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하나님 나라 (행28:16-31) 말씀: 이재훈 목사님
2024년 1월부터 사도행전을 시작하여, 올 한 해를 [사도행전]과 함께 보냈어요.
오늘 드디어 사도행전 28장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금년 일 년을 지내는 동안에 절기나 행사에 상관없이, 우리는 [사도행전 말씀]을 계속 나누었고,
이제 다음 주부터는 성탄을 맞이하는 [대강절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던 배가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폭풍도 만나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제 로마에 도착했다면, 로마에서 어떤 다이나믹한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은 매우 조용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매우 조용한 말씀 증거의 모습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30- 31절의 말씀에,
“바울은 만 2년 동안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여,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행28:30-31)
로 끝납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이제 갇힌 상태에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매우 제한적인,
수동적인 상태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증언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납니다.
[바울]은 두 번을 갇히게 되는데, 오늘 본문이 첫 번째로 갇히는 것인데, [자택 연금]이라는 수준이고,
도로를 다니며 1차 2차 3차 선교 여행 때 복음을 전했던 그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그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여, 그들을 가르칠 수 있을 뿐입니다.
매우 조용한 [말씀 사역]을 하는 것으로, [사도행전]은 끝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에 대한 위인전”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순간에,
“바울에 대한 초점”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또한 과거의 책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의 모든 역사가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여러 사도들의 기록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으로 끝내지 아니하고,
이제는 “오늘 우리가 사도행전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서문]은 있지만,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완성]으로, 그렇게 끝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후로 뭐가 더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행전은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증언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계속 끝나는 것,
[ing 진행형]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고 오늘 이 시대의 교회들이 바로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온누리교회의 비전인 [Acts 29](=액트 29)의 비전이 나오고,
이 [비전]은 온누리 교회가 세대가 계속 흘러가도 계속해서 변하지 말아야 할 닻과 같은 비전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1)첫째로/ [하나님 나라]는 ”어떠한 방해도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1절에,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는 말씀은
“바울이라는 인간의 승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어떠한 방해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란, 파키스탄, 중국, 이슬람 지역에 있는
여러 지도자들의 고백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어떤 세상의 권세가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방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 저는 어떤 방해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느낀다면,
그런 분들은 ”복음을 전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해보지 않았으니까, 방해를 느끼지 않았겠죠.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방해가 있는지 모릅니다.
이슬람 세력도, 공산주의, 사회주의 독재 국가에서도 기독교를 핍박하는 수많은 세력들이 역사 속에 있었지만,
어떠한 방해도 하나님 나라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2)둘째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로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며,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사람들이 써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쓰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섭리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바울 자신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이 어떻게 담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울의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 속에서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하여, “섭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분의 뜻을 따라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담대함]은 넓은 시야에서 옵니다. [숲]에 들어간 사람이 지도가 없으면,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죠. 숲에 들어가도 담대한 사람은 지도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도를 보는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이 골짜기라도 어느 곳을 향하여 내가 나갈 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앞길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지도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도이고, 우리는 영적 지도를 볼 수 있는 겁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는 [바울의 담대함]이 생기는 거예요.
[바울]이 돌아다니기만 했다면, 물론 사도행전에 그런 역사가 있었겠죠.
그러나 또 다른 사도들을 만들 수 있는 기록은 신약 성경은 기록되지 못했을 거예요.
(3) 세 번째로/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으로 인해서, “결코 멈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이 탄 배를 폭풍 속에 지켜주시고, 수 많은 고통을 이겨낸 것은
”바울이 위대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증거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것은 사실 보이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사단의 세력]이었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한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훼방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대적한 것입니다.
역사 속에는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려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많이 나타났죠.
[바로]를 통해 [모세]를 제거하려 했고, 또한 [헤롯]을 통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하만]을 통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고 했고, 이제 [바울]을 제거함으로 복음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던 거예요.
끊임없이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기 위한 세력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대반전의 역사를 일으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멈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8장]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의지하신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해 보이는 일꾼에 기대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미완성의 사람들“이고, 도리어 영적인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위안성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하심 능력을 의지하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의지하는 거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계속 퍼져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완전하신 능력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지 않을 때, 교회는 쇠퇴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교회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가 아닐 때,
[교회]는 존재 목적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쇠퇴하는 거예요.
▶교회가 왜, 갈등 속에 휩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점을 갖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통로가 되기로 작정할 때,
①위기가 기회가 되고, ②연약함이 능력이 되고,
③우리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능력의 통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났지만, 우리 교회가 사도행전의 [29장]을 써 나감으로,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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