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고난주간3. 온전한 순종 (눅22:39-53) 2019.4.17

다이나마이트2 2019. 4. 25. 17:37

온전한 순종 (눅22:39-53)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사람이 죽기 전에는 진실된 말을 합니다.

예수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두 가지 설교를 행하십니다.

 

1. 첫 번째 설교는 <침묵의 설교>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사건>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사건>은 큰 소리로 설교하는 것보다도, 더 위대한 <침묵>의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홀로 계셨고, 깊은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대중적인 설교보다도 침묵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지난 여름철에 강원도 지방에 수해가 났을 때, 온누리 교회에서는 자원 봉사자들을 모아서

말없이 그곳으로 달려가서 봉사를 한 기억이 있지요.

그렇게 말없이 찾아가서 봉사하는 것이 <침묵의 설교>입니다.

이런 <침묵의 설교>는 큰 소리로 소리치고 떠드는 설교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2. 두 번째 설교는 <말씀 설교>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7장에서 <산상 설교>를 하시고,

요한복음 14~16장에서 <다락방 설교>를 하신 것과 같이, <말씀>을 갖고, 군중들에게 설교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곳에는 "감람나무들이 많이 있다"고 하여 <감람산>이라고도 하고, <올리브 산>이라고도 불려 집니다.

 

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 가셨을까요? 그것은 기도하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급하면 이곳에 자주 오셨습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예루살렘 밖을 나가, 여느 때처럼 감란 산으로 가시자 제자들도 따라갔습니다."(눅22:39)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평소에도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기도하지 말고, 원칙과 기준에 맞는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여기서 "여느 때처럼"이란 말은 형식적이 아니라, <늘 습관처럼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새벽기도는 육체의 고통을 이겨야 할 수 있습니다.

 

새벽 미명에 "육을 일찍 깨워서 일어난다."는 것은 본인에게 고통입니다.

기도하러 갈 때에는 혼자 가지 마세요.

 

반드시 동역 자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하시던 대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니까, 제자들도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이 설교할 때, 졸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시니까, 그냥 따라간 것입니다.

 

40절 말슴을 보세요.

"그곳에 도착하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눅22:40)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인간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선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응답하십니다.

 

진짜로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는 그때 그때의 나의 형편을 알려드리고, "시험에 들지 않고, 자기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만,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각하면 인간이 보이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생각하면 사상이 보이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입니다.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면 남을 비판하게 되고, 기도를 많이 하면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41절 말씀을 읽어 보세요.

"예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떨어져 돌을 던지면 닿을만한 곳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눅22:41)

 

기도할 때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와서 졸던 사람도 예배드리는 그 자리에 있으면, 함께 은혜를 받습니다.

물론 은혜받기 전에는 누구나 졸기도 하지요.

그러나 졸더라도 그곳에 있으면, 함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4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으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 그때 하늘로 부터 천사가 나타나 예수께 힘을 북돋아 드렸습니다.(눅22:42-43)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① 첫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언뜻 보기에는 이 말이 예수님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십자가지의 고통이 너무나 크고, 무겁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소불능의 권한을 가지신 분인데, 이런 십자가를 물리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스스로 지려고 오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예수님의 수난을 다룬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 영화를 보면, 고뇌에 찬 예수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기도하는 예수님의 주변에 끊임없이 마귀가 극성을 부리고,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42절의 말씀은 <절규의 부르짖음>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부르짖는 기도는 땀이 피가 되도록 드리는 기도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

이것은 <죽는다.>는 의미의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전체가 기도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기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감을 보여 줍니다.

 

②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기도는 마귀의 유혹과 사탄의 시험을 이기려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하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3절~44절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그때 하늘로 부터 천사가 나타나, 예수께 힘을 북돋아 드렸습니다." (눅22:43)

그러자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를 드릴 때, 천군천사가 나타나서 돕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고뇌 속에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자 땀이 핏방울 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눅22:44)

 

사람이 생활하면서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싸움은 멀리서 나타나지 않고, 내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 주변에서 발생합니다. 즉 자신의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기독교인 치고 기도 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기도는 하지요.

문제는 적당히 기도하는 게 문제입니다. 더 문제인 사람은 기도하다가 그냥 자는 사람입니다.

 

45절 밀씀을 읽어 보세요.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눅22:45)

 

예수님은 피곤하여 슬픔에 지친 제자들에게 "마음은 원하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새벽기도 안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선교사로 떠나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러나 이런 비전을 가진 사람은 누가 말려도 떠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교사로 떠나고 싶지만, 육신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떠나고 싶다"는 것은 마음뿐이지, 실제로는 <우리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①첫째, 기도는 생활습관(Life style)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습관적으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습관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②둘째, 기도는 특별한 때에 특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땀이 피가 되도록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결단은 자기 자신이 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때에 "그 일을 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결코 남이 결정해 주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본인이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③셋째, 참된 기도는 천군 천사가 도와줍니다.

참된 기도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결국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시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 뜻>이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종하는 삶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항상 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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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터치- 누가복음22:39-46, 말씀: 하용조 목사님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예수님의 수난을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여기를 고뇌에 찬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일상적인 우리가 드리는 보통 기도입니다.

 

우리가 늘 평소에 하는 기도입니다. 성령터치가 있은 후  예수님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고,

그  내면의 속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매일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 혼자 말하는 독백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소연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나 삶이 없는 기도는 공허합니다. 또한 기도 없는 삶은 경박합니다.

기도 없는 사람의 특징은 메말랐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시끄럽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혈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뭔가 다릅니다.


2. 두 번째로 기도에는 특별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특별기도>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절대 절명의 시간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특별기도는 생명을 걸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나 어떤 특별한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엘리아의 기도에서 이런 특별한 기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밤잠을 못 자고 고뇌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별기도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결정적인 위기상황일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가 땀이 피가 되도록 <특별히> 기도합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 이것은 <죽는다.>는 의미의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그 옆에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죽음과 강도의 죽음은 같은 죽음입니까? 그 죽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말슴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눅22:39)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평소에도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느낌으로 기도하지 말고, 원칙과 기준에 맞는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여기서 "습관을 좇는다."는 것은 형식적이 아니라, "늘 습관처럼 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새벽기도는 육체의 고통을 이겨야 할 수 있습니다.

 

새벽 미명에 육을 일깨워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본인에게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을 때, 이를 물리치시고 홀로 산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전체가 기도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기도"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감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인간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선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응답하십니다.

생각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만,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각을 하면 인간이 보이고,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생각을 하면 사상을 만들어 내고,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생각을 하면 남을 비판하고 열등감에 쌓이게 되고, 기도를 하면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생각하면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빠지므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40절을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눅22:40)******

(예수님은 그 곳에 도착하셔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왜 합니까?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도는 우리가 필요해서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고독해서 하지만, 무엇인가 구하기 위해서 합니다.

그것은 기도의 피상적인 목적이고, 진짜로 기도하는 목적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보통 때는 마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 주변에는 마귀가 유혹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기도문에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매일의 삶이 시험에 노출돼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현실입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기도하는 예수님의 주변에 끊임없이 마귀가 극성을 부리고,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합니다.

 

41-42절 말씀을을 읽어 보십시오.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1-42) ****

(그들을 떠나 돌을 던지면 닿을 정도로 떨어진 곳을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1. 첫째는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소서!

언뜻 보기에는 이 말이 예수님이 죽음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십자가 지는 고통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무소불능의 권한을 가지신 분인데 이러는 것은 인류의 짐을 지기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는 순간 마귀가 공격합니다.

①첫 번째 공격은 "예수야! 네가 꼭 십자가를 지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이 다 구원시킬 것이니, 십자가를 우선 피해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이 구원시킬 것이 뻔하지 않느냐?"라고 유혹합니다.


②두 번째 공격은 "예수야! 십자가 지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줄 아니?" 라고

두려움과 공포감을 마귀가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더욱 더 격렬해 집니다.

이것은 마귀와의 싸움이 아니고, 자기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새벽기도 안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선교사로 떠나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러나 이런 비전을 가진 사람은 누가 말려도 떠납니다.


2. 두 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기도 터치>입니다.

기도는 마귀의 유혹과 사탄의 시험을 이기려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하고, 결정적인 개선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 <기도 터치>입니다.


43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눅22:43)

(그러자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기도를 드릴 때, 천군천사가 나타나서 돕게 됩니다.

그리고 44절 말씀과 같이 땀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22:44)

(예수님이 괴로워 몸부림치시며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자, 땀이 핏방울 같이 땅에 떨어졌다.)

 

사람이 생활하면서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습니다.

싸움은 멀리서 나타나지 않고, 내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 주변에서 발생합니다.

즉 자신의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기독교인 치고 기도 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기도는 하지요. 문제는 적당히 기도하는 게 문제입니다. 더 문제인 사람은 그냥 잡니다.


45절을 말씀을 읽어 보세요.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눅22:45)

(예수님은 기도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돌아가, 그들이 슬픔에 지쳐 잠든 것을 보시고)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여 슬픔에 지친 제자들에게

 "마음은 원하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교사로 떠나고 싶지만, 육신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떠나고 싶다"는 것은 마음 뿐이지, 우리의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을 통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선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를 놓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①첫째, 기도는 생활습관(Life style)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습관적으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②둘째, 기도는 특별한때 특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땀이 피가 되도록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결단은 자기 자신이 내려야 합니다.

특별기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냐? 마느냐?”는 우리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결코 남이 결정해주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③셋째, 참된 기도는 천군천사가 도와줍니다.

참된 기도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의 정점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시기를 원하나이다"가 되어야 합니다.

 

내 뜻이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 터치>입니다.


정리 : 천영무 장로님 사진 김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