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QT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요11:45~57)

다이나마이트2 2006. 8. 8. 17:18

2006년 2월 10일 금요일

요한복음 11:45~57 모두를 위해 죽을 한 분

 

요한복음에서 보여 지는 7번째 기적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라는 동네에서

이미 죽은지가 4일이나 지난 무덤속의 수족을 베로 도인체로

누워있던 나사로를 살려내는 기적을 베푸셨다.

물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에 대한 시청각적 교육과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한 교육적 의도도  있으셨으리라.

 

그러나, 이런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의 반응은 극과극이다.

 

그동안 38년 된 병자가 나았고,

소경이 눈을 떳고

죽은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보고, 소문을 들었던자 중에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특히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하기 위하여 조문왔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나도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한번 갔다가 예수님을 믿게되었지 않았나.

초상집에 조문가서도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구나.

위로하러 갔다가도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구나.

우연한 초청에도 예수님 믿을 수가 있구나.

 

상반되는 또 다른 한 무리가 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무리들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최고회의를 개최한다.

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대의 명분을 매우 거창하게 이야기한다.

로마인들이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간다고 한다.

속마음은 완전히 감추고 포장하고 위장하는 기술이 탁원하다.

자기 밥 그릇에 이상이 생길 때 위치가 흔들릴 때 위상에 위기감을 느낄 때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이 명분으로 포장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는 예수를 죽이기로 공회를 빌어 결정하고 모의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자기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이 행하실 일을 정확히 예언한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가야바의 예언을 들으면서

우리 JDS애찬식 생각이 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고 듣지만 음성은 잘 안들리고

(물론 정확하게 들은 음성도 분명히 있겠지만)

음성듣는 시간 바로 그때의 생각들을 우리가 나누는데

우리 애찬간사들의 입술을 통하여 고백하며 이야기 하는 모든 내용들도

지나고 보면 가야바의 예언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정확히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결과를 보면 아 그것이 그것이 였구나 하고 알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기대가 된다. 힘들지만.

 

또하나 보게 되는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아라

라고 명령했고 저들이 죽이려고 하자

 

예수님은 조용히 떠나신다.

천지를 창조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죽은자도 살리시는 능력의 예수님이

에브라임 촌 동네로 떠나신다.

가끔씩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한발짝 물러서서 보면 문제도 문제도 아니고 해결방법도

간단히 얻을 때가 있는 것처럼 가끔은 조용히 떠나는 훈련도 하자.

 

때때로는 떠나는 것이 영성이고 능력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 처럼.

 

하나님 아버지

나의 이익 때문에 기득권의 보호 때문에

진실에서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때때로는 조용히 주님의 세미한 음성도 듣게하시고

때때로는 문제에 덤비지 아니하고 한발 물러서게도 하시고

잠잠하게도 하셔서 주님의 영성을 배우고 훈련하게 하옵소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진리의 말씀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영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