨끗한 상태로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보혈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십자가]는 내가 죽은 장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믿고 구원 받으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전에 죄를 짓고 살아가던 내가, 이제는 죄를 멀리하고 깨끗한 삶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쉽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분명히 믿었는데, 아직도 [죄]를 짓고 살아가고, 내가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안에는 옛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우리의 죄성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가 다시 죄를 짓고 살아가니까,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죄]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단순히 우리를 위해서 죽은 [십자가]이지만, 
그 [십자가]가 바로 “내가 죽어야 할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에게는 [십자가]는 예수님이 달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전히 죄성으로 사는
”우리가 달려야 할 십자가“라고 믿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은 정말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3)  
 
이 말씀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옛 사람]은 ”그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이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듯이, 우리도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내게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마틴 루터는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세례 받았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 I am Baptied"라고 여러분도 외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나는 세례 받았다.“는 말 속에는 ”나는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부활했다.“는 고백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를 받고,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해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선포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나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신 장소일 뿐만 아니라,
내가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의 죽음]은 물론 ”영적인 죽음“이고,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이고,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세 번째로/ [십자가]는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우리의 남은 생애가 바로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자아의 죽음“과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아의 죽음 없이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 사람은 자가 죽지 않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유익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은 어떤 일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할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며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명을 우리에게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주시나요?
우리에게 [은사]도 주시고, [재능]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물질]도 주십니다. 
 
그 일을 하라고 [동역자]도 붙여주시니까, 우리는 나에게 맡는 일을 찾아서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로 부르시고, 어떤 사람은 평신도의 지도자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님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성공을 추구하고, 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남에게 양보해야 될 것도 있고, 오해받을 일도 생기고, 손해 볼 일도 생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참아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합니다. 
원수가 생겨도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런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실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은 ”원칙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3년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삶 속에 완성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