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QT

주 예수를 믿으라.(행16:27~40)

다이나마이트2 2009. 7. 16. 22:30

2009년 7월 16일 목요일

사도행전 16:27~40 빌립보 감옥에 비춘 구원의 빛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 일행이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다.

옷이 찢어지고 벗겨지고 매로 맞고 감옥에 갖히게 되었다.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고 옥 터가 움직이고 옥 문이 다 열려지는 상황이였다.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렸을 때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당연히 도망간 줄로 알고

칼을 빼어 자살을 할려고 한다.(27)

당시 로마의 법에는 죄수가 도망을 가면 간수가 대신해서 죄수의 벌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이 때 바울이 크게 소리 지른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있노라.(28)한다.

나 같으면 얼른 도망갔을 것 같은데 바울은 역시 나와는 다르다. 

 

간수의 반응이 놀랍다.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바울에게 채찍을 들었을지도 모르는 간수가 꿇어 엎드린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30)

참으로 위대한 질문이다.

 

로마의 공무원이 유대인 죄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17)

하는 귀신 들린 여종의 말이 지금 생각 났는지도 모른다.

매질하고 채찍질 할 때 바울과 실라가 보인 태도가 인상적이였는지도 모른다.

한 밤중에 기도하고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기억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수가 죄수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님하면서 구원얻을 방법을 묻고 있다.

 

바울의 대답인지 실라의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31)한다. 할렐루야. 아멘.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가?

주 예수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다. 아멘.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셨으며

죽은지 삼일만에 부할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시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재림 하실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과 실라 두 선교사분이 이런 말씀을 전하셨을 것이다.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32)

 

구원 얻을 방법에 대한 말씀을 들은 간수의 행동이 민첩하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33)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33)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음식을 대접한다.(34)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한다.(34) 할렐루야. 

 

다음날 아침 또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한다.(35)

나 같으면 그냥 석방인가 보다 하고 떠났을 것 같은데 바울은 달랐다.

 

바울의 생애에서 이런 일이 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좌 농성을 한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고(37)

이제 가만히 보내고자 하느냐?(37) 하고 농성을 시작한다.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아가라!!! 라고 외치거나 대자보를 써 붙이고 있다.

 

로마법에 의하면 로마 시민권을 가진자는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재판을 받지 않고 판결도 받지 않고 매를 맞거나 구속할 수 없다고 한다.

또 로마 시민권을 지닌 사람의 특권을 침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벌을 내리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로마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상황이 역전되어 공무원들이 두려워한다.(38)

앞 뒤 생각도 안하고 사람들의 고소에 따라 체포하고 폭행하고 구금했다가

로마시민권자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저들이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정중히 부탁한다.(39)

 

왜 바울이 농성을 했을까?

석방이라고 하면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떠나면 되지 않았을까?

왜 바울을 자존심을 세웠을까?

 

대접받기 위한 자존심이였을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울이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갔다고 하면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될 뿐만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았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빌립보에서든 어디서든 복음을 전하는 자를

불법으로 체포하여 잡아다가 폭행하고 구금해도 되는 선례를 만들어 버리는 꼴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유익과 자존심과 이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행동이였다. 아멘.

 

복음을 위하여 정의를 구하고 있는 것이고

복음을 위하여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유익한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나의 행복과 이익과 자존심과 유익에 관심이 있지만

바울은 예수님과 하나님과 복음과 선교에 관심이 있구나. 아멘.

 

하나님 아버지

빌립보 감옥에서 일어난 일을 봅니다.

우리 가문에도 예수를 믿어 온 집안이 구원 받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아웃리치 떠나는 팀들을 기억하옵소서.

구원 받을 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복음 들어야 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보소서.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복음전도의 길을 위하여 당당하게 권리 주장하는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로마 시민권은 없지만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살게 하옵소서.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