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물 위를 걸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들 (마14:22~36) 2021.02.18

다이나마이트2 2021. 2. 18. 22:21

물 위를 걸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들 (마14:22~36)       말씀: 박종길 목사님


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무리를 떠나 혼자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4장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후,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건너가게 하시고, 무리를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마14:22)

 

이 말씀을 개역개정 성경에는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마14:22)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즉시“와 “재촉하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서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인기를 거절하고, 22절과 같이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제자들을 배를 타고 가도록 조치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군중들은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군중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셨을까요?

그것은 군중들이 원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왕이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본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은 “십자가로 향하는 예수님”을 그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제자들은 서로 “누가 높으냐?”에 대해 다툼이 있었을 때,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에서, “인자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치를 몸값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 주려고 온 것이다.”(막10:45)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받은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일“을 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죄는 헬라어 원어에, ”과녁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라는 과녁을 향해서 직진해야 하는데, ”빗나가고“ 있으니“

똑바로 가기 위해, 예수님이 혼자서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기도하러 갔습니다.

우리 끼리 하는 말인데, 무슨 일이 있을 때, ”기도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도 무슨 일이 있을 때, 기도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 할 때 기도를 했고, 기적을 행하기 전에도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과녁을 빗나가지 않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기도하는 인생에게는 과녁이 빗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변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질병이 생길 때에도 기도하십시오.

자녀의 문제가 생길 때에도 기도하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쫓아다니지 말고, 주님처럼 기도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미리 알고, 보살피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저녁 7시에 배를 타고 미리 떠났고, 그 때가 밤 사경(새벽 3시쯤)이 되었으니,

7시간이나 태풍과 씨름하는 장면을 멀리 산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 가셨습니다.“(마14:25)

 

우리말 성경에는 ”이른 새벽“이라고 했지만, 개역 개정성경에는 “밤 사경”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니,

한 밤중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니, 얼마나 놀랬을까요?

 

우리 인생도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고난과 한숨 소리도 주님은 언제나 듣고 계십니다.

 

26~27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며 ‘유령이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마14:26~2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가복음 6장 48~50절의 말씀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강한 바람 때문에, 노 젖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그들에게 나아가시다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인줄 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친 풍랑으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본 예수님은 즉시 기도를 멈추고,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물 위를 걸어 가셨을까요?

그것은 새벽 3시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 뱃사공이 없어서 물 위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시는 일에 불가능도 없고,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또 발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적 사건이 있은 후에는 “곧 바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풍랑을 만나는 일”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일 다음에는 환란이 찾아오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축복과 고난이 번갈아 가며” 나타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연약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분입니다.

 

어떠한 시험과 위기가 찾아와도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거친 풍랑과 폭풍 속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때 오시는 분이 예수님인 것을 모르고, “유령이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설교하지 않고, 간단히 대답하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① 이미 짐작하여 알고 있었고, ② 그런 모습을 보고, ③ 주님은 달려오십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에, “여러분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여러분이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시며,

시험을 당할 때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고전10:13)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때, 분명하게 개입하여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고 오셔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빠지면, 그 때 주님은 미리 아시고,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믿으시고,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로 예수님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붙잡아 주십니다.

 

30~3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베드로는 바람을 보자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베드로는 소리쳤습니다.

’주여, 살려 주십시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했느냐?”(마14:30~32)

 

물 위를 걸어오는 모습을 본 베드로는 자기도 할 것 같아서, 같이 따라서 시도해 봅니다.

그러나 그는 바람을 보고, 두려워서 초점이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따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고 그대로 나갈 때, 우리에게도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우리는 환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초점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기적이지만, 우리가 물속에 빠지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첫째로, 우리는 “물속으로 가라앉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주여, 살려 주십시오.”라고 외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②둘째로, 그럴 때, 주님은 즉시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즉시 달려오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왜, 믿음이 없느냐?“라고 꾸짖지 않으시고, 그냥 도와주십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 말씀에도,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욌다.”(막2:17)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야단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32절의 말씀을 보면,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 졌습니다.”(마14:32)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가 이성으로 판단하면 되는 게 없지만, 믿음으로 행하면 기적이 생깁니다.

 

거친 풍랑을 만났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곧바로 풍랑은 잔잔해 집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에도 주님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그런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시고, 항상 주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