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레, 90일의 기적, 사순절 회개 기도회

불의한 세상에서 의를 선포하는 한 사람(마14:1~12) 2021.02.16

다이나마이트2 2021. 2. 16. 19:52

불의한 세상에서 의를 선포하는 한 사람 (마14:1~12)  말씀: 서경남 목사님

 

여러분에게 보혈의 능력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헤롯은 그 말씀이 마치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는 세례요한을 오해하여,

”요한의 목을 선물로 달라”는 소녀의 요청을 들어주는 어리석은 짓을 벌립니다.

 

이것은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악한 말이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렇게 “요청을 한다고 들어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1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때가 중요한데, 보통 시간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때“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시중에서 나도는 소문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헤롯은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잘못 들었습니다.

 

우리가 QT를 할 때에, 6하 원칙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고향인 나사렛으로 갔는데,

고향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헤롯왕은 한국말로 왕이라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지역 책임자“입니다.

예수님 시절에 나오는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롯 대왕“을 말하는 것이고,

오늘의 헤롯은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 왕“을 말합니다.

▶헤롯 왕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첫째로. 사람들이 말하는 소문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2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는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으므로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그에게 나타나는 것이다.“(마14:2)

 

헤롯왕은 ”요한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아마도 그가 세례 요한이 아닌가?“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친척 관계라, ”예수님을 요한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헤롯이 두려워 한 것은 “전에 있었던 사건” 때문입니다.

 

3~5절 말씀에 의하면, “전에 헤롯은 요한을 체포하고, 결박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습니다.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 때문이었습니다.

요한은 헤롯에게 ‘그 여자를 데려간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를 예언자로 여기는 백성들아 두려웠습니다.”(마14:3~5)

 

▶여기서 헤롯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이 올바른 얘기를 하니까,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헤롯은 죽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두려워서 망설이는 상황입니다.

 

(3) 세 번째의 두려움은 “선지자를 어떻게 죽이느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목사님이 말하시기를, ”주의 종들은 네 가지 단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①긍정하는 [YES], ②부정하는 [NO], ③감사하는 [Thank You], ④미안하다는 [Sorry]입니다.

 

요한도 말을 분명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헤롯에게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6~8절의 말씀은 “때마침,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즐겁게 해 주었는데,

헤롯은 그 소녀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헤롯에게 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십시오.’”(마14:6~8)

 

헤롯과 헤로디아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닙니다.

원론적으로,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살아납니다.

 

가정에 돈이 없어도, 그 가정 안에 믿음이 있다면, 가정이 살아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 받는 가정이 되어야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탈무드에는 “어리석은 부모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지혜로운 부모는 신앙을 물려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믿음의 가정이 아니고,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인 가정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엄청 난 일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세례요한이 말 한 마디에, 죽게 됩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헤롯은 사람을 보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담아,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습니다.”(마14:10~11)

 

그러니까 헤롯왕의 파티에서 소녀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네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하여,

갑자기 요한을 죽이게 되었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오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쟁반은 무슨 물건입니까?

쟁반은 ”물건을 담는 용기“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쟁반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이 쟁반에는 ① 헤롯의 욕심과, ② 육신의 정욕과, ③ 이생의 자랑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곧 육신의 탐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살이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4:15~16)

 

쟁반은 세상에서 담을 수 있는 용기인데, “그 쟁반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담으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나쁜 것을 담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에는 그 쟁반에 칠면조 고기를 담아서 먹습니다.

우리는 그 쟁반에 무엇을 담아서 먹습니까?

우리에게 두려움과 분노가 있으면, 그 쟁반에는 기쁨과 평강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선교헌금을 작정했습니다.

”브라질이 남미에서도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브라질 말로 하면 "O SABOR DA VIDA DEPENDE DE QUEM TEMPERE"라고 합니다.

그들의 모토는 “인생의 맛을 누가 내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의 맛은 누가가 내야 합니까?”라는 의문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음식을 조리했는데, 맛이 없으면 “누가 그 음식을 먹겠습니까?”

음식은 “첫째로 맛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은 “손끝에서 맛이 나온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정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맛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 쟁반에, 기쁨이 넘치는 맛있는 음식이 담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편 34편 8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오. “오, 성도들이여,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부족한 게 없을 것입니다.”(시 34:8)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이시고, 나에게 방패이니, 나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과 같이, 올바른 말은 죽음이 다가와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음식에 맛을 내듯이, 세상에서 맛을 내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을 통하여, 인생에 사는 맛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길 바랍니다.

나의 삶이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유익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