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고난주간2 구원의 새 언약 (눅 22:14-23) 2019.4.16

다이나마이트2 2019. 4. 25. 17:21

구원의 새 언약/ 눅 22:14-23,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 박힌 것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슴에도 못을 박은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가룟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신호로 “예수님과 입맞춤을 한다.“고 미리 짜놓은 음모가 있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이 배신의 입맞춤으로 변형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배신했습니다.

 

▶여기서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배신>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①베드로의 배신은 충동적인 배신이라, 곧바로 회개가 가능했고,

유다의 뱌신은 계획적인 배신이라,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이 되었습니다.

 

② 베드로의 배신은 여러 번 배신을 했지만, 끝까지 에수님의 증인으로 살았고,

유다는 단 한 번의 치명적인 배신으로, 마지막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눅22장 14절 말씀에, "시간이 되자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상에 기대어 앉으셨습니다"(눅22:14)

 

유월절 만찬을 나누던 중에, 예수님은 사도들과 상에 기대어 앉으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렸는데, 그 그림에서는 요즘의 테이블 식탁에 만찬이 차려진 것으로 그려져있는데, 그 당시에는 테이블이 없었으므로, 후대에 와서 각색된 것이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식사법에 따라 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셨습니다,

 

16-1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다시는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그리고 이 잔을 받아, 너희가 서로 나눠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의 말씀에, “예수께서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하라.”(눅22:19)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는 것이 [성만찬]입니다.

이 [최후의 만찬]이 인상적인 것은 예수님이 떡을 떼어주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주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얘기하면서 잔을 줍니다.

 

이것이 <성만찬>인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피를 마시고, 그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성이나 지성으로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듯이 예수의 몸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면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게 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가고, 그가 내안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 같이 움직일 때, 감동이 되어 나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인간들은 머리로, 이성으로 믿으려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즉 예수님께서 내 몸 안으로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안에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먹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는 게 아니고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억지로 믿으려니까, 안 믿어지고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음식은 구경하는 게 아니고 먹는 것입니다.

그 음식을 먹으면 내 속에 들어가서 소화가 되고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따로 있고, 내 성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 믿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이 변화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예전의 나는 없어지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내가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고난주간]의 한 길목에서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가

여러분 안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21절 말씀에는 “그러나 보라. 나를 배반할 자의 손이 지금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

 

바로 “가룟 유다가 그 성만찬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팔아넘기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이 마귀가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마귀의 하수인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되십시오. 죄 짓는 것은 운명이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입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도 그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안하기로 결정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죄 안 짓기로 결정하면 안 지을 수 있습니다. 악역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악역을 하는 것은 스스로 그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마귀의 장난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베드로를 가지고 놀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두 번째로 찾아간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어리석게도 마귀가 던진 미끼를 덜컥 물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단이주는 먹이에 덜꺽 눌리지 마십시오. 마귀가 주는 덧에 잡히지 마십시오.

여러분 의지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죄도 여러분의지로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박, 폭력, 거짓말도 여러분 의지로 안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성만찬을 마치고 나서 자정쯤 로마 군병들이 가룟 유다와 함께 예수님을 체포하러 옵니다.

바로 그 전에 예수님은 성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땅이 피가 되는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온갖 고난 끝에 오전 9시에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이 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만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죄가 사라지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안에 배신이 사라지길 축원합니다.

악한 영이 떠나가길 축원합니다. 성만찬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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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과 성찬식/ 눅 22:14~23, 말씀: 하용조 목사님

 

하나님은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은 자기가 체험해야 알 수 있다"는 말 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내용]이므로, 머리로 이해하기 곤란합니다.

[영적인 내용]은 은혜 받은 체험과 은사의 경험이 있어야 스스로 알게 됩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머리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머리만 아프고, 어렵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적인 문제를 우리는 쉽게 알지 못해요.

 

그러나 하나님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쉬워요.

그러니까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라"는 말입니다.

 

어제 [큐티]를 복습하겠습니다.

가룟 유다는 겉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행세하면서, 결국은 예수를 배신하려고 음모에 가담합니다. 그것은 그에게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성경의 곳곳에 후렴처럼 나타나서 배신행위를 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배신과 거절의 상처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이런 배신과 거절의 경험이 있어요.

 

배신과 거절이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리 인생을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몸속에 들어간 사탄은 유다로 하여금 악한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유월절 잔치에 또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 여인은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다락방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등이 예수님을 태운 <어린 나귀>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헌금을 할 때, 잘난 척하고 돈 내지 마세요.

어떤 사람은 교회에 와서 "사회적 신분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아주 오만합니다.

 

헌금할 때에 좋은 자세는 "하나님,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의 돈도 쓰십니까?"

"하나님,  저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이 헌금을 바칩니다. "라는 자세로 드리십시오. 그

것은 자기를 드러나지 않고 드리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벌립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3장  1~3장에 나오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최후의 만찬>은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이니까,

▶예수님의 동작 하나 하나를 구별하여 기록해 보겠습니다.

 ①. 갑자기 예수님이 음식을 잡수시다가

②. 벌떡 일어나서 발을 씻길 준비를 합니다.

③. 겉옷을 벗으시고

④.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⑤. 대야에 물을 떠온 후

⑥. 예수님은 무릎을 꿇으시고

⑦.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아주 <소리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이 장면이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저와 함께 사역하는 부목사님들의 발은 씻겨 줄 수 있으니까요.

 

나보다 더 높은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낮은 사람을 섬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기가 막힌 한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운 예수님이 에루살렘에 와서 첫 번째 한 일은 무엇입니까?

①첫째,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과

②둘째,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해야 했고

③셋째, 약한 자의 발을 씻어주고, 어려운 사람의 눈물을 씻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유명한 말씀을 한마디 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사랑 하라"(요14:34)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라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요 14:35)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하신 말씀이고,

요한복음 14장 ~15장~16장은 <다락방 설교> 입니다.

또 마태복음 5장~6장~7장은 <산상설교>입니다.

 

이와 같은 주옥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원문 그대로 읽기만 해도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것 같고, 

그것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만나는것 같고, 또 예수님의 음성을 체험하게 되는 성경구절입니다.

 

오늘은 <성만찬의 의미>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눅22:19)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하시다가, 떡을 떼시고 "이것은 내 몸이다.", 

그리고 잔을 들고 "이것은 내가 너희를위해 흘리는 내 피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떡은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가 되므로, 성만찬에 참여하여 그것을 먹으면,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내 몸 안으로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과 같으므로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만찬의 역사>입니다.

 

신앙은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 예요. 예수는 믿는 게 아니고, <먹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려고 하니까 그는 믿어지지 않고,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으려고 밥상에 앉으면, 음식냄새가 코를 찌르므로 배가 더 고픔니다.

우리는 그 음식을 먹고, 위장에서 소화를 시키고 그것이 에너지가 되어, 우리 몸의 살과 피가 됩니다.

 

이때에도 음식은 구경하는 게 아니고, 먹는 것입니다. 이 음식이 내 몸 안에 들어와서,

나와 하나 되는 것과 같이 성만찬을 내 마음에 예수를 모셔 오는 것입니다.

 

<성만찬>때에 먹은 떡과 피가 내 몸 안에 들어와서 나와함께 있으며, 나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나는 하나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여자가 <임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아이가 성장하게 됩니다.

 

신앙은 <임신한 아이가 자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성령님이 나를 움직이게 됩니다.

 

성령이 나에게 들어오면, 내 삶이 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분이 말하는 대로 나를 움직이고, 그분이 원하는 대로 내가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성격이 변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도 성격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헛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몸 안에 들어왔으니, 옛날의 나의 모습은 없어져야 하고,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되어서 새로운 피조물로 내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예수님과 나는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한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보세요.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눅22:20)

 

예수님은 잔을 들고,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릴 내 피로 세우는 새 계약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끝내고, 자정에 횃불을 들고 찾아온 로마군병에게 체포당하였습니다.

 

바로 그 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땀이 피가 되는 기도를 합니다.

그때의 시간이 밤 12시이고, 그 얘기는 내일 계속됩니다.

 

이 고난주간에 성만찬의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정리 : 천영무 장로님   사진 김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