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하시는 선교 (욘3:1~10) 말씀: 유병국 선교사님
저는 감비아 선교사로 섬기다가, 여러 가지 선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때에, 제가 분명하게 깨달았던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구약성경에서 “요나서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그것은 요나서가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도망치려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럼, 니느웨는 어떤 도시입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 옆에 있는 도시이지만, 가까운 곳이 아닙니다.
니느웨는 이라크와 터키, 그리고 시리아 사이에 접해있는 큰 도시입니다.
직선거리로 900킬로 정도이니까, 그 당시에 걸어서 가려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그곳에서 최근에 IS가 끝까지 남아서 저항하던 모술 지역입니다.
그 때가 7세기경이라 교통이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굳이 그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요나가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때 요나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보냈기 때문에” 그곳으로 온 것 뿐입니다.
요나는 마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순종하여 열정도 없이 외쳤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요나가 전한 말은 “다섯 가지 단어” 뿐입니다.
그것은 현지인의 말로, “호드 아르바힘 욤 베니네베 네파케트”입니다.
이 말은 즉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단순한 예언”입니다.
요나는 그저 짤막한 “심판의 말”을 했을 뿐입니다.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삼일 길이나 되는 큰 성읍에서 다 다니지도 않고, 하룻길만 다니면서 외쳤던 것입니다.
아마 요나는 이렇게 외쳐도,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신기하게도 니느웨에 사는 백성들을 뒤집어 놓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회에 움직일 때, 사회가 변화됩니다.
요나는 단순한 복음을 전했는데, 니느웨 백성들은 참회하는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요나의 외침에 니느웨가 흔들린 것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왕국의 수도인데, 요나는 유명한 선지자도 아니고, 이름도 없는 무명인이니까,
옷 차림이 허술한 사람이 와서, 기분 좋은 말도 아니고, ”회개하라“는 말을 했으니까, 놀랄 만도 하지요‘
그런데 요나가 선포한 메시지를 듣고,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주 놀랍습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금식을 하고, 베옷을 입었다“고 히니,
”얼마나 큰 효과를 보았는지?“ 상상할 수 없는 큰 효과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소식이 왕에게 까지 전해져서,
왕이 스스로 왕복을 벗고, 굵은 삼베옷으로 갈아입고, 칙령을 내립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사람이나 짐승이나 일체 먹을 것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고, 각자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악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요나가 한 말을 듣고, 왕이 놀랐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입니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입니다.
그들이 감동을 받아 내면이 변하자,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니느웨가 회개했을 때, 새롭게 변모된 것입니다.
저는 선교사로 수십 년을 지냈지만, 여기서 또다시 느끼는 것은
“선교는 요나가 하는 일이 아니고,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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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감비아에 있을 때, 겪은 경험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료사역을 했고, 저와 우리 부부는 청년사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렇게 3년간을 청년들을 만나면서 청년들을 훈련을 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했던 청년 두 명에게 기대를 걸고, 지도자로 키울 계획으로 각별하게 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면서, 그가 모슬렘으로 돌아갔어요.
제가 가장 아끼던 청년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어요.
더군다나 제가 공을 드린 사람이라, 더욱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혀서 그곳을 떠났어요.
그 일이 있은 후, 한 참의 시간이 흐른 2019년에 다시 그곳으로 갔는데, 공항에서 깜짝 놀랬어요.
새벽 1시에 도착했는데, 큰 현수막을 걸어놓고, 저희들을 환영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막상 그들을 만나보니, 그때 그 청년이 회심하여, 거기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때, 제 머리에서 스친 것이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어요.
지금 이 방송을 듣거나, 시청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에게 분명하게 저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교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계시는 곳이 니느웨입니다. 그러니까 현지인들에게 당신의 힘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변함없이 내가 없어도, 꾸준히 일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감비아를 떠날 때에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그곳에 없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그 청년을 추적하여,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여러분의 능력으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겪고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지체가 물론 부족하지만, 선교는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들어보면, 들려오는 얘기마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경험한 일인데, 제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제가 하는 말을 듣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저는 기독교인을 태우지 않습니다. 내리십시오.“라고 말을 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이 코로나 현상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하는 선교는 끝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하나님은 계속해서 끝까지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결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왜, 교회는 망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지요.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이런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선교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렵다”고 주저하고 웅크리지만, 하나님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괜찮은데, 왜 여러분이 의기소침 하십니까?
오늘 제가 하는 말씀을 들으시고, 자신 있게 기쁨으로 나가십시오.
요나의 순종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의 순종은 다섯 마디의 말을 되풀이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요나가 위대한 순종을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순종이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에 있을 때, 그 자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무너지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이 요구하는 순종”은 위대한 순종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듬직한 반석이 되는 순종을 주님은 요구하십니다.
저는 뉴스 보기가 힘들지만, 교회 뉴스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교회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이 땅에 빛을 발하고, 우리들을 승리자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존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힘차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계속 사용하여 주시고, 영광을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소망의 복음을 붙들고, 승리하는 그 날까지 선교에 집중하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런 영광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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