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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눅23:32-43)

다이나마이트2 2023. 4. 7. 21:47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눅23:32-43)  말씀: 강부호 목사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주고 싶으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물론 [십자가의 형틀]이나, 달려 계신 [그 형상]이 아니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장면을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그 좌우에 있는 [죄수]도 같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서 무엇을 느끼나요?
그것은 [십자가]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과, 좌우에 달린 두 [죄수]를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불순해 보이기도 하고, 누가복음 23장 35절에서,
“백성들은 서서 지켜보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심지어 예수를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했다지, 자기가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면, 자기도 구원하라지.’”(눅 23:35)
 
군중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태도는 조롱하며 바라보았고,
심지어는 “자기가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면, 자기도 구원하라지.”라고 비난하는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또 36절에서, ”군인들도 와서 빈정대는 말투로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고 조롱하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싶었던 [십자가]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날, 그 [십자가] 현장에서, 두 종류의 반응이 보여 졌습니다. 
①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 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회개가 없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다른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의]에 빠져서,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②또 다른 모습은 ”회계가 이루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거기서 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올바로 보았을까요?
그 사람은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바르게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회개가 시작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어쨌든 “회개의 과정을 거친 자”가 [십자가의 의미]를 바르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뭔가요?
그것은 “회개하는 심령”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설명해 주시는 [성령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그런 설명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친히 깨닫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런 설명을 들으려면, 그들은 “회개한 사람”이어야 가능합니다.
 
오늘 장면에서도 역시 회개가 없고, ”자기가 한 일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3장 39절을 보면,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가 예수를 모독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아라.“(눅 23:39) 
 
이 장면은 어떻게 보면, ”죄를 지은 죄수“로서 십자가 달린 상태에서,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주님을 이용해보려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다른 곳을 보면, ”심판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 속에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의]로 충만한 사람들이지요. 
 
이렇게 “회개가 없는 사람”은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십자가]를 미련하게 여기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여기지 않고, 마침내는 다른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재앙이 임했는데도 자기가 저지른 일들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비방하고, 귀신과 우상들을 섬기고 경배합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오늘 장면에서 또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를 아는 사람들인데, 23장 40-41절의 말씀인데,
 
“그러나 다른 죄수는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너도 똑같은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마땅히 받을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잘못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눅 23:40-41)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마땅히 받을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잘못한 일이 없다.”(눅 23:41)는
이 [죄수]의 고백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렇게 [죄수]가 말한 후에, 이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눅 23:42) 
 
그러니까 이 [죄수]는 ”회개가 명확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43절의 말씀과 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눅 23:42) 라는
[주님의 답변]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사람“에게만 나오는 태도입니다.
이 [죄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그가 이전에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어떻게 알았든지,
아니면 현장에서 회개했든지, 분명히 주님께서 보시기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회계를 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오늘 저의 말씀을 요약하면, ”내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배웠나요?
나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가?“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내가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무언가 말하기 시작할 때, 
”혹시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고, 하나님에 대한 불평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하나님을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의로우심을 고백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인가요?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해서, 또는 십자가에 대해서,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합니까? 
아니면 교회에 나오면서 배운 지식을 나열하는 말입니까? 
 
저는 이번 2023년 고난주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의미]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믿음으로 고백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여러 탁월한 설교자들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이곳에 모이게 해 주신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뿐만 아니라,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불러주신 이유가 있으실 것입니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고, 
또 성령님의 설명을 듣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혹시 아직까지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신 분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올바르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나를 이끌고 계시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았을 때, 즉각적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 내 눈을 열어주시고, 제가 예수님을 바로 알게 해 주시고, “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십자가]의 의미를 더 많이 알고 싶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또 부활에 대해서도 알게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자 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분명히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이고, 환상 중에 [십자가]에 대한 놀라운 것들을 통찰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주님을 더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말할 때, 조금은 부끄러워하십니까?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십자가]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부끄럽거나, 망설여지십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에 대하여, 조금 더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령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언제 우리를 도우시나요?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첫 걸음을 떼기 시작 할 때, 바로 그때부터,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같이 마주 보면서,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다가간다면,
상대방의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그때,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 하면, [십자가]에 대한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확신]이 생기려면, 성령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설명이 내 마음속에 임해야 되고, 그런 성령님을 사모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의 말씀을 같이 읽으십시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인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것이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고전2:14)
 
혹시 [십자가 사건]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아니하고, 믿어지지도 않고,
예수님의 [구원 사건]에 대해서도 지식적으로는 알겠는데, 확신이 없으신 분들은 조금 전에 제가 말했던 것처럼,
“꺼림칙하고, 전하기도 마음에 부담된다.“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어요.
 
혹시 내가 [육]에 속한 사람은 아닌지요?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니까, 혹시 내 상태가 그런 상태는 아닌지?
내가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지?” 묵상하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들은 이미 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영접한 분들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여러 목사님들이 훌륭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바로 그 때부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십자가]를 알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 마음에 임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