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0일 특새[23] 우리를 위한 생명의 식탁 (눅22:7~20) 말씀: 박철웅, 전재표 목사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식사하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유월절]은 ”6월에 드리는 제사“가 아니고,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제자들과 같이 하십니다.
그날 밤에 예수님은 체포되셨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사역인 셈이죠.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가서,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여기서 [가서]라고 지명하신 곳은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행사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어디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어느 곳에 식사 장소를 마련할지?”를 예수께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①첫째로, 성 안에 들어가면 물기 있는 남자를 만날 것인데, 그 남자를 따라가거라.
②둘째로, 그 남자가 도착한 곳에 있는 [집 주인]에게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방을 구한다.”고
말하거라. 그러면 집주인이 큰 다락방을 내어줄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귀 새끼를 구하시고,
그 나귀 새끼를 타고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번에도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보통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리“인데,
예수님은 [가족]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초청하셨고,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버리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격 없는 우리]를 초청해, 자녀로 삼아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 하 9장 11절에서, [자격 없는 자]를 ”왕의 식탁에 초청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그러자 시바가 왕께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은 무엇이든 내 주 왕께서, 종에게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므비보셋]은 왕의 아들처럼, 다윗의 식탁에서 먹게 됐습니다.”라고
[다윗]의 명에 의해서, 왕의 식탁에 초청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자, “요나단의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풀겠다.”는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사울의 후손” 중에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서, 초대합니다.
그는 어릴 때, 도망 다니다가 땅에 떨어뜨려서 다리를 절었고, [왕의 자손]이지만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 앞에서, “나는 죽은 죄와 같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유대인에게 [개]는 “가장 혐오스러운 동물”이니까, 여기서 [죽은 개]라는 표현은 “자신이 부정한 존재”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다윗 왕]앞에서, “자신은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한 것인데,
그런데 [다윗]은 “사울이 소유했었던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하고,
자신의 식탁에서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
[다윗]은 “왕의 식탁에 초청했다.”는 것은 그를 인정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왕의 식탁에 초청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 이죠.
[과거]에 우리는/ 감히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현재]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을 자격도 없고, 은혜 받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와 주셨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죽은 개]와 같은 삶”을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스스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 가운데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소망은 가질 수 없었고, “은혜라는 것”은 꿈꿀 수조차 없었는데,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초청해서 자녀 삼아 주셨고,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예수님을 기억하고, 부르심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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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생명의 식탁 (눅22:7~20) 말씀: 전재표 목사
예수님의 제자였던 [누가]의 마음에는 “주님과 함께 나눈 [유월절 식사]가
평생 잊지 못할 그 추억의 자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유월절 식사는 ”곧 다가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비하셨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유월절 식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1)첫째로/ 제자들을 [사도]로 부르신 “생명의 식탁”입니다.
22장 14- 15절에, “시간이 되자,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상액이 되어 앉으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유월절 음식 먹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이 되자.”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나서는 때를 의미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생명의 식탁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누가]는 유월절 식사를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위한 생명의 식탁이다.”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에게 “오늘 유월절 식사”는 또 다른 [파송의 자리]로 해석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름 받았던 제자들”이 이제 식사를 마친 이후에, 세상을 향하여서 복음을 전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일까요?
[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2)둘째로/ [생명의 식탁]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16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다시는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이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때에, 어떤 영토나 특정한 장소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는 공간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7장 20- 21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 것인지 물어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눅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지역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공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이 놀라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서, 완성되었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가 “내 안에 들어올 때”에,
그것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서, “주님이 나의 삶을 주장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세워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구약]에서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로,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그 집에 죽음의 영이 넘어간다.”고 믿게 되었어요.
그러나 주님이 준비하신 [유월절 만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서, 이룩하신 주님의 보혈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준비하신 [생명의 식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의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3)셋째로/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통하여서,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19- 20절을 보면, “그리고 예수께서 빵을 들고 감사기도 드린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해 나를 기념하라.
빵을 잡수신 후, 예수께서 마찬가지로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옛 언약]은 “구약의 율법“을 말하고, 이것은 [십계명]으로 시작이 되지만,
[새 언약]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새겨지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새겨 지나요? 우리가 [성령]을 깨닫게 될 때, [십자가의 은혜]가 내 안에 부어지고,
그 은혜가 내 안에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새 언약]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는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더라도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미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담대할 때,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 임할 것이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놀랍게 삶을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내 안에“,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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