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중에 만난 복음 (신10:17~19) 말씀: 바나바 목사님
저는 중동 권에서 사역하는 목사로써, 영상으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초가을 날씨이지만, 그러나 여기도 40-50도 정도의 더운 날씨를 보입니다.
이곳에도 코로나 팬데믹이 오래 동안 지속되어,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곳에서 더 큰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난민들입니다.
이들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자기의 조국을 떠나 사는 모습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이주민들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에서는 난민이었고, 이방인]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과 고난 받은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긍휼을 베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18절 말씀에, “그분은 고아와 과부의 사정을 변호하시고, 이방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사랑하시는 분이다.”(신10:1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들을 변호하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를 사회적인 약자로 보고, “도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그네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게 되므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9절말씀을 읽으십시오.
“이방사람을 억압하지 말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 사람이었으니,
이방 사람의 마음을 잘 알 것이다.”(출23:9)
이 말씀에서 개역개정 성경에는 나그네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으니,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23:9)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그네처럼 살았으니까, “그 기억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그네들은 자기들의 터전을 떠났으니, 여기서는 ”도움을 주라”는 말입니다.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 온 난민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도 마찬가지 난민이었고,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 고향을 떠나서 살았으니, 마찬가지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던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흉년이 오자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나오미 가족도 나그네로 살았어요.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하고 살았던 다윗도 블레셋으로 피신하여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또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도 헤롯 왕의 위협을 피하여, 이집트로 가서 난민으로 살았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난민으로 지금 살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어떤 처녀가 복음의 소식을 듣고, 지하 교회에서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제가 있는 교회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처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와 함께 CGN TV를 보는데, 영상 밑에 나오는 자막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식사를 중단하는데,
그녀가 집중해서 본 것은 복음의 소식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그네에게 의식주만 주면, 될까요?
물론 그들에게 필요한 의식주는 당연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언제,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어려울 때, 어려운 환란 중에 있을 때,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곳 중동에는 매우 많은 난민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에도 역시 어려운 난님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매주 수요일에 이들을 돌보려고 중보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시편 119편 67절 말씀을 보면,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는 방황했는데,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킵니다.“(시119:67)
내가 주를 알지 못할 때는 방황을 했지만, 이제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킵니다.
이어서 71절 말씀에는, ”내가 고난을 받는 것이 내게는 잘된 일입니다.
이는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시 119:71)
이렇게 내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는 유익하였습니다.
그것은 고난 때문에, 내가 주의 법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율례를 배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드릴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편안할 때 보다, 난민으로 어려울 때, 복음이 들려오는 기회가 됩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남북으로 갈려 있으니, 탈북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습니까?
제가 한국에서 와이미션 사역을 했을 때, 도문 지역에 간 기억이 납니다.
한 권사님이 있었는데, 소나기가 오고서 그 다음에는 강한 햇빛이 비춰지는데,
그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성경책을 들고 얼굴을 가렸는데, 어떤 사람이 권사님을 계속해서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권사님은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는데, 집 앞에서 그 사람이 덥석 자기 손을 잡으며,
”그 성경 책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권사님은 당황했지만, 너무도 신기하여, 집 안으로 들어와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니,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삶“이 복음이기에,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 만나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해외에 있든, 국내에 있든, 그 복음을 들어야 할 난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복음을 들려주고, 그걸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음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물이 흐르듯이, 계속해서 복음은 전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는 그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북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선교사의 사명에 도취되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에 기도하다가 첫 번째로 기도한 내용이 생각납니다.
”하나님, 저를 이곳 오지로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저는 좋은 말씀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네가 알고 있는 복음은 이 땅에 없으니, 이 땅에 사는 영혼들에게 일을 해 주기 바란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황하여, “하나님, 그 말씀이 아니고요,“ 라고 부정하면서 계속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내가 너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이전에,
내가 너희를 이 땅에 부른 것은 ‘너희를 사랑해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부임하면서, 자존감이 높은 저에게 그걸 깨닫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먼저 나에게 사랑받은 존재이니까, 그 받은 사랑을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을
그 때에 깨닫고, 나는 펑펑 울었습니다.
저는 사명감에 불타서 의욕이 앞섰지만, 저의 자존감은 뒤로 하고,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저에게 먼저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던지, 그 자리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여, 그때부터 “내가 먼저 찾아가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선교사는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더 귀한 가치를 느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며,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랑이 필요하니, 그들을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알려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오스왈드 스미스라는 분이 한 말씀을 소개하고 마치려 합니다.
”한 번도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어느 누구도 두 번 이상 복음을 들을 권리는 없습니다.“라는 말씀을 전하고, 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증인이 되어,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을 끌어안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품어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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