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0일 특새[25]] 십자가에서 완성한 사랑 (눅23:34~43) 말씀: 신동식, 최영민 목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을 [가상 칠언]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첫 번째 말씀이 34절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는 말씀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이 왕이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라.”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예수님을 왕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예수님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못 박았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있지만, [영의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불순종]이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식]으로는 알았겠지만,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누가 왕이냐?“고 따지는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보고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성경에 참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6장에, ”5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 사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자”고 했던,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려고 했던, [영의 눈]이 가려져 있던 사람들이 있었죠.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를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멀게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과거 속에 있는 사건”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2천년 이전의 사건“이지만, [그 피]는 오늘도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는 절망하는 우리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겠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①[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어 줍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십니다.
②[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풀 수 없는 관계”를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하게 해서, 우리의 삶에서 방향을 바꾸어 힘과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것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꾸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보혈의 능력]입니다.
③[예수님의 사랑]은 “고난과 아픔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줍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주고, “우리와 세상과의 관계”도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의 능력]은 “곧 [죄사함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만약에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있다면,
[십자가]는 “능력”이 아니라, “상징”이 되고 말 것입니다.
[피],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첫째는, [죄 사함]의 능력이 있고,
②둘째는, [생명]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흘리셨던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②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죽음이 들어왔고, [죽음]은 인생 최대의 문제가 되었지만,
우리 [예수님의 용서]는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여전히 무감각하고, [십자가의 능력]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내 다리, 내 놔”라는 시리즈입니다.
그것을 보고 난 이후에, 저는 무서워서 [구원의 확신]에 흔들림이 생겼어요.
“나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의심이 들어, 한동안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천호 사거리에 있는 기독교 백화점에 가서,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그 뒷부분에 한 말씀이 적혀 있었는데,
그 말씀이 저에게 눈물이 나고, 주님의 사랑이 믿어지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인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는 말씀이 마음에 꽂혔습니다.
여러분, [나]는 믿을 수 없고, [나]는 확증할 수 없지만, [내 자신]이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확증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나]는. [내가] 믿을 수 없지만, (= [나]는 십자가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그 사랑을 확증해 주시고, 믿도록 보증하신다.”는 말씀에 감동을 받게 되었어요.
[연약한 나], 그런 [내가]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는 [저]에게, “[하나님]은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나에게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이성과 의지로는 할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좌절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를 묶었던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믿음]을 가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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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완성한 사랑 (눅23:34~43) 말씀: 최영민 목사
앞에서 말씀하신 목사님을 통해서, [십자가]는 ①[죄]를 용서하시는 [죄사함의 능력]과
②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이 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에,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라고 확증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에 나타난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저는 오늘, 누가복음 23장 43절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내게 말한다.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눅23:43)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두 명의 죄수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한 명의 죄수는 예수님을 모독하고, 또 다른 죄수는 예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은 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고 약속을 주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1)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호의적이고, 잘해주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비난하거나, 죽이고자 하는 사람,
십자가에 달린 죄수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2)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은 ”즉각적인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죄수]가 은혜를 구하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고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 즉각적으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3)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옆에 있는 강도에게, [영생]을 약속합니다.
이 죄수는 죽음 이후에, 지금 낙원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랑]을 계속적으로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①조건 없는 사랑이고, ②즉각적인 사랑이고, ③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이런 [위대한 사랑]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린 죄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저와 여러분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거죠.
그래서 [사랑]은 아는 것이 아니고,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라지고, 메마른 심정으로 지내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그것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해야 날마다 지속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2명의 죄수가 극명하게 다른 행동을 합니다.
한 명은 “니가 그리스도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또 다른 죄수는 [자기 자신]은 지은 죄가 있기에,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주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의 이야기도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둘째 아들은 부유하게 살면서 아버지 사랑을 몰랐어요.
방탕한 삶을 살았던 둘째 아들은 유산을 받고, 외국에 가서 다 탕진하고, 완전 거지가 됩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살 바에는 아버지의 일꾼으로 살자.”고 결심하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 앞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핵심은 “우리에게 탕자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좀 당황했는데, 본문이 두 구절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주님, 무슨 메시지를 전해야 됩니까?”라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제목은 “십자가에 완성된 사랑”인데, 구절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는 구절밖에 없는 거예요.
“하필, 나에게 이런 본문을 주시다니.”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준비를 했어요.
제가 24살 때,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러나 극심한 고난으로, “정말 하나님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에” 저는 예수님을 만났어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체험하고,
지금 목회자가 되어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사역하는 것이 너무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은혜를 망각하고, 마음이 교만해져서,
”[탕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첫째 아들이 저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설교 준비를 하는 저에게 회개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어리석은 마음을 갖고 있는 저에게 깨닫게 만드셨어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면서도, “이런 어리석음을 보였구나,”라고 깨닫게 만드셨고,
다시 한 번, [죄수의 심정]으로, [탕자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게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시려고, 오늘 날짜에 설교하게 하신 걸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조건도 없고, 즉각적이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날마다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즉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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