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QT

아덴에서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행17:16~21)

다이나마이트2 2009. 7. 18. 23:29

2009년 7월 18일 토요일

사도행전 17:16~21 복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중에 있다.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향했고

빌립보에서 자주장사 루디아에게 세례를 주고, 착취 당하고 있는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좇아 내어 주었고 덕분에 감옥에 갖혔었다.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로 옥문이 열렸고 간수의 가문에 세례를 주었고 풀려났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아덴까지 가게되었다.

사실 아덴에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소동을 벌렸고

베뢰아까지 좇아와서 소동을 일으킴으로 바울만 살짝 빠져서 도망 온 곳이 아덴이였다.

 

비록 도망을 오긴 했지만 아덴에 와서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과 다르다.

아덴이란? 현재의 아테네를 말한다.

학문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심도시였다.

아테네에는 아직 가보지를 못했지만 아테네에 간다면 먼저 파스테논 신전을 볼 것이다.

파스테논 신전에 있는 금으로 된 아테네의 여신상을 보고 싶다.

또 도시의 수호신인 주피터, 비너스,  머큐리, 바카스, 넵툰, 다이아나등등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들을 구경하고 다녔을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보는 관점이 다르다.

바울이 본 것은 무엇인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16)

 

바울은 고대 미술품이나 유물이나 관광상품으로 보지 않고 우상으로 보았다.

거리에 서 있는 장승을 보거나 돌로 만든 여러가지 조각품을 보거나 부처상들을 볼 때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았지 우상으로 보았는가?

바울이 보는 관점은 우상이 가득한 것으로 보았다.

나도 바울의 관점과 같은 관점을 갖게 되길 원한다. 아멘.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바울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마음에 분하였다.(16)

 

나는 돌멩이나 바위에 세긴 우상 조각 덩어리들을 보고 와~~ 대단하다 라고 느꼈지

마음에 분하다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대표적으로 석굴암 같은 곳을 보았을 때 마음에 분한 감정은 별로 없었다.

경부 고속도로 옆에 세워져 있는 동양 최대의 석불이라는 것을 보고도

분한 감정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에 분한 감정이 솟아난 모양이다.

나에게도 이런 감정을 주시 옵소서.

 

우상을 보고 분한 감정이 생긴 바울은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

1. 회당에서는 경건한 유대인들과(17)

2.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변론하여 복음을 전한다.(17) 할렐루야.

3.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이 학파와 논쟁을 한다.(18)

 

바울도 당시의 최고 학파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철학과 학문을 배웠으니

고통과 정욕과 공포에서 벗어나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나

세상은 운명에 의해서 결정이 되며 고통을 감수하며 자연과 이성과 도덕을 따라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스토아 학파와도 충분히 논쟁할 실력이 있었을 것이다.

당대의 대 학자들과도 논쟁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있었던 것이다. 부럽다.

부지런히 실력을 쌓자. 아멘.

 

이들에게 바울이 전한 것은 무엇이였는가?

바울은 항상 누구를 만나든 전하는 것은 톱뉴스가 아니고 정해져 있다.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한다.(18) 할렐루야.

 

아마 전하는 내용은 항상 동일해도 전하는 방법은 언제나 달랐을 것이다.

예수님도 한 밤중에 찾아 온 니고데모를 만날 때, 사마리아의 우물가 여인을 만날 때,

38년된 병자를 만날 때,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만날 때 다 달랐던 것 처럼 

바울도 유대인을 만날 때, 이방인을 만날 때, 철학자를 만날 때

복음의 내용은 동일 했지만 전달하는 방법은 다 달랐다. 아멘.

 

당시 철학자들이 보인 반응이 재미있다.

1.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18)

2.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19)

3.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20)

 

많은 관심을 나타내 보이는 표현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복음에 반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울의 설명을 들으려는 것이였다.

 

새로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21)

새로운 사상과 지식을 쌓는 것에만 탐닉해 있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학자나

스토아 학파의 학자들은 끊임없는 지식을 추구했지만

지식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는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아 볼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아볼려고 하는

지적 유희와 탐구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외면한 채 새로운 것에만 관심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아덴에서 바울이 보았던 것을 나도 보게 하옵소서.

바울이 느꼇던 그 감정 나도 느끼게 하여 주옵소서.

에덴에서 바울이 행한 것 나도 행하게 하옵소서.

바울이 전한 것 나도 전하게 하옵소서.

지식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름을 감사하고

은혜의 선물임에 찬양합니다.

우상과 철학이 가득한 이 땅에도 복음으로 화합하고 하나되게 하옵시고

새로운 것만 찾아 헤메고 있는 이 땅의 진리를 모르는 불쌍한 영혼가운데

겸손과 순전한 마음으로 인도하옵소서.

아웃리치 중에 있는 팀들을 기억하시고 장마비 가운데서도

분명한 사명들을 새롭게 깨닫고 배우게 하옵소서.

지식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