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정직한 기도로 주님 앞에 (마15:1~20) 2021.02.19

다이나마이트2 2021. 2. 19. 23:20

정직한 기도로 주님 앞에 (마15:1~20)   말씀: 이상준 목사님

 

오늘 하루도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① 제자들과, ② 무리들과, ③ 바리새인들, ④ 예수님,

이렇게 네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2절 말씀을 읽어보면, ”그때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우리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습니까?’

음식을 먹기 전에 그들은 손을 씻지 않습니다.“(마15:1~2)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십니까?

구약 종교에 젖어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고 예수님에게 항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것은 본질의 문제가 아니고, ”형식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본질의 문제가 있고, 형식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에는 그 본래의 토라가 있고, 그 다음에 ”시행 세칙“과 같은 미쉬나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미쉬나를 어겼다.“것으로 추정합니다.

미쉬나를 지킨다고 토라를 어기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이렇게 지적하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통은 식사할 때, 누구나 손을 깨끗이 씻고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옳은 얘기이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절에,

혹시나 열이 있는 사람이 겉으로는 열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지적에, 예수님은 3~4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너희는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다.“(마15:3~4)라고

격앙된 모습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통 때문에 믿음을 어기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언어보다도, 그 사람의 중심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너희는 전통을 지킨다.“고 하면서, ”토라를 지키기 위해, 미쉬나를 어긴다.”면,

그것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십계명에서 우선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덧붙여서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에도,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이 지식의 시작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혜와 교훈을 가볍게 여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출발점이지만, 미련한 사람은 지혜와 교훈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 공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말입니다.

 

성경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②그러므로 가정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사랑이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도, ”인간관계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야 12지파의 축복이 ”자자손손으로 후대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축복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축복의 언어를 사용할 때, 2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① 하나는 ”하나님에게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이고,

② 또 다른 것은 “수동태로 표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자세히 설명을 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자기 자신인데도, 나라는 주체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에서도 봉사를 많이 했으니, 가정에서는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했어도, 가정에 와서 대충 대충하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였듯이, 가정에서도 열심히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보다도 2배나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 따로, 생활 따로, 노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서도,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니,

”너희 전통을 핑계로,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예수님은 격앙된 언어를 사용하시면서,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위선자라는 것은 “연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연기하는 연기자는 가끔 ”자기가 실제로 주인공인 것으로 착각한다.“고 합니다.

 

4복음서에서 공통적인 것은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헤롯당이라“고 비판하면서,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을 미워했어요.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도 하지만, ”열심 당원으로 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그 당시에 양대 산맥으로, 실제로 세속적인 사람들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들과 싸우셨나요?

그것은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가장 최악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가 좀 이상하면, 얼른 가서 검사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증상이 있는데도 숨기고, ”자기는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는 문제가 있는 사람인데,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떤가요?

혹시나 종교적인 가면을 쓰고,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아침마다 기도를 하는데, 왜, 변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가정을 위해 기도는 하는데, ”나는 빼고, 남편이 문제“라고 하니까,

”남편이 변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 탓만 하고,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내가 문제입니다. 내가 변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자기 자신을 탓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바로 그 위선자이니, 나를 탓하고,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하는데, 아직도 남의 탓만 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이 설교는 남편이 들어야 하는 데---“라고 생각하니까,

그 설교가 나에게 적용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설교는 ”내가 듣고,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되어야 하는데, “너 같은 죄인”이 되어서 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말씀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야 하는데, 정작 본인은 “너 같은 죄인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들으니까,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사라지고, 비판과 정죄만 나타나니까, 변하지 않는 거예요.

 

자신도, 옆에 있는 타인도, 모두 다 죄인인데, 우리는 “속일 수 없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그걸 모르고, 남의 탓만 하니까,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그들은 자기 자신은 가장 의롭고, ”내가 가장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원은 예루살렘이 몰락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다 보니, 그들이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들은 열 사람만 모이면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경건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포로 귀환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어느새 그들은 세속화되기 시작하여,

점점 권력과 물질을 탐하게 되면서 ”인본주의를 숭상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된 것입니다.

 

10~11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무리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잘 듣고, 깨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라.“(마15:10~11)라고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결한 것이 아니고, “입에서 나오는 것이 불결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불결하다“는 것은 "기분이 나쁘고, 감정이 상했다"는 뜻입니다.

기분이 나빠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상황을 보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고,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살면,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16절 말씀에서, “너희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느냐?”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5:16)

제자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까, 예수님은 답답해서 질타하십니다.

▶오늘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네 부류의 사람이 나오는데,

①첫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중적으로 생각을 하고, “자신들만 옳다”고 처신합니다.

 

②두 번째로 나오는 인물이 집단적으로 따라가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분별력이 없어서, 그냥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③세 번째로 나오는 인물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정직하신 분으로, 죄 많은 세상에서 리드하시는 분입니다.

 

④네 번째로 등장하는 분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거짓이 왜, 거짓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저는 이 말씀 중에서 셍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잠실에서 살았는데, 그곳에는 땅콩 밭이 많이 있었어요.

 

땅콩은 뿌리 열매이므로, 땅을 파고 나면 그 속에 많은 열매가 숨어 있습니다.

늦가을이 되어 추수할 때가 되면, 빈 공터에서 땅콩을 캐내서 구워 먹던 생각이 나고,

저녁때가 되면 옷에 묻어 있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옷을 입은 채로 땅에 딩굴으면 냄새는 없어지는데,

옷이 엉망이 되어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제자들처럼, “제가 잘 모르니까, 죄를 그냥 인정을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정해진 모범 답안지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느냐?“라고 남의 탓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묻고 있는 주님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정직하고, 순수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고, 내가 회개하오니, 나를 바르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잘못된 것은 ”내가 안고, 내가 인정하고“ 나가야 합니다.

 

혹시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지는 않으셨나요?

우리가 그런 사람이라면, 백날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변하지 않은 사람이 바리새인들이니까, 우리는 바리새인이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답답해서 14절 말씀에서,

”그들을 내버려 두라. 그들은 앞을 못 보는 인도자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마15:14)고 경고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려면, 정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는 종교적으로 교양 있게 살았지만, 나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나를 붙잡아 주십시오.”라고

솔직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위선과 순종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으니, 우리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본질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