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예수님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 나라 (마12:22~37) 2021.02.10

다이나마이트2 2021. 2. 10. 18:06

예수님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 나라 (마12:22~37)   말씀: 김상수 목사님

 

90일 새벽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4복음서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은 천국의 특성과 “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마태는 눈이 멀었거나, 말을 못하는 질병은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에 걸린 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질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은

”이 분이 혹시 구약에서 말하던 메시아가 아닌지?“를 의심을 하게 되었고,

또 사람들은 ”귀신의 힘을 빌려서,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닌지?”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22~24절 말씀을 보면, 그 때 사람들은 놀라며, “혹시 그 분이 다윗의 자손은 아닐까?”를 의심하거나,

“혹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내 쫓는다“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표적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25~30절에서 4가지로 반박하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반박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①사탄을 쫓아내면, 사탄의 나라는 분열할 것이고,

②구약 유대교에서도 귀신을 몰아내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라고 반박하면서,

③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영으로 그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④그러나 예수님은 전쟁에서 빼앗긴 영토가 있다면, 먼저 점령군들을 제압해야 하듯이,

병든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병을 주술사들이 치유했으니까,

“이런 방법으로 치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영으로 귀신들린 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불완전한 세상이 되어, “사탄이 종노릇하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30절 말씀에서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마12:30)

 

이 말씀은 ”진리에 대해서 누구 편에 서느냐?“를 직접 물어보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다가, 제가 오래 전에 교육전도사로 근무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교회는 아주 보수적인 전통교회인데, 그 교회에서 저의 사수이셨던 목사님이 게셨는데,

그 분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신 훌륭한 분입니다.

 

그분은 늘 방언기도를 하는데, 수련회를 ”기도하면서 준비하라“고 당부하셔서

제가 그렇게 따랐는데, 그 수련회에서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청년이 쓰러졌습니다.

그에게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니까,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진 거예요.

그는 울다가 웃다가, 입에 거품을 품어내며 발광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사탄과 귀신이 작용하여 그에게 악한 영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상황을 수습하느라, 한 시간이나 넘게 씨름을 했습니다.

저는 크리넥스 휴지를 사용하여,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거품을 딱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교회는 아주 전통적인 교회이기에, ”어떻게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해서, 발칵 뒤집어 졌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럴 때, 무당을 불러와서 굿을 했습니다.

▶여러분, 무당이 하는 일이 무엇 입니까?

무당은 귀신을 불러와서 굿을 하는 사람입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으로는 더 강하고 쎈 귀신을 불러와서, 그것을 이용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힘“으로 병을 고치는 것이지, 귀신이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당을 찾아가거나 아무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더러운 귀신은 당신의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면, 자연히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난해한 구절을 다시 설명해 주십니다.

32~33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누구든지 인자를 욕하는 사람은 용서 받겠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12:32)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마12:33)

 

이 말씀은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

”성령이 하시는 일을 부인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 가운데, “나도 그런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단이 등장하여,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거기에 성령훼방 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이런 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왜, 성령 안에서, 성경을 읽는 데도 난해한 구절이 나옵니까?

”왜, 이렇게 서로 모순되게 얘기를 할까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고,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했는데,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배교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적하니까,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하나님을 떠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우리들은 이런 성령훼방 죄에 속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마태가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이 말을 듣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라 경고하는 말과 같습니다.

 

▶누가 그런 행위를 했습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보고 있는데도, 예수님에게 대적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 나라를 방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이켜서,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가룟유다같이, 계속해서 기회를 주었는데도 그는 결코 돌아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 할 수 있어도,

그러나 "성령님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 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성령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나를 회개하도록 움직인 분은 성령님이고, 그 성령님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 성령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해도, 성령님은 꼭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이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성령님을 모욕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12장 33절에서, 예수님은 열매의 비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사람“이고, 열매는 ”그 사람의 변화된 삶“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무와 열매”의 관계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얻는 법이니까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선한 척 해도 속이 뒤틀리면, 웃다가도 쌍하고 터지는 게 우리 인간이에요.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거든요.


겉으로는 젊잖게 앉아서 교양 있게 예배를 보지만, 속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본질이 변해야 해요. 그러니까 본질, 내용, 알맹이가 변해야 합니다.

 

그 나무에서는 그런 열매가 맺을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종자가 그렇기 때문이죠.


그 나무의 열매가 나쁘면, 좋은 나무를 선택하여 접붙여서, 좋은 열매를 얻을 수가 있어요.
그렇게 접붙이는 방법이 신앙이고, 좋은 나무가 예수님 이기 때문이지요.

 

마태복은 7장 15-16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은 “무화가 나무가 어떻게 좋은 포도 열매를 맺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마태는 여기서 행위를 심판과 연계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신칭의로 알려주고 있는 것은 “책임 있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기 생각과 자기중심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안 좋은 집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에게 물어보니까?

그 사람의 대답은 “사람들이 거기에 많이 모이니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좋은 곳입니까?

북한의 군중대회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니까, 그곳이 좋은 곳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제자학교에서 제자훈련을 시킬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때가 ”저에게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고 회상합니다.

55세 정도 되시는 여성분인데, 우연히 자기 소개서를 보다가 전공 칸이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궁금하기에, ”집사님, 전공이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그 분이 그냥 펑펑 울었어요.

저는 ”아차, 제가 실수 했구나”라고 직감하고, 얼른 그 분에게 “제가 실수 했습니다.”라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 분은 1분정도 울고 나서, 진정을 하고, 하시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목사님이 ‘전공이 뭐냐?’고 묻는 순간에, 저는 주마등처럼, 저의 과거가 스쳐 지나갔어요.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너무나 바쁘게 살다가 보니까, 이제는 너무나 허무하고,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우울증이 왔고, 분노가 생겼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던 중에 JDS에 오게 되었는데, 가족들도 저에게 ”엄마는 전공이 뭐야?“라고 묻는 가족이 없었는데,

목사님이 그것을 물어 주시니까, ”그때, 제가 감격했다“는 거예요.

 

저는 국문과 출신으로, 교사를 꿈꾸었는데, 살다보니 ”자기를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그래서 울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생활가운데, “주님의 나라에 대한 묵상”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항상 주님의 나라를 묵상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되심을 알게 되면,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파도가 밀려오면, 사람이 변하고, 성격이 변하여, 사람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 다음에 [내 인격]이 변하고, 그리고는 나에게 비전이 생기게 되어,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비전이 생기면, 내가 사는 목적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런 비전에 따라 살아가면서,

헌신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