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왜, 울고 있느냐? (요20:11-18) 2023.04.16

다이나마이트2 2023. 4. 16. 21:47

왜, 울고 있느냐?  (요20:11-18)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여일을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 40여 일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10여 차례 나타나셨는데, 오늘은 그 나타나신 예수님의 행적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도 두려워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니,
여전히 예수님의 증인되기에 부족한 연약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된 여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 이후에 가장 먼저 만난, 만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문화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정에서 채택되지 못했던 시대였기에,
“이런 부활의 기록이 존재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짐 것을 보고, “①무덤을 오인해서, 잘못 찾아갔다.
②누가 시체를 훔쳐갔다. ③혹은 예수님의 쌍둥이다.“는 등 별의별 소문이 있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에 ”첫 증인이 여인이었다.“는 것은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사실적인 기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신 것은 단지 부활의 사실성만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깊이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는데,
무덤을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으로 처리를 하려고 찾아간 것입니다.
 
원래 [십자가]에서 죽은 사형수에게는 무덤이 없이 골짜기에 버려지거나, 아니면 불태워서 없어지는 경우가 보통인데,
[아리마데 요셉]이라는 부자가 자신의 돌무덤에 예수님을 안치시키고, 무덤의 문은 봉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왜, 무덤을 찾아 갔을까요?
그것은 [사랑]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고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돌문을 열어놓은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오도록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무덤 안을 볼 수 있도록“ 보여 주기 위해서, 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인들의 발걸음을 무덤으로 향하게 하셨고, 여인들이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알고,
첫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돌문이 열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덤 안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누구도 믿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보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제자들]의 하는 행동이 완전히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제자들]은 각자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서로 너무나 대조가 됩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는데, 빈 무덤을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왜, 그냥 돌아갔을까요? 
제자들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집으로 갔겠지만,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강도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무덤을 떠나지 못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을 귀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처참하게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천사가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마리아의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눈물“이지만, 또한 ”불신의 눈물“입니다. 
 
▶어떻게 똑같은 눈물이 [사랑의 눈물]이면서 동시에 [불신에 눈물]일까요?
13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마리아가 천사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요 20:13)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도, ”사람들이 시신을 어디로 가져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생각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눈물]이며, 동시에 [불신의 눈물]이며,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오해하고 있었으며,
모든 상황을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빈 무덤]이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증거“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패배자와 같이,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의 이유“를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중간에,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그냥 흘리는 눈물이 아니고, 말씀에 감동되어 나오는 눈물입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목사님의 말씀에 공감이 되거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땅히 울어야 될 것을 위해 울지 못하고, 울지 않아야 될 것을 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깊이와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 질 수도 있습니다.
역시 [헌신된 성도]들에게서는 자연히 눈물이 나오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그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가 슬픔의 눈물이 아니고, 기쁨의 눈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처음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15절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네가 누구를 찾고 있느냐?
마리아는 그 사람이 동산 지기인 줄 알고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이 그분을 옮겨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분을 모셔가겠습니다.“(요 20:15)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천사가 질문한 동일한 질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어로 [랍오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랍비]보다도 더 높이는 호칭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온유하지만, 단호하게 그녀에게 물러나시면서,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하여라.”(요 20:17)
 
▶여기서 왜, 예수님이 “나를 만지지 마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단지 [여인]이었기 때문일까요? [도마]에게는 “나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지만,
여인에게는 “나를 만지지 마라.”라고 하신 것은 “여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매달리지 말라.”는 의미는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마리아의 사랑이 다른 차원의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가져온 놀라운 변화를 깨닫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제는 부활을 증거하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다시 오실 재림을 기다리는 [천상에서의 사역]을 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10절에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일어날 변화를 말씀하십니다. 
①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이고, 내 하나님이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갈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곧 우리 아버지가 되셨어요. 
 
②그분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누리신 모든 아버지와의 관계가 바로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③[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만, 너희도 장차 하나님께로 나와 같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새로운 변화를 말씀하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만나주셔서,
무덤을 떠나지 않는 [마리아]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지만 또한 불신의 눈물이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이 지난, 첫 주일입니다. 부활절은 그저 1년에 한 번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라,
매 주일이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