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배반을 이긴 사랑 (마26:20-30) 2023.04.02

다이나마이트2 2023. 4. 2. 19:40

배반을 이긴 사랑 (마26:20-30)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성만찬]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고,
장차 하나님께서 베푸실 새로운 출애굽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바로 ”그 어린 양“이시며,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만찬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재앙이 지나가도록(Pass Over) 하기 위한 것인데,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은 것만큼, 아픔을 주었던 것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반“이었습니다.
 
[성만찬]를 제정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말씀인데,
반면 [유다]의 말과 행동은 의도적인 기만에서 나온 [거짓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이 [만찬]은 ”예수님을 배반할 제자들과 함께하는 만찬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21절에서, “모두들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배반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운명의 [주관자] 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을 미리 아셨고, 또한 이 만찬으로 유다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을 아시면서도, 유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시며,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
몹시 괴로워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배반을 예고하시면서도, ”그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만일에 그 이름을 거명하셨다면, 아마 베드로가 끌고 나갔을 겁니다. 
 
또 23절에 보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는 밀씀을 하셨는데,
여기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나와 아주 가까운 친구“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바로 그때, 25절에서 [유다]가 나서서 말합니다. ”랍비여,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가증스럽게 말 하는 것은,
이때에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팔기로 약속한 상태였습니다. 
 
이럴 때, 우리 같으면, ”바로 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예수님은 [유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는 이 마지막 만찬에서도 거짓으로 행동했고, 가까운 친구인 제자들도 속이면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의 모든 의도를 알고 계셨는데도, [유다]가 돌이키지 않자, [유다]에게 빵 조각을 권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문화의 만찬에서 빵 한 조각을 건네주는 것은 그 식탁에서 가장 중요한 VIP 손님에게 권하는 최고의 예우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제자“를, ”최고의 손님으로“ 대우해 주신 겁니다. 
그것은 배반의 아픔을 –--> 가장 큰 사랑으로 베푸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배반을 이기는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자신이 대속하는 제물“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26절에서 28절을 함께 읽으십시오. ”그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그리고 또 잔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위해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다.‘“(마26:26-28) 
 
예수님께서는 [빵]을 나눠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고,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그 제자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우리는 성찬에 익숙하게 참여하면서, [본질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충격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빵]이 부서져서 양식이 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몸]이 부서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흘린 [피]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음료가 되듯이,
주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고,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위해 부서져 먹히는 [빵]과 같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식사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듯이,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믿는 것“을 여기서는 ”먹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그 음식을 먹음으로, 우리 몸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가 되는 ”연합을 이룬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을 살펴보면, 3가지 말씀으로 정리합니다.
①첫째로/ [죄사함]을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입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아 31장 34절의 말씀으로,
”내가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말이다.“(렘 31:34)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 완전한 용서와 회복의 역사를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어린 양 유월절 어린 양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다.”는 겁니다. 
 
②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피]“라는 말씀인데,
이사야 53장 12절의 말씀으로, “그가 자기 목숨을 죽음으로 내던지고, 죄지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으며,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죄 지은 사람들이 용서를 받도록 중재를 했기 때문입니다.”(사 53:12)
 
그러니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그를 위해 흘리는 피“입니다. 
 
③마지막 세 번째로/ 예수님은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는 말씀인데,
출애굽기 24장 8절의 말씀으로,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들에게 뿌리며,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따라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다.’라고 말씀했습니다.(출 24:08)
 
모세는 율법을 가지고, 그 뻘건 [피]를 뿌리면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이제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의 은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요한복음 6장 56절에서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고 나도 그 안에 있다.”는 말씀이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다.”는 [연합]의 의미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생명의 빵으로 먹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그 어떤 배반보다 더 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은 배반을 이기고,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그 어떤 배반이 주는 상처와 아픔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배반]을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직장 동료에게, 가까운 친구에게서 배반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배반의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지만, 오직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겨내시고,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할 때, 이런 배반의 아픔을 이기고,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성찬]에 참여하므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씻어지고,
연합하게 되는 그런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