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마14:13~21) 2021.02.17

다이나마이트2 2021. 2. 17. 21:46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마14:13~2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세례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조용히 생각하려고 외딴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예수님을 내버려두지 않고, 추종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면서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지만, 그런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외딴 곳으로 피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균형 잡힌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에는, 외딴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간을 “QT시간”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고, 짧지만 창조적인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니까, 나 자신을 살피는 시간입니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혼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하고도, 유일한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혼자 남아있는 시간“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혼자 서는 것“이 되니까, 우선 두려운 것입니다.

 

우선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자니,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불순종의 영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마주하기 싫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일에 몰두하거나, 도박에 빠지거나,

그 무엇인가에 미쳐서, 자기를 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각을 정리하려고 외딴 곳으로 갔지만,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그냥 내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에 이끌려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에 도취되거나, 거기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서 배가 고프니까, 제자들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오늘 말씀은 4복음서에 기록된 말씀을 비교하면서, 종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마태복음 14장 15절을 보면, “저녁 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이곳은 외딴 곳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 마을로 가서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시지요.”(마14:15)

 

성경에 의하면, 여기에 모인 사람이 “남자만 5,000명이 모였다”고 했으니,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하면 족히 10,000명 쯤은 모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해결 하는 게, 가장 큰 일이지요.

 

제자들이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예수님은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오병이라는 것은 “다섯 개의 빵(5병)”을 의미하고, 이어(2)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의 생각과 달랐어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겠다.”고 작정하고 계십니다.

 

누가 복음 9장 14절을 보아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남자만 5,000명 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50명씩 둘러 앉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9:14)

 

제자들의 이런 건의는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건의에, 예수님은 “그들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마14:16)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너희”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말은 그렇지 않지만, 헬라어 법에는 강조하는 말을 맨 앞에 내 놓습니다.

 

요즘 같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의아하게 생각하며, 걱정을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그런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풀밭에 앉으라.’고 말씀하시고,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빵을 떼셨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는 그 빵조각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마14:19)

 

▶기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예수님이 직접 행하시는 기적을 말하고,

②또 다른 것은 제자들을 통하여, 기적을 보여 주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은 제자들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가 나타난다면, 그 때는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처음에 이천만 비전에 따라, “이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자”고 했을 때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해 진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도 ”그게 가능하냐?“고 의구심을 표했지만,

하용조 목사님은 ”확실히 가능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런 상황은 요한복음에서도 “똑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어보지만,

이때, 빌립에게 물어 본 것은 그곳이 빌립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6장 7절에서 동문서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라고 물었는데, 빌립은 ”얼마가 드는가?”라고 돈을 걱정합니다.

 

이어서 6장 7절 말씀에서, "빌립이 대답햇습니다.

한 사람이 조금씩만 먹는다고 해도 200 데나리온 어치의 방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빌립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은 돈도 없으시면서---”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200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적인 생각으로는 물론, “산술적인 계산”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계산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감안해야 합니다.

 

빌립은 “비용을 계산”했지만, 예수님의 능력은 감안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여기 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의 마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요6:9)고 긍정적으로 말해 줍니다.

▶ 빌립과 안드레의 신앙은 어떻게 다른가요?
빌립의 신앙은 이성적이지만 부정적인 신앙이고, 그러나 안드레의 신앙은 믿음 있는 신앙입니다.

이런 것을 비교하더라도, 성경은 “일점일획도 서로 틀림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필자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내용은 언제나 똑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씩 나눠 주셨습니다.

물고기를 가지고도 똑같이 하셨습니다.”(요6:11).

 

여기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가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만, 자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도 나타납니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거꾸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는 은혜“가 있으니까, 자연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런 믿음이 존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병이어를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단지 기적이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여기까지만 묵상합니다.

 

배고픔이 해결되었고, 배고픈 사람들이 풍성히 빵과 물고기를 먹은 기적이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대부분 묵상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적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 12절 말씀에는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두 모아라. 그리하여 그들이 남은 것을 모아보니,

보리빵 다섯 개로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요6:12~13)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모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도 기적이지만, 남은 것을 모으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도 중요하지만, 그 분의 생각하는 말씀도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기계적으로 만든 빵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일상 속에서 ”자연법칙을 따라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임신 기간을 지켜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이상하게 태어나고, 심지어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에는 반드시 자연 법칙을 따라서 나타납니다.

”◯◯ 나와라, 뚝딱“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기적을 일으킵니다.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재료를 가지고,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은 사람들에게 ”버릴 것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쉽게 배고플 때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호세아 13장 5-6절을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내가 광야에서 그 가뭄의 땅에서 너를 알았다. 내가 그들을 먹이자 배가 불렀고, 그들이 배가 부르자 교만해 졌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잊어버렸다.“(호13:5~6)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메마른 광야에서 너를 보살펴 주었는데, 그러나 너희들은 실컷 먹고,

배부른 다음에는 교만해져서, 나를 잊어버렸다.”고 회상 하십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까?

그것은 배부름 때문에,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교만함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참된 복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니까, 그것을 깨닫고, ”절약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도 배고픔을 잊어버리려고, 아침마다 울려 퍼지던 새마을 운동의 노래 가락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배고픔은 잊었지만, 요한복음 6장 15절에 기록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강제로,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요6:15)

 

▶이들이 추구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를 만왕의 왕이 아니라, 단지 배부름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배부름을 찾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그것은 “인간의 탐욕”입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들이 “배부름을 위해 추대한다.”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이치이지만, 자연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참된 자아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기적“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기적이지만,

우리의 삶을 올바른 믿음의 눈으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