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십자가의 아이러니 (마27:39-44) 2023.03.26

다이나마이트2 2023. 3. 26. 15:29

십자가의 아이러니 (마27:39-44)  말씀: 이재훈 목사님
 
우리가 믿는 [복음]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우뚝 서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고,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이지만,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십자가]는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며, 
[바울]이 말한 대로,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십자가를 둘러싼 예수님의 고난 받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 있던 본디오 빌라도, 로마 군병, 유대 지도자들, 그리고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특별히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면서,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노골적으로 예수님을 모욕했고 조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내뱉은 조롱하는 말들이 [아이러니]로 나타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원래 [아이러니]라는 말은 “시치미를 떼거나, 위장하다.”는 뜻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잘 모르고, 무지하게 내뱉은 말들이, 실제로 그것이 사실로 나타날 때” 사용되는 말을 가리킵니다.
 
결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 “실제로 그런 일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아이러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아이러니]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고난이 다 그런 것이지만, 오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첫 번째 [아이러니]는/ 군병들에 의해서, 왕으로 조롱받으셨던 예수님이, ”실제로 왕이셨다.“는 사실입니다.
 
27장 28절에서 30절의 말씀에 ”그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자주색 옷을 입혔습니다.
또 가시로 관을 엮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는 그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말했습니다.
[유대 사람의 왕 만세] 그들은 예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렸습니다.“(마27:28-30)
 
이런 로마 군병들의 행동은 평상시에 ”처형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 자주색 옷을 입혔다.”는 것은 조롱하는 뜻으로, 마치 왕이 입는 화려한 의상처럼,
자주색 옷을 입히고, 왕관으로 가시 면류관을 씌운 모습을 연출한 것이고,
조롱하는 의미로, “유대 사람의 왕, 만세”라고 외쳤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롱하기 위해서 꾸민 것입니다. 
그들은 [아이러니]를 만들며,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그의 [죄패]에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단어를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빌라도는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냥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붙였습니다.
 
그것은 [자칭]이라고 쓰면, 예수님 한 개인의 문제가 되지만, [자칭]이라는 걸 빼면
유대민족 전체를 조롱하고 싶었던 겁니다. 실제로 유대인의 왕처럼 그렇게 만들음으로써,
”이 유대인의 왕의 종말을 보라.“는 뜻으로, ”유대인의 왕은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가 되었다.“고,
모욕을 주기 위해, [자칭]이라는 단어를 뺀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그 머리에 쓴 [죄패]와 같이, ”그분은 왕이셨다.“는 것이
증거로 이루어진 셈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모든 구체적인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아이러니]로 나타난 것입니다. 
 
(2)두 번째 [아이러니]는/ 다른 이들은 구원하고, 자신은 구원할 수 없다.”고 조롱받았던 예수님은
실제로 자신을 구원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메시아]가 되셨다.“는 겁니다.
 
41절 42절의 말씀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남을 구원한다더니,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군,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니,
어디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하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어 주겠다.“(마27:41-42)
 
이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의 교훈과 영향력을 ”유대지도자들은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조롱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왕이라니, 어디 한번 내려와 보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군병들처럼, 유대 지도자들도 [아이러니]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심으로써,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셨다면, 
예수님은 다른 이를 구원하시는 [메시아]는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지 않음으로써, 한 사람이 백성들을 위하여 죽음으로 ”그들을 살리는 죽음이었다.“는 것을
”십자가의 [아이러니]“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3)세 번째 [아이러니]는/ 하나님의 버리심에 대하여 말씀했던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셨다.“는 것입니다.
 
43절과 46절에,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그를 당장 구원하시겠지,
자기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었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오후 3시쯤 돼,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입니다.“(마27:43-46)
 
여기에서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죽임 당하시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죽게 만드셨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가리켜, ”십자가에 달리시고, 감추신 하나님이라“고 기술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엘리야]를 부르며, 어떤 기적을 일으키려나 보다.“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제가 순종하며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오실 줄 몰랐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오해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부르짖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그 아들을 실제로 버리신 사건“이고,
우리가 받을 저주를 예수님께 쏟아 부은 [저주의 사건]이기에, 하나님은 그 아들을 어둠 속에 침묵하시고,
그를 죽음에 처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은
“나를 버리면 안 되는데, 왜 버렸습니까?”라는 뜻이 아니라,
그 앞에서 말씀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부르짖음 속에는 “그렇게 버림을 받는 시간에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여전히 신뢰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원망하고, 한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탄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말씀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버릴 만큼, 놀랍고 크신 사랑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버리실 만큼, 놀랍고 크신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버리실 만큼“, 모든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탄하며,
찬양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버림받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 순종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저렇게 버리셨는데, 어찌 하나님을 신뢰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오해했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버리심 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둘러싼 [십자가의 아이러니]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요즘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또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내뱉는 말들 많이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게 될 때는 모두 [아이러니]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진리]는 그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 말에 의해서, 더 밝게 빛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셨기에”,
예수님을 모르고 내뱉은 이들의 조롱들이 모두가 다 [아이러니]로 나타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전도자]로 바꾸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대적하는 모든 무리들을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 편에 온전히 서 있다면,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조롱도 언젠가 그들의 삶 속에 [아이러니]로 나타나게 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본 적이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을 보았으므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붙잡고, ”예수님처럼”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