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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은혜 (히10:19-20)

다이나마이트2 2023. 4. 7. 21:40

십자가와 은혜 (히10:19-20)   말씀: 박종길 목사님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예배와 우리가 부르는 찬송과 기도에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래 [십자가]는 저주와 죽음을 상징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바뀌었고, 죽음이 아니라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없는 구원이나, [십자가]가 없는 선교도 겉으로는 화려할 것 같지만,
사실은 [십자가]가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빠진 구제는 “자선 행위”에 그칠 뿐이고, [십자가]가 빠진 사역은 자기  만족에 그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가 빠진 예배는 “자기만족과 자기과시”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은 “[십자가]가 주는 3가지 은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첫째로/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가 [십자가]로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19절 20절의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인해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 [길]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휘장을 통해,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입니다.
그런데 이 휘장은 바로 그분의 육체입니다.“(히10:19-20)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읽은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에 나오는 [성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장소인데, [장막]이나, [회막]이나, 또 [성막]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성소]는 1년에 단 한 차례, 대제사장이 나아가 백성의 죄를 속죄 받는 장소입니다. 
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것이 [휘장]인데, 이 [휘장]은 마치 벽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19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인해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교의 율법이 엄중해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엄격하게 차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이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 [지성소]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었고, 그 [지성소]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들어갈 수 있는 ”담대함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 [담대함의 근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재물이나, 권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피]에 달려 있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 그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전 앞으로 나아가는 담대함을 주셨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좌우 문설주에 발라져 있을 때, 애굽의 죽음의 사자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고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대함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담과 같은 벽과 같은 그 [휘장]을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예수님의 생명이 그 휘장을 둘러 찢겨, 막힌 담을 허물었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성전을 가로막고 있던 휘장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7- 38절의 말씀에, “그때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찢어졌습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밑에서 잡아끌어서, 아래에서 위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휘장을 찢으셔서,
“위에서 아래로 두 쪽으로 찢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까 우리가 읽은 20절의 말씀처럼, ”그 휘장은 바로 그분의 육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성소]에 있는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쳐, 피를 흘려 돌아가셨을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은 ”예수님의 몸을 두 쪽으로 찢은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①그 [길]은 ”새롭고 새로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율법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고,
”[십자가]의 언약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②그 [길]은 [죽은 길]이 아니고, 새로운 [산 길](살아 있는 길)입니다. 
그 [길] “사망의 길”이 아니고,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 길, 새로운 살아 있는 길을 통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은혜”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처절하지만,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그 은혜는 너무나 크고,
한량  없어서, 우리는 그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두 번째로/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는 “죽은 자를 돌려받는 은혜”입니다. 
 
창세기 22장 13절 말씀에, “아브라함이 눈을 두르고 보니, 숫양 한 마리가 덤불에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양을 잡아, 자기 아들 대신 번제물로 되었습니다.”(창 22:13)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말씀은 구약에 예언되었는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그러한 것처럼,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입니다.”(히 11:19)
 
여기를 보면, “죽은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이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비유]로 말하자면, ”이삭을 죽은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미 이삭을 죽였는데, 하나님이 돌려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결론적으로, [십자가]가 주는 은혜는 ”죽은 자를 돌려받는 은혜“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볼 때, 이제는 다 죽어서 끝나버렸는데,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은혜”가 있고,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은혜”가 [십자가]의 은혜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되지는 않는 장면이지만, 장성한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아버지,
그 아브라함에 대해서 얼핏 이해되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받아드리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여기에 [십자가]가 주는 놀라운 신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세 번째로/ [십자가]가 주는 은혜는 “재앙이 그치게 하는 은혜”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고,
내가 새 피조물이 되는 것도 너무나 은혜롭고 너무나 감격스럽지만,
이 세 번째로 말씀드리는 은혜가 얼마나 좋은지?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재앙과 저주를 끊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역대상 22장 1절에, ”다윗이 말했습니다. 여기가 여호와의 하나님의 집이며,
또 여기가 이스라엘을 위한 번제단이다.“(대상 22:1)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소원을 가졌지만, 그러나 그는 짓지 못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됩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있는 그 성전을 솔로몬이 지으면서,
솔로몬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역대하 3장 1절에,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셨던 곳이며,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으로,
다윗이 결정한 장소였습니다.“(대하 3:1)
 
우리가 읽었던 히브리서 10장 19절에,
”하나님 앞에 나갈 담대함을 얻게 해준 새롭고 산길이 열려진 그 성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그 모리아 산,
그리고 그 이스라엘 전역의 재앙이 그쳤던 오루나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그곳이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심판으로부터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내리는 재앙으로부터도,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의 소를 잡아, 번제물과 화목 재물로 들였던 것처럼,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재앙이 그치는 은혜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1절 22절 말씀에, “또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우리가 제약된 양심으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씻고, 맑은 물로 몸을 씻었으므로,
확신에 찬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히10:2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재앙을 그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와 함께 있으면, 어떤 재앙도 우리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가 주는 은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흘린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담대함을 주는 은혜를 주시고, 모든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 저녁, 벌레만도 못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를 붙잡고, 주님께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