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QT

성전에 들어가사 ...(마21:12~22)

다이나마이트2 2007. 2. 23. 23:35

2007년 2월 23일 금요일

마태복음 21:12~22  열매없는 삶에 대한 분노

 

예수님도 정기적으로 예배하러 올라 가셨던 예루살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곳 예루살렘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그 곳 예루살렘

영광의 왕 심판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루살렘

선교의 꽃이요, 복음의 땅 끝이요 선교의 종점이라고 하는 이곳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루살렘 오 거룩한 성아 찬양 했던 바로 그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가슴이 벅차더군요. 평강의도시 예루살렘에 평강이 있을 지어다.

감람산 눈물교회 부근에서 찍은 사진 입니다. (제 컴퓨터 바탕화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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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박이일에 걸쳐서 두가지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서하신 예수님이

맨 처음으로 들리시는 곳이 성전이다.(12)

 

정치적 왕으로 오셨으면 총독의 집에 방문이 먼저 일수도 있는데

총독과는 상관도 없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도 상관이 없이

바로 성전으로 향하신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을 먼저 찾는 자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과격한 행동을 보이신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신다.(12)

 

헌물을 드릴 때에도 헌금을 드릴 때에도 아무거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흠이없고 정결하고 깨끗한 것을 드리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현재도 유대인들은 코셔라고 해서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구별된 것 만을 먹고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나쁜것이 아니라.

 

멀리에서 성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준비한다 하더라도 엄격한 규정으로

복잡한 성전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받기가 곤란하므로

아무거나 드리지 않고 구별 된 것을 하나님께 드릴려고 하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종교의 이름으로 부정과 폭리를 일삼는 그 행위를

예수님이 아시고  목적을 잃어버린 성전에 대한 분노이고

신령과 진리로의 예배가 아닌 형식적 의식에만 존재하던 예배,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이용한 장사꾼들에 대한 분노였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속고 속이는 세상의 거짓과 탐욕이 판치는 시장 바닥이 되어버린 성전을 보시고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내어 쫓아버리신다.

 

내 안에는 이런 거룩한 분노가 있는가?

예배를 빙자한 예배를 이용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없는가?

앞으로도 이런 것은 없도록 하자. 아멘.

오직 순수한 심령으로 주님께만 예배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위선과 탐욕과 불순한 동기로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던 자는

모두 내어 쫓아버리셨지만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나아오자 고쳐 주신다.(14) 할렐루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 처럼

어제도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나아와 눈을 뜬 것 처럼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거절하지 않으신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거절 당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도 주님 앞에 나아간다. 할렐루야.

 

이런 상황에서 두종류의 삶들의 반응이 참 재미있다.

 

첫째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다.(15)

누구보다 구약 성경에 대하여 능통한 자들이다.

종교 지도자들이다.

메시야가 눈 앞에 있는데도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한다.

오히려 영업방해한 것에 대하여 분하여 예수님께 달려와서 따진다.

 

두번째그룹은 아이들이다.(15)

아이들의 눈에는 메시야가 보인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한다.

 

어제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라는 이름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30)했지만

어린 아이들은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치는 것을 보고도

신앙의 고백 믿음의 고백인 찬양을 한다. 할렐루야.

 

나도 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주님을 알아보고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 분을 높이는 찬미를 드리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눈에는 메시야가 안보여도

어린아이의 눈에는 메시야를 볼수 있는 안목이 있다.  

역시 낮은 곳에 순수한 곳에 주님이 계신가 보다.

 

베다니에 다시 돌아오셔서 하룻밤을 묵으신다.(17)

 

오늘의 두번째 사건이 무화과 나무의 저주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18)

배가 고프셔서 길가에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19)

잎사귀만 무설하고 열매가 없자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19) 하시니 나무가 말라 버렸다.

막11장에는 무화과가 열매맺는 때가 아니였다.(막11:13)

저주가 있은 다음날에 발견이 되었다.(막11:20)

 

참 무서운 말씀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되 마음은 멀리 떠나있고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나의 모습은 아닐까?

 

아버지

예루살렘 입성에서 성전을 맨 처음 찾으시는 것 처럼

저도 무엇보다 주님을 먼저 찾는 자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어떤 것 보다 주님을 최우선으로

왕의 보좌에 모시는 삶되게 하옵소서.

오셔서 성전을 거룩하게 청결케 하신 것 처럼

나의 영혼도 정결하게 하길 원합니다.

위선과 탐욕과 탐심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소경과 저는 자를 고치시는 주님

나의 삶도 고쳐주옵소서. 바꾸어 주옵소서.

변화시켜 주옵소서.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찬미를 받으시는 주님

나의 찬양도 받아주시옵소서.

믿음의 본질을 늘 바라보게 하옵소서.

참된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열매맺는 신앙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성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