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폭풍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행27:9-26) 2024.11.17

다이나마이트2 2024. 11. 17. 13:53
폭풍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행27:9-26)  말씀: 이재훈 목사님
 
인생이 살아가는 동안에, [폭풍]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사회적 신분이나, 전문적인 지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폭풍]은 찾아옵니다.
 
그럴 때, 당황하고,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고, 때로는 소망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폭풍]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조지 허버트]라는 시인은, “기도를 배우기 원하면, 바다로 가라.”고 말을 했습니다.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폭풍을 만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께 불평하며, 항의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해 주시는 방법입니다.
 
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며 질문을 던졌던 [욥]에게,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 나타나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친구들의 많은 권면에도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의]를 주장했던 [욥]은
하나님께서 폭풍 속에서 나타나셔서 질문하시자, 그때야 비로소 회개합니다.
 
[욥]은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폭풍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인생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되돌리게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던 배를 타고 가던 [요나]에게
하나님은 폭풍으로 찾아오셔서,그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요나]도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폭풍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제자들도 폭풍 속에서 주님을 만났고,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유령이라“고 오해했지만,
주님은 ”안심하라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폭풍 속에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까? 그것은 
①폭풍 가운데서도 평안히 걸어오실 수 있지만,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원해서”이고, 
②그분의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잠잠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을 태운 배가, 로마로 가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폭풍 가운데 주님은 [바울]을 다시 한 번 만나주셨습니다.
 
이제 바울이 로마의 통치자들로부터 신문을 받은 이후에,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써,
그가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로마까지 가는 여정은 매우 긴 여정입니다.
 
오늘날에 있는 비행기와 같이 교통수단이 없었기에,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가야 하는데,
계속해서 역풍이 불어오기에, 이제 크레타 섬의 아름다운 항구 미항이라는 곳에 잠시 머무르게 됩니다.
 
이때, 27장 09-11절에 보면, 바울이 충고를 합니다.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금식하는 절기도 지났기 때문에, 항해가 위험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람들에게 충고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보니 우리가 이렇게 계속 항해하다가는 재난에 빠지고, 배와 짐이 큰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우리 목숨도 위태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손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행27:9-11)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바다가 친숙하지 않아요.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특이하게 또 바다에 여행 경험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지중해는 9월 중순경부터 11월 중순까지가, ”항해하기 위험한 시기였다.“고 하기에,
매우 근거 있는 충고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항해하다가는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충고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면,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손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
지극히 당연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피고인의 신분으로 호송되고 있는 [바울]의 충고보다는,
[선장과 선주]가 훨씬 더 전문가이기에,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당할 경우에는 어떤 경우입니까?
전문가가 진실할 경우에 전문가가 올바르고 정직할 경우에는 그 말을 따르는 게 맞는 것이죠.
 
그러나 많은 경우에 진실과 공의를 버리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는 영역, 소수의 전문가들만 아는 영역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들만 알기에, 우리만 모른 척하면, “진실은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작이 일어나고, 진실이 가려지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손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계절이 가져오는 태풍,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 태풍을 만났을 때, 그들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습니다.
구명정을 붙들어 매고, 밧줄로 선체를 묶고, 닻을 내리고, 또 배에 있는 짐들을 다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런데 ”버리지 말아야 될 것“까지도 버렸습니다. 소망까지 버린 거죠.
27장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도 나타나지 않고, 폭풍만 계속 불어 닥치자,
결국 우리는 구조될 모든 소망을 포기했습니다.“(행27:20)
 
”해와 별도 나타나지 않고“라는 이 말은 요즘 같은 GPS가 없었기 때문에,
(해와 별을 보고 항해를 했기 때문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으면 방향을 알 수가 없는 거죠.
 
또 폭풍은 계속 불어 닥치게 되자, “구조될 소망까지 포기했다.”는 겁니다.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소망까지 내버리게 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방향만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소망까지 잃어버린 인생.
아무리 배의 닻을 내려도 소망의 닻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제 소망까지 잃어버린 이들의 상황은 [아비규환]입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됐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을 무시했기 때문이죠.
 
여기서 우리는 [순풍]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순풍을 따르겠습니까? 폭풍을 따르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누구나 순풍이 좋은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순풍이 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 순풍은 위험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폭풍이 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면, 그 폭풍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폭풍]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소망까지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빠서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은 “바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악함”이 우리 마음속에 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순풍에 잘 속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순풍이 불어오면, 정신 바짝 차리고 경계해야 됩니다.
이 순풍을 따라가다가,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순풍을 오히려 두려워해야 됩니다. 
 
폭풍이 다가오면, 우리는 두렵고 떨리지만, “하나님이 오고 계신다.”고 생각하십시오.
오직 [바울] 한 사람만이, 폭풍 속에서 흔들림 없이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오히려 당부하며 그들을 이끕니다.
 
▶[바울]은 이 위기 상황에서 세 가지 내용을 말합니다.
①첫째,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②둘째, 내가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호하실 것을 들었습니다.
③셋째, 너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내게 맡겼다.
 
여기서 “사람들의 생명을 바울에게 맡겼다.”는 것은 “바울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이들의 생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폭풍 속에서 표류하는 이 배에, “영적인 선장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지도력”이 폭풍 속에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폭풍이 오면,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납니다.
▶인생의 폭풍이 올 때, 우리가 확인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였는가?”가 드러나는 겁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다.”면, 그런 사람은 폭풍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던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야 각성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 영적 주도권을 발휘하죠.
 
[바울]은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했고, 폭풍 속에서 마치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평안하게 감사하며 식사를 했어요.
 
이 폭풍이 지는 가운데 평안히 식사한 모습 속에 우리는 누구의 모습이 떠오릅니까?
갈릴리 호스에서 폭풍이 이러는데도 배 밑에서 평안히 잠을 자시던 예수님처럼
그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영적 리더십,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그 모습을 통해서,
이제 바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증거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욥]을 찾아오신 것처럼, [요나]를 찾아오신 것처럼,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그리고 [바울]을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의 배가 폭풍을 만날 때,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때로 소망까지 잃어버릴 때, 바로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폭풍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폭풍을 타고,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폭풍을 통해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