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1일 수요일
요한복음 4: 1~14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얼마전에 밤중에 찾아온 지성인 니고데모에게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고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였던 니고데모도
모태에 들어 갔다가 나올수 있냐고 헛다리를 짚었는데...)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하는
지역감정의 골이 깊고, 편견이 심하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위해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성이란 동네에 이르러
정오에 물뜨러오는 오는 한 여인을 만나셔서
누구나 이해 할수 있는 물을 좀 달라고 하신다.
세상에서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고 하는데
수준에 맞는 사람과 교제하고 싶어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싶지만, 수준이나 조건(?)이
월등히 낮다고 판단하면 피하고 싶고 알고 싶지도 않는데....
예수님은 최고의 지성 층과도
최하의 상처 많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무명의 여인 하고도 친구처럼, 선생처럼, 멘토처럼
따뜻하게 편견 없이 대하신다.
우리 회사 주변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보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은 촌놈(?)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은
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을 갖지 못하는 걸까?
미국이나 일본 비지니스맨을 보는 내 눈과
동남아나 제3세계 노동자들을 보는
내 안경의 색깔은 왜 다를까?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
물 길으러 온 여인에게
밥을 달라, 아이스크림을 달라가 아니라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셨고
또하나 묵상 하고픈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이야기 하신다.
하나님의 선물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단어다.
아무리 작은 것도 선물은 기분 좋은 것이니까.
구원이나 거듭남 이런 단어를 썼으면 어려울 텐데...
더구나 상처 많고 거절감이 많은 여인에게
상황과 수준에 맞는 말이
한 영혼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을 여는 키와 같은 말씀인것 같다.
하늘영광 보좌 다 버리고
낮고 낮은 나의 수준으로 찾아 오시는
그분께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가장 힘들 때 외로울 때
조용히 찾아 오셨던 주님
나를 찾아 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편견이 없게하시고
상황과 환경에 적절하게
인생에 꼭 필요한 핵심적인 말들을
할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그 샘물을 나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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