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하늘나라, 내가 소유할 가장 귀한 보물 (마13:44~58) 2021.02.15

다이나마이트2 2021. 2. 15. 21:24

하늘나라, 내가 소유할 가장 귀한 보물 (마13:44~58)  말씀: 신동식 목사님

 

공동묘지에 갔더니 이런 비석이 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도 그 자리에 웃고 있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라는 묘비명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됩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오래 살 것 같아도, 우리의 인생은 길면 80이고, 오래 살아도 90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손자 손녀들은 자기의 할아버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냥 사랑해 주던 얼굴만 기억하지, 우리는 그냥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삶의 방향을 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이 말씀인 마태복음 13장 44~45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늘나라에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감추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

모든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과 같다.“(마13:44~45)

 

어느 소작 농부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그 당시에는 보물을 밭에다 파묻는 풍습이 있었기에, 누구나 귀가 솔깃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자기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왜, 농부가 그 밭을 샀을까요? 그것은 그가 보물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는 그 밭을 소유하고 난 다음에 겉으로는 바뀐 게 없지만, 속으로는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자기에게 다가올 영광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물이 밭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진주는 열심히 찾아야 발견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씨앗이 밭에 떨어져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이,

그 숨겨져 있는 하나님 나라가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처음부터 완전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열심히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임하면, ”이 세상에 끝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너무도 기뻐합니다.

그 때,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그의 마음속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영광스런 천국을 그렇게 영광스런 천국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아멘으로 받아드리지만, 그렇다고 ”지금 천국으로 가십시오.”라고 얘기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표정입니다.

 

또 다시 그에게 다른 질문으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십시오.”라고 말하면,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갖고 있는 소망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소망이 진짜로 크다면, 그런 대답에 시쿤둥 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지금의 암사유적지 근처에 살았기에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뭔가 발견된다.”는 소문을 듣고, 자주 그곳에 놀러가서 무엇인가를 캐 본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무슨 뼈를 발견하고, 그것이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혼자서 판단하고,

붓으로 발골 작업을 해서, 며칠 간 고생하며 소중하게 보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머리속으로 갑자기 유명해 질 것을 상상하며, 귀하게 다루다가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더니,

“왠, 개 뼈를 가져왔느냐?“고 핀잔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잘 못 본 것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오래 동안 책상 속에 넣어놓고, 귀하게 보관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허황된 생각으로, 보석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계십니다.

또 저는 한 때,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 놀면서, 그것으로 동전을 많이 모으기도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보화가 있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선물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천국입니다.

 

그러니 천국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의 목표와 방향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1) 첫째로, “하늘나라는 밭에서 발견되는 보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2) 둘쩨로,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인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그는 앞뒤를 따지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런 가치 있는 물건을 사서, 그 다음에 가치가 높아지면,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귀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여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말씀은 ”이제 모두 다 지불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존재가 되었고, 그래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꽃같은 정열로 찾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중심으로“ 바뀔 것을 원했습니다.

 

(3) 셋째로, 하나님 나라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47~50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하늘나라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지는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차면, 끌어내어 좋은 것은 골라내어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린다.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가 와서 의로운 사람들 가운데서 악한 사람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다.“(마13:47~50)

 

천국은 밑바닥을 싹쓸이하면서 고기를 잡는 저인망 그물과 같습니다.

다른 말로, 쌍끌이 어선이 모든 물고기를 싹쓸이해서,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선별하는 것과 같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누구나 접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의인은 좋은 곳으로 보내지고, 악인은 불에 타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의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고, 악인은 자기 혼자서 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코 천국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지만, ”천국이 당연히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들을 귀가 있는 자가 소유하는 장소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잘 살지만, 나중에는 음부로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부자와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었는데, 두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여기에 나오는 부자는 그냥 부자라고 부르고, 예수님은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요.

그러나 거지에게는 나사로라고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한 인생을 평가하는데, 오직 부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애도하며,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이 사람에게 [부자]라는 말 이외에, 다른 설명을 해 주지 않습니다.

 

▶왜 부자에게 그랬을까요?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어요. 당시 부자들은 그런 옷을 입었어요.

 

이 부자는 항상 화려한 옷을 입었고, 날마다 잔치를 벌였어요.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회를 열었고, 그의 대문은 거대한 문으로 세워졌고,

그 문 앞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살았어요.

 

그 거지는 완전히 버려진 상태로 방치된 사람입니다.

그가 입은 옷은 초라하고, 그의 몸에는 상처가 있었고, 그의 옷은 그 상처를 덮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음식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어서 먹었고, 그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 거지는 부자가 가지지 않은 한 가지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사로라는 이름입니다.

 

그는 가난했지만, 그 사람이라고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과, 인생의 연민이 없을 리가 없지요.

그러나 거지는 그런 의식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죽었습니다.

▶누가 먼저 죽었을까요? 거지 나사로가 못 먹었으니까, 먼저 죽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사회적 불평이 있지만, 언젠가는 평등으로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은 “죽음은 평등하다.”고 합니다.

물론, 잘사는 사람도 죽고, 못사는 사람도 죽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으면,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믿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믿어야 합니다.

 

53절에서 57절의 말씀은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고, 고향으로 가서 배척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왜, 고향에서 배척을 받습니까?

그것은 고향 사람들이 과거를 잘 알기 때문에, 그를 배척합니다.

 

우리의 옛말에, “고향에 선비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고향에는 비밀이 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선비 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 지혜에 놀랐지만,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비아냥거리고,

놀리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편견입니다.

 

고향 사람들의 편견과 교만함으로 “완전하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요소는 알지도 못하면서,

옛날 목수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나사렛 사람들의 태도에 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는 다 알고 있어!”라는 편견과 교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이 우리에게 임할 때,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에 대해 놀라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수님이 기적을 보이셨는데, 교만과 편견으로 모르는 것에 놀랐고,

②두 번째로 놀라는 것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놀랐습니다.

 

백부장은 중풍에 걸린 “자기 부하를 고쳐 달라.“고 예수님에게 요청합니다.

백부장이 하는 요청은 아주 단순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저희 집에까지 오시게 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나으라”는 말씀만, 한 마디 해 주시면, 제 부하가 나을 것입니다."

 

백부장은 겸손하게도 그저 주님이 말씀만 해 주시면, “제 종이 낫습니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정중히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이 하는 말을 들으시고,

따라온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눅7:9)고 칭찬해 주십니다.

 

그러고 나서, 장교가 보낸 그 사람이 집에 돌아가 보니, 부하의 병은 이미 나아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종은 그 자리에 없었는데도, ”종의 병을 나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렇게 공간을 뛰어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큰 믿음입니다.

 

우리도 교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편견과 교만함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