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와 겸손으로 누리는 참된 안식 (마11:20~30) 말씀: 윤길중 목사님
독일의 베스트셀러로, “피로 사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현대 사회를 “피곤한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성과주의로 형성되어 있어서, 우리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하므로, 우리를 쉬지 못하게 만듭니다.
특히 요즘에는 수면 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면을 중요시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회 현장에도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아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아?“라고 부르십니다.
이 표현은 ”인생의 짐이 그만큼 무겁다”는 말입니다.
저 마다 지고 있는 인생의 짐이 무겁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소 두 마리가 멍에를 지고, 가는 소를 보면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소가 언덕을 올라갈 때에는 숨을 가쁘게 쉬고, 거품을 내 품으며 갑니다.
이런 모양을 “무거운 짐을 진 인생이라“고 비유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우리의 짐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아버지는 생육의 짐으로, 어머니는 양육의 짐으로, 학생들은 공부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목회자들은 고생하는 성도들을 위로하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동안 보직이 없었을 때는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그 기간이 얼마 길지 못했고, 그 후에 임직을 맡으면서 또 다시 무거운 짐을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무거운 짐이 따라다니는데, 그것은 죄의 짐입니다.
이 죄의 짐은 우리 스스로 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찾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잊으려고 음주와 도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 해법을 이미 알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짐을 벗을 수 있는 해법은 무엇입니까?
(1) 첫째로, 예수님은 “모두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마11:28)
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대가 아니고,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한 사람들 모두를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궁궐 안에서 오라“고 하지 않고, 그냥 ”내 앞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 앞으로 오라“는 말씀은 ”회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꾸짖고 계십니다.
▶왜, 그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았어요.
천국의 복음은 신비로운 것인데,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면, 쉽게 회개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복잡하고,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아 갈 때, ”쉼을 얻는다.”고 했는데, 쉼을 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에”, 쉼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죄의 짐은 십자가에서만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벽시간에 Quiet Time을 갖습니다.
이 시간이 QT시간인데, “조용한 안식을 얻는 시간”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에게 나아가면, 마음이 가벼워 지고, 깨끗해집니다.
이 시간에는 복잡한 일들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2) 예수님은 이어서, 11장 29-30절 말씀에서 “내게서 쉼을 배우라“고 요구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내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메기가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11:29~30)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539장에도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 놓고”라는 찬송입니다.
그러면서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앞에 엎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죄의 짐을 내려 놓고, ”예수님이 주시는 쉼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농경사회이니까, 농부가 소와 함께 밭을 갈고 농사를 짓습니다.
거기에는 힘센 소가 약한 소를 리드하는데, 유대인의 관계와 같습니다.
이 모양은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의 멍에가 가벼워집니다.
그러니 인간의 죄성인 자기를 내 세울 때는 더 어려워집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멍에는 쉽고, 가벼운 멍에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멍에는 ”율법의 멍에“인데, 예수님은 ”그것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태도는 “온유와 겸손”이니까, “그것을 배우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부드럽고 온유하신 분이니까, 우리는 그걸 본받아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온유한 성품으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분노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은 자기의 비천함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하고,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어요.
이것은 수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으로 마음에서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심정으로“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온유와 겸손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가정에서, 부부관계에도, 자녀관계에도, 직장에서의 관계에도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공동체에서 리더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면,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지면, 친구가 많아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에 ”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가 얼마나 이름다운 노래입니까?
그러나 이 곡을 지으신 분은 “한 번도 가정을 가진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가정의 화목과 기쁨을 노래했지만, ”내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쉼이 필요한데, 거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그것이 온유와 겸손입니다.
▶집안에서 우리들이 왜 싸웁니까?
그것은 아내 생각과 남편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싸웁니다.
▶왜 사람들을 받아 드리지 않을까요?
그것은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남을 싫어하는 까닭은 뭘까요?
내가 ”남을 바라보는 기준“과 그것을 ”받아드리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간은 이와 같이 너무나 다른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으면 모든 게 다 싫어도, 한 가지 때문에 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실패를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며, 주님의 성품인 겸손과 온유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안식] 진정한 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염려와 걱정을 떨쳐버리고, 온유와 겸손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가정이 새로워지고, 일하고 잇는 직장이 살아날 것입니다.
세상은 문화와 문명 속에 눌려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와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을 털어 놓고 기도하세요.
지식과 학식이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거부하지 말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럼, 진정한 쉼은 무엇인가요? 바로 영혼의 쉼입니다.
이런 놀라운 자유함과 쉼] 체험하면서,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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