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9일 목요일
요한복음 11:31~44 부활을 명령하시는 분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부른다는 이야기를
마르다를 통해 들은 마리아도 급히 뛰어가서 예수님을 맞이한다.
형제는 닮는다고 했던가.
마리아도 마르다와 동일한 말을 한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다고...
예수님이 마르다 가족 집에 계셨으면 나사로가 정말 죽지 않았을까?
마리아도 울고 예수님도 우신다.
그런데 이들의 우는 이유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마리아의 눈물의 의미는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슬픔이고, 자기 연민에서 흘리는 감상적인 눈물이지 않을까?
의지해 오던 가장이 돌아가셨으니 슬픔이 큰 것은 사실일 것이다.
에수님의 늦게 오심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는 심령에 통분히 여기셨단다.
민망히 여기셨단다. 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로 앞에 두고도 이해를 못하는 불신앙 때문은 아닌지?
죽음의 권세의 위엄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연약함, 인생들의 불쌍함 때문에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무덤 앞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돌을 치우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왜 연약한 여인에게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시는 것인가?
모든 것을 다 해주실 수 있는 능력의 예수님 이시지만
내가 행해야 할 일도 해야 만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아니면 내가 예수님의 능력 행하심에 방해 되는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능력을 행하실수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성령을 거부하면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실수 있으시지만
강제적으로 도둑놈 처럼 문을 부수고 담을 넘어서 내 마음에 오시지 않는다.
또한 성령님 오시기를 초대하기를 거부하면 성령의 역사를 경험 하수가 없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불신앙의 막힌 돌, 교만의 막힌돌, 성령의 임재를 거부하는
닫힌 마음들에서 돌을 옮겨 놓지 안으면 안되는 구나.
말씀에 순종해서 돌을 옮겨 놓자...바로 지금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말씀하신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죽은자여 나오라 하셨으면 어떻할뻔했나? ㅎㅎㅎ
실수 하지 안으시는하나님을 찬양한다.
예수님이 큰 소리로 부르신다. 종호야 나아오라 라고....
열등감에서 나아오라라고
믿음없음에서 나아오라라고
불신앙에서 나아오라라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아오라라고
허무와 절망에서 나아오라라고
무기력과 운명주의에서 나아오라라고
순종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아오라고
머뭇머뭇거리고 있는 우유부단함에서 나아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아멘.
벌써 냄새가 나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오라라고 초청하시는 말씀에
순종으로 나아가자. 믿음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하나님 아버지.
벌써 냄새나는 인생이지만
종호야 나아오라, 풀어다니게하라
말씀해 주시는 분을 찬양합니다.
옮겨 놓아야 할 것을 먼저 옮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 보기를 원합니다.
JDS 애찬식과 입학식도 주님 손에 올립니다.
장모님 수술도 주님 손에 올립니다.
삶의 기쁨을 날마다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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