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예수님을 향한 방향입니다. (마12:1~21) 말씀: 김소리 목사님
이 새벽에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믿음에 대한 말씀으로, “믿음은 예수님을 향한 방향이다“에 대한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외부 교회에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역에 도착하여 ”막 떠나는 열차를 기적같이 달려가서 겨우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숨을 돌이키고 보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열심을 내는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열정과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안식일에 대한 논쟁“입니다.
1-2절 말씀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무렵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소!” (마12:1~2)
사람마다 재미있는 것은 똑 같은 것을 보고도 “각각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축복으로 보는데, 또 다른 사람은 저주로 보는 거예요.
예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따 먹었는데, “그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것은 ”배가 고프면, 안식일이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추수하고 ”땅에 떨어진 이삭을 남겨두라”고 말씀하셨기에, 그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규정으로 정해 놓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식을 범했다“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원래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것이니, 지키려는 마음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은 규정에 따라, 자신만의 전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율법의 형식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가까이 하라“는 것인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속박하고,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규정을 정해 놓고,
정죄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3-4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게 돼 있는 진설병을 스스로 먹고,
또 자기 일행에게도 나누어 주지 않았느냐?”(마12:3~4)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제사장만 먹게 되어 있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진설병을 자신도 먹고,
일행에게 나누어 준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율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안식일의 본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5~6절 말씀에서 또다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또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보지 못했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12:5~6)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데,
그것이 ”율법 정신에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재차 설명해 주십니다.
성전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모독하는 사람에게는 성전모독 죄로 다스렸습니다.
성전은 그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해도, 그 집은 아무 의미가 없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보다 더 크신 분이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식일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또다시 7~8절 말씀에서 호세아 6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다시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 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마12:7~8)
이 말씀은 “형식보다 정신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이 중요하니까, 그런 율법 정신은 잊어버리고,
“형식을 지키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다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배드리는 제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얘기이지요.
우리도 교회에 와서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예수님이 보여야 하고,
그곳에 하나님이을 느껴야 하는데, 교회의 제도와 형식만 보고 가면 안됩니다.
그 구약종교의 신봉자들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의 껍데기만 가지고,
그걸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으면서도 진짜 메시아가 오니까,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구약종교를 숭상하면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고, ”과거의 습관대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그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그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본질인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의 포인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형식에 묶이지 말고, 그 뜻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이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오랫동안 젖어있던 구약종교를 따르다보니, 근본부터 흔들어 놓는 예수님이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안식일에 대한 인식도 각각 달랐던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예수님은 9~10절에서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는 그 곳을 떠나 유대 사람의 회당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마12:9~10)
예수님은 안식일이라도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고쳐 주시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에는 제사 드리는 일 이외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1~12절 말씀에서 다시 알려 주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 중 누군가 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안식일에 그 양이 구덩이에 빠진다면, 붙잡아 꺼내 주지 않겠느냐?
하물며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귀하냐? 그러니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마12:11~12)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면 안 된다.“는 바리새인들에게 ”구덩이에 빠진 양“을 비유하면서, 다시 알려 주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은 불법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서 그 손이 오르라든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한쪽 손가락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그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런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생각”이 단순한 것 같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14~15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정말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것을 알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갔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마12:14~15)
바리새파 사람들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라는 생각뿐이고,
형식만 중요시 여기고, 열정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뿐이니까, 결론은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15절 말씀에서도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터치하면, 생명이 살아나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지만, “정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조금도 세상에 휩쓸리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혹시나 여러분은 내 삶이 형식만 따르는 바리새인 같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에,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을 생각하면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도 합당하지 않다.”(마10:38)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역시 내 제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 “예수를 따르는 합당한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메고,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도 없고, 예수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의 속에 있는 뜻은 “내가 죽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죽고 싶다“는 뜻이니까, ”내가 죽어야 나에게 생명이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런 심정으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따라가면,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왜, 90일 새벽기도를 드리십니까? 왜, 성경을 통독하십니까?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방향을 맞춰서 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헌혈을 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헌혈을 통해, ”생명을 나누는 일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십자가를 지고, 내가 따르겠습니다.”라는 정신으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 생명이 있다“는 것이니, 우리 모두 그 길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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