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행26:19-32) 2024.11.10

다이나마이트2 2024. 11. 10. 19:16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행26:19-32)   말씀: 이재훈 목사님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그리스도의 [증인된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총독들에 의해 계속해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바울은 사형을 받을 만한 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받을 만한 죄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최고 지도자(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법을 이용해서, 상소하게 되었는데,
”자신을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 연설을 통해서, 자신은 ”유대 민족을 배반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과거에도 유대인이었고, 현재에도 정통적인 유대인으로,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약속을 따라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고 설명합니다.
 
그 소망 때문에, 자신이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그 장면을 기록했기 때문에, 
“[바울]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변화되었는지?”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자신이 깨닫게 되고, 부르심을 받은 두 가지를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합니다.
 
①첫째로/ 약속을 따라오신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고,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첫 번째 사람이 되셨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핵심의 실체]가 바로 죽은 자의 부활이며,
그분이 바로 우리의 [메시아]이고, 우리도 “그분처럼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②두 번째로/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제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도
“이 구원의 빛을 비추도록 나를 부르셨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내용을 증거하는데, 사도행전 26장 23절에,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셔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오,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하니까,
[베스도]가 바울의 변호를 가로막으며,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너의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라고 소리 높여 외칩니다. 
 
이 [베스도의 외침]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외치는 외침과 비슷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①당신은 너무 광신적이야, ②매주 교회에 나갈 필요 없이 가끔 가면 되고, 
③자신이 주인이 된 인생을 살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도하면 되고, 
④액세서리처럼 필요할 때 믿으면 되는 것이지, ⑤물질로 헌신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지말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25절에서, ”[바울]은 대답합니다. [베스도] 각하,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사실이며,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그립바] 왕에게 호소합니다. ”왕은 이 사실을 알지 않습니까?
이것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대에 소문이 다 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이 질문을 통해, [바울]이 이끌고 가는 건 뭡니까? 
그것은 “예언자들을 믿는다면,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이 성취한 것을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바울]이 호소하고, [아그립바 왕]을 압박해가는 것이죠.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네가 이 짧은 시간에,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니까,
바울이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왕뿐 아니라, 오늘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저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죠.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바울]이 한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맞는 말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복음이 틀려서가 아니라,
믿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다.
 
어쩌면 [아그립바 왕]은 이렇게 말하고, [바울]을 신문하고 집에 가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상상인데 ”하마터면 믿을 뻔했네.“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건, 어느 정도 지금 넘어온 겁니다. 설득됐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거죠.
그러나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나는 믿으면 안 돼“라고 거부하는 겁니다.
 
내가 만일 그걸 믿는 순간, 자신의 위치가 무너지고, 자신들이 쌓아왔던 거짓이 무너지고, 
어쩌면 내가 로마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고, 나의 온갖 것들이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뿐이죠.
 
[복음]은 이 세상의 어떤 사상보다도 가장 진실하고, 
[복음]은 이 세상의 어떤 논리보다도 더 명확하고, 
[복음]은 어떤 사람들의 주장보다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과 역사에 대해서, 가장 진실하고 정확하며 꿰뚫어보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죠.
 
[복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로 그러한 태도였습니다. 이때, [바울의 대답]이 감동적인데, 
”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왕뿐 아니라,
오늘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이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저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하는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고, 
이 말을 듣는 이들은 헤롯, 아그립바 2세요, 총독, [베스도]요 귀족들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죄수가 자신을 재판하는 이들에게, ”쇠사슬을 제외하고는
당신도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하거나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너무나 분명한 진리 위에 서 있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그 [길]이 “생명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기 때문에, 
“당신도 나와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라고 초청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두려움이 전혀 없고, 담대합니다. 억울해하지도 않습니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보이지 않습니다.
 
[몸]은 매여 있지만, [마음]은 자유롭습니다. 
그가 끌려가는 상황이지만, 그가 도리어 “이끌고 가는 상황”입니다.
 
“법적인 주도권”은 [총독]에게 있지만, “영적인 주도권”이 지금 [바울]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법적 제도를 통해 보호를 받고 있지만, 진정 바울을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되,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모습”은 [선교사]의 모습이고, 
그가 겉모습은 “죄수의 모습”이지만, 그가 다니는 여정도 “선교사의 여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영적 주도권]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써, 이제 로마까지 가야 되는 상황에 처해 있죠.
 
그런데 32절에,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황제께 상소하지만 않았더라도,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재판의 과정 중에 무죄가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에,
“상소하지만 않았어도 바울은 풀려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상소했기 때문에, 계속 죄수의 신분이 연장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상황을 보면,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인데, 상소함으로써 죄수의 신분이 연장이 되었어요.
 
결론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의 특권을 자신을 보호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정반대로 “자신을 희생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울]의 생각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몸이 풀려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두란노]에서 출간된 [케네스 배] 선교사님의 간증 집, “잊지 않았다.”책에 나온 얘기입니다.
그가 북한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여행사 대표로서 사역을 하고, 그 땅을 밟고 기도하고 있었던 때에
실수로 외장 하드을 가지고 갔는데, 거기에는 북한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고,
북한 열리는 작전이 들어있어서, 15년 형량을 선고받고, 강제 노역을 받습니다.
 
그가 처음에는 “나를 구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상황에 나를 사용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만 2년 만에 풀려났는데, 흥미롭게도 [바울]이 억류된 시기와 비슷했죠.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 이 상황을 통해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 자를 기도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이, 쇠사슬 외에는 자신처럼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들이 자신을 재판하지만, 언젠가 주께서 그들을 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죠.
 
세상의 수치스러운 위치를 계속 지키려고 복음을 외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이들이,
자신을 통해 이제 당당히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이들로 변화되기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