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 그가 오신다 (말3:1~6) 말씀: 한충희 목사님
[말라기]의 말씀은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는데,
느헤미야 이후 약 10년 후에 말라기가 쓰여 졌고, 이 때 [말라기 예언]이 선포되었고,
예언이 성취된 것은 [세례요한]의 출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말라기]라는 말은 “나의 사자”라는 뜻이고, 이때는 지금 제가 말씀드린 대로 성전 건축이 이루어졌고,
성벽이 재건되는 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포로의 고통을 망각하고,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의로움과 경건함을 갖추지 못한 제사장이 출연하게 되도, 이방인들과 혼인하고,
이혼이 늘어나고, 11조 생활을 하지 않는 예배의 변질과 신앙의 변질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히 율법을 무시하고, 방탕한 공동체에 [말라기]는 심판을 경고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말씀”이지만, 신약으로 인도하는 “시작의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구약]은 감추어진 신약이고, [신약]은 드러난 구약이다.”는 유명한 말씀을 남깁니다.
이 말씀은 “구약 안에 신약의 모든 내용”이 있는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것이 ”감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은 ”그 감춰진 구약의 내용들이 드러난다(계시된다).“ 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안 나오지만, 많은 예언에서 예수님이 예표 되어 있습니다.
[신약]은 ”감추어진 예수님이 실제로 드러난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말라기]는 이제 그 부분을 ”예언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말라기]에 감춰진, ”신약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드디어 나타나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라기]는 우리가 ”구약의 끝“이 아니고, 완성을 향해서 나가는 소망과,
[메시아](그리스도)의 오심을 분명하게 확인해 주고, 예언해 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400년 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걸 알았기에, 이 말라기의 예언을 어떻게 보면,
”그 엄중함, 그 중요함을 조금 더 낮게 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구약과 신약]사이에, 400년의 침묵기(암흑기)에,
이런 ”소망의 메시지“가 잉태되고 있음이 놀랍고 경외로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승천 이후, 지금 2천여 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심“이 언제일까? 오시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를 우리가 의심을 할지도 모르지만,
[말라기]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은 분명히 오십니다.
▶여러분은 그걸 믿으십니까? [아멘], 이것이 우리의 종말론적 신앙인 것이고,
우리 교회가 내년도 [교회 표어]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정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미 알기에,
[말라기]를 “영화의 결말”을 아는 스포일러 처럼 별다른 긴장감 없이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자]라고 말할 때, [세례 요한]이고, 또 [주님]이라고 말할 때, [예수님]이라고 인식하듯이,
마치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처럼, “이렇게 긴장감이 없이 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라기]는 400년간 한시도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작동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고,
또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주님의 섭리의 역사를 증명하는 책이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오셨기에,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성취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간기의 의미“가 [400년]인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시기가 ”로마의 통치 시대“이기 때문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로마가 길을 닦고, 교통과 이동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예수님 출연 이후에 [복음]이 로마가 닦은 길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 ”복음이 소통하도록” 준비하신 하나님은 ”400년간의 준비 기간“을 가지 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말대로, 정말 ”신약은 드러난 구약“이라고 드러난 것입니다.
[말라기]는 신구약을 연결하는 ”새 언약,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언서“입니다.
[말라기의 교훈]은 하나님의 때, 즉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같은 것“은 언제 일어날지?,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은“꼭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때, 다시 오실 것입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늘 마음에 새기며, 거룩하고 순결하고 깨끗한 우리의 믿음을 지켜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서]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두 가지 길이 있는데,
①첫째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경우에 “축복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고,
②그 반대로, 믿지 않고 죄짓고 반역을 할 경우에 “심판과 징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주시는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1)첫째로/ 주가 보낸 심부름꾼이 길을 닦고 나면, “주가 올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3장 1절에, ”보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보내, 내 앞에 길을 닦게 하겠다.
그러고 나면, 너희가 바라는 주께서 갑자기 그 성전에 올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심부름꾼 말이다.
그가 올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말3:1)
여기서 ”내 심부름꾼이라.“고 하는 표현은 개역 계정에서는 ”내 사자“라고 번역했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례 요한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후반부에 ”계약의 심부름꾼이라“는 표현은 개역 계정에는 ”언약의 사자“라고 표현을 하는데,
바로 이 부분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고, [계약]이라는 표현은 ”언약과 약속이라“는 의미이고,
”반드시 실현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두 번에 걸쳐서 그가 올 것이다.“는 말씀은 ”갑자기 올 것이다.
메시아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2)둘째로/ 주님은 자신을 경애치 않고, ”약자를 압제하는 자를 심판한다.”는 말씀입니다.
3장 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심판하기 위해 너희에게 가까이 나아가겠다.
마법사들, 간음하는 사람들,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꾼의 품삯을 착취하고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고,
이방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면서도 나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즉시 증인이 되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말3:5)
앞에서 “구약 예언의 패턴과 전형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것은 “나의 사자와 주님이 오실 것임을 선포했으니,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말씀을 따르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여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는데,
①간음하는 사람, ②거짓 증언하는 사람, ③일꾼의 품삯을 착취하고, ④고아와 과부를 압제하는 사람,
⑤이방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는 사람을 [예]를 드는 것이죠.
이것을 통하여 심판을 경고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다시 오심“은
이런 고아와 과부를 압제 받는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김]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려 한 것입니다.”라고 하는
그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우리가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벗어나 심판을 받지 않는 그것이 너무나 필요한 것이죠.
이런 [경고의 메시지]는 특별히 말라기의 제일 마지막 절 이 어떻게 끝나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말라기 4장 6절에,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리고, 자식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릴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저주로 그 땅을 칠 것이다.”로 끝나게 됩니다.
심판이 먼저냐, 구원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또 이미 오신 십자가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구원하고, 은혜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을 훼방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심판을 우리가 피하기 어렵다.“는 것도
성경이 주는 엄중한 메시지인 것이죠.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두려움에 있고, 또 깨어 있어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3)셋째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3장 3-4절에서, “그가 은을 제련해 수은을 만드는 사람처럼, 앉아서 레위 자손들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가 금과 은처럼 그들을 제련하면, 그들이 여호와께 의로 예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들이 예전처럼, 곧 옛날처럼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이 될 것이다.”(말3-4)
6절에서,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니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멸망하지 않는다.”(말3:6)
이렇게 오늘의 말씀은 마무리가 됩니다.
여기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잇는 그 믿음의 후손, 아브라함이 갖던 그 믿음을 잇는
그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이기에,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아닌 것이죠.
우리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한 [세례 요한]을 기다리고,
또 곧이어 함께 오실 주 예수를 기대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6절에서,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않는다.“ 는 것은 예수님 탄생과
또 우리가 내년에 묵상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르나타“ 이 두 가지 메시지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개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 구속과 구원을 완성하는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과 승천이라고 하는 이 부분과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완성하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 바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 구원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왜, 지금까지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 걸까요?
2천년이 지난 지금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이 금방 다시 오실 것처럼 많이 기다렸어요.
베드로후서 3장 9- 10절에 그 답이 있어요.
“약속하신 주께서는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아멘.
더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멸망치 않고, 모두 구원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이 되도록
생명책의 이름이 기록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①아직도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주위의 가족, 친지들이 있고,
②그리고 선교사님들이 오늘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③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내어 복음을 전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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