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분과위원회

디아스포라 신학(2) - 구약, 신약(1)

다이나마이트2 2023. 4. 12. 23:21

이제 두 번째는 구약과 신약 성경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요. 성경은 무슨 책인가?를 한번 문의한다면은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선교적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한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의 네러티브(이야기)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은 우리가 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보편적으로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첫 번째는 구속, 어떻게 Redemtion을 이루었느냐?라는 구속의 관점이 있습니다두 번째는 하나님의 언약, Covenant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세 번째는 이제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학대학원에서 배우는 보편적인 성경 해석의 관점입니다하지만 우리 안에 선교적 관점을 같이 사용해서 통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선교적 관점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은 이거는 완전히 연역법적 해석이죠. 선교의 렌즈를 끼고 선교에 관련된 그런 구절만 추출해 내서 봐라! 성경이 선교를 얘기하고 있잖아요. 설득력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죠? 이 네 가지를 같이 통합해서 볼 때 성경의 더 깊은 하나님의 선교의 내러티브하는 사각지대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전제 조건 아래 이제 구약부터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하나님의 첫 번째 계획이 무엇이냐? 복 주시고 흩으시는 것, 디아스포라 입니다. 흩으셔서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복을 나누라는 것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하나님 어떻게 말씀하시죠? “땅에 가득하라 먼저 복을 주셨습니다.(1:18) Fill the Earth 땅에 가득하라고 축복하신 것이죠. 이 복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디아스포라는 원래 개념이죠. 그런데 인류가 죄 가운데 빠져서 완전히 이것을 없애고 하나님의 명령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노아 때에 홍수로 심판하시고 노아의 가족들을 다시 구출하신 다음에 다시 그들과 말씀하시죠. 보호해 주시고 땅에 가득하라” Fill the Earth하라는 것이죠. 어떻게 땅이 가득한가요? 흩어질 때만이 가득하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다시 한 번 약속 하십니다. 땅에서 번성하라” Multiply on the Earth, 흩어지라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준 복을 흩어져서 나누라. 디아스포라가 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은 창세기 10 11장에 보면은 Table of the Nations가 나옵니다. 그러면요.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 , 야벳으로 나옵니다. 이들이 흩어지게 됐죠. 여기 보면 사람들인데 이것은 히브리어로 goy 그 다음에 영어로는 ethnos, 히브리어 입니다. 이거는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종족으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 흩어지게 하셨죠. 그래서  70개의 종족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야벳이 14개 족속, 함이 30개 족속, 셈이 26개 족속 이렇게 흩어졌습니다. 디아스포라의 계획을 다시 복구시켰죠.

그런데 이제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을 거역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샘 종족이 시날로 가니까 시날의 아주 멋진 그러한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바로 니브롯이 지은 문명이죠. 여러분 시날을 작은 도시로 보시면 안 됩니다.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이건 대한민국 면적의 한 다섯 여섯배 정도 되는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시날은 굉장히 넓은 쪽으로 보셔야 됩니다. 샘 종족이 여기 오니까 이게 기가 막히게 예쁘고 어트랙티브 하니까 흩어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여기서 이들이 모여서 흩어지지 않고 바벨탑을 짓습니다. 그렇다면은 바벨탑은 단수가 아니라 시날 전체에 퍼져 있는 복수일 가능성도 우리는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라크에 와 보시면 이러한 지구라트 성전들에 이러한 잔재들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바벨탑의 흔적이 아니겠는가?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흩어지라는 디아스포라의 명령을 거역한 채 그들이 바벨탑을 쌓으신 거죠.

그렇기 때문에 바벨탑의 붕괴 사건은 인류의 그레이트 터닝 포인트 위대한 대전환점입니다. 바벨탑 이전은 인간은 단일 문화에 있었고, 단일 종족이었고, 단일 언어, 한 가지 언어만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또한 단일 지역이었습니다. 정착민이었죠. 하지만 바벨탑의 붕괴로 인해서 이제 그들은 다문화, 다종족, 70개의 종족 언어, 다 지역 그리고 또한 디아스포라가 됐습니다. 여러분 이거는요 비가역적입니다.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면 아기는 절대 다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은 철저한 디아스포라의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 가운데 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민족을 섬기라고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예죠. 우리는 한민족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Pre-Babel 바벨탑 이전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Post-Bable 바벨탑 이후의 패러다임으로 다 바뀌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하지만 많은 그들이 여전히 바벨탑 이전에 패러다임으로 사역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죠. 여러분 잘아시는 창세기 12장입니다.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기도하라 복음 전하라가 아니죠. Leave 떠나라고 했습니다. Be Diaspora to save Diaspora 디아스포라를 위해서 네가 먼저 떠나라 디아스포라가 되라 네 문화를 떠나고 언어를 떠나라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내가 너에게 준 복을 바라크를 나누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약속의 땅과 후손을 주겠다라고 얘기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Be Diaspora to save Diaspora 디아스포라를 섬기기 위해서는 너희의 문화와 Compotable Zone을 떠나 디아스포라가 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바벨탑 사건과 아브라함은 굉장히 대조가 됩니다. 사람들은 외쳤죠. 우리 이름을 위대하게 하자. No, 내가 너희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라 우리가 모여서 탑을 쌓고 위대한 나라를 만들자 아니다. 떠나라, Be Scattering, Leave 이렇게 말씀하신 내가 너를 위대한 나로 말씀 온 세상으로 흩어지라 흩어지게 됐습니다너희도 온 세상으로 흩어져서 그들의 복을 전하라라고 했습니다. 바벨탑은 인류의 타락을 얘기한다면은 아브라함의 사건은 인류의 구속을 얘기하는 두 사건이 대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선교적 공동체로 부르셨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선교적 디아스포라, 다민족 다문화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갈대아인이었습니다. 여러분 갈대인은요 혼합 민족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앗시리아, 우르, 아카디아인들이 섞여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갈대아인 입니다. 이거는 완전히 섞여 있는 혼합 민족입니다. 이제 이들이 하란으로 가는데 이제 그들이 헷 족속들을 얻게 됩니다. 이제 다마스커스로 가죠. 여러분 잘 아는 엘리에셀 이라는 종을 얻습니다. 갈대인, 헷 족속, 다마스커스인 다민족 공동체가 되죠.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갑니다. 이제 이집트인이 합류합니다.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죠? 그러자 돌아오니까 75세가 되서야 아브라함이 히브리인 이라는 정체성을 얻습니다. 여러분 어느 나라에 가셔서 75세까지 사시면은 여러분의 나라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세요? 아니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인의 정체성은 나중에 75세에 얻은 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인이 합리화죠. 여러분 아브라함의 공동체는요. 318명의 군사를 추정해 봤을 때 제가 또 공학자 아닙니까? 최소한 3천 명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로 보입니다. 이 사람들이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다민족 다문화 선교적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만드셨다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유대인이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 보십시오. 이들은 철저하게 다민족이 섞여 있는 혼합 아브라함 자체가 철저한 혼합적인 가이드 라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다민족화 시키는 것이죠.

그러면 할례를 볼까요? 할례를 보면 하나님이 할례를 주시기 전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너는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니라 또 사래 사라로 바꾸셨습니다. 너는 모든 민족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먼저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주는 할례는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할례를 보시죠. 할례를 받을 때 어떻게 받았습니까? 이스마엘이 받았습니다. 이스마엘은 하갈 이집트 여인과 아브라함이라는 혼혈 민족과의 혼혈아.

그리고 이방 사람에게 온 모든 사람 아까 말씀드린 블레셋, 이집트 사람, 헷 족속, 갈대아인, 다마스커스 이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가 유대인만 위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할례는 히브리아인과 모든 이방인을 위한 선교적 할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타임라인을 보시죠. 할례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구원하셨죠. 내가 너를 의롭게 하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 모든 민족의 아비로 바꾸셨죠. 그 다음에 비로소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할례를 주셨습니다.  할례는 모든 민족을 위한 선교적 할례였습니다. 즉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속과 언약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됐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과 언약과 그리고 또한 구속적 관점을 통폐합해서 선교적 관점으로 재조명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할례의 목적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할례는 아브라함의 다민족, 다문화, 모든 민족들을 축복하는 언약과 구속하는 하나님의 표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대아인, 헷족속, 다마스커스, 이집트, 히브리, 블레셋 족속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구속받았고, 언약을 받았고, 하나님이 이들을 사용해서 70개의 종족을 축복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아브라함의 공동체를 디아스포라, 다민족, 다문화, 선교적 공동체로 바꾸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한 이런 선교적 언약의 계승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삭에게 말씀하셨죠.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또한 야곱에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요셉 7년 동안 대 환란 때,  7년 풍년 때 곡식을 잘 저장해서 모든 민족을 살리는 선교사의 역할을 하게 되어 졌습니다. 이러한 선교적 언약이 계승되는 것을 알 수 있죠.

창세기 1장에서 11장에는 창조와 타락의 역사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2장부터는 하나님께서 본격적인 구속, 선교의 역사를 펼쳐 나가시죠.  선교의 언약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후손들에게 계승됩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여러분과 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죠? 선교의 DNA가 디아스포라의 DNA가 우리에게 완벽하게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모든 민족을 섬기기 위한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복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유대인에게 제한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은 먼저는 가나안 땅을 축복하셨습니다. 왜요? 거기가 결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유대를 축복하신 이유는 모든 민족을 위함이고, 가나안 땅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 라는 것은 온 세상을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가 특수성 선민의식 가운데 빠지면 안 되는 것이죠. 우리는 반드시 Prosperity gospel 여기에 빠지면 무엇입니까? Prosperity Theology, 번영 신학에 빠지는 것이죠.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반드시 보편성으로 나가야 되는 Universality로 나가야죠, 선민 의식에서 반드시 우리는 Missionnal Gospel 선교 의식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 우리를 축복하신 이유는 모든 민족을 축복하기 위함이죠.

이제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다민족화 시킵니다. 아브라함을 볼까요? 아브라함은 갈대인, 혼합민족이라고 했죠. 후천적으로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얻은 것뿐입니다. 하갈과 다민족 결혼을 했죠? 그러므로 이스마엘은 반드시 혼혈아 였습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역시 마찬가지로 다민족 결혼을 했죠. 메스포타미아에서 리브가가 오지 않습니까? 분명히 다민족 결혼이었죠그렇기 때문에 야곱과 에서가 유대인이었다고요? 아니에요. 그들은 쌍둥이 혼혈아 였습니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다민족화 시키는 거죠.

다음 세대를 볼까요. 야곱을 볼까요? 다민족 결을 했죠. 아람여인과 두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12 자손,  12지파의 이 자손이 원래 이 자손 동쪽에 이 아비들은 전부 다 혼혈아였습니다그리고 시므온은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이집트에서 이중 언어, 이중 문화인이 됐죠? 이집트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면요. 므낫세나 에브라임은 당연히 혼혈아입니다. 히브리인과 이집트인이 섞였죠. 그들의 모국어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그거는 제가 볼 때는 아빠인 요셉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총리 대신 아닙니까? 엄마하고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겠죠. 그러면요. 엄마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 당연히 엄마의 언어, 이집트 언어를 배웠겠죠?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집트 말이 훨씬 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외모도 달랐죠. 그렇기 때문에 10명의 다른 형제들에게 차별 대우를 받으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러분 12지파의 조상들이 유대인이었다고요. 아니요 그들은 철저한 혼혈아였습니다. 성경을 우리가 재해석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볼까요. 야곱의 열두 아들 말씀드렸죠. 모두 혼혈아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섞여 있는 혼혈아들이죠. 그리고, 레위기 24에 보면은, 히브리인 엄마와 이집트 아빠 사이에 태어난 또 혼혈아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400몇 년을 살았습니까? 거의 뭐 430년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이런 혼혈아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첫 번째 결혼은 무엇이었습니까? 미디안 여인과 다민족 결혼을 했습니다. 그 아들이 게르솜과 엘리에셀은 당연히 혼혈아 였겠지요. 모세는 레위지파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지파는 거룩한 성전을 섬기는 지파, 철저한 유대인이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 지파는 철저한 혼혈아들이었습니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이었죠. 두 번째 결혼을 볼까요. 구스 여인, 아프리카 블렉과 결혼을 했습니다. 레위지파의 후손들은 아프리카인과 유대인들이 결혼을 한 그런 후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철저한 다민족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무리하게 연역법적으로 해석하나요? 아닙니다. 네 가지 관점으로 같이 해석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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