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0일 특새[22] 사랑으로 낮아진 예수님 (요13:3~17) 말씀: 임용성, 김상규 목사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사는데,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먼저 3절에,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주셨으며,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는”(요13:3) 여기서 우리는
①“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고,
②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다음에 1- 2절 말씀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됐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마귀는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배반할 생각을 넣었습니다.”(요13:1~2)
2절에을 보면,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배반할 생각’을 넣어 주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것은 굉장히 대조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 보면,
①[예수님]의 시선과 방향성은 [하나님]을 향해 있고,
②[유다]의 시선은 “본인(자기)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마귀]는 “[유다]가 무엇에 심취되어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유다]를 조정합니다.
[유다]는 “마귀가 자신에게 들어오도록, 자기 마음을 열고, 기다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삶]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니까, 내 [영]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신명기 5장 32절- 33절에, ”그러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삼가 지키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말라. 너희가 차지하게 될 그 땅에서, 너희가 살고 번창해, 너희 수명이 길 것이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어떤 [설정 값], (디폴트 값)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출애굽기]를 읽고, “출애굽기의 디폴트 값”은 [구원]이다.
[잠언]의 디폴트 값은 [지혜]이고, [사도행전]의 디폴트 값은 [복음 전파]와 [성령]이다.
이렇게 제가 “설정 값”을 찾아놓으면, 저는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읽으신 “본문의 설정 값”은 뭡니까?
그 해답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어요.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좌회전과 우회전을 아무리 잘해도,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면,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 축소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위축]과 [축소]는 완전히 다릅니다.
①[위축]은 “내가 쪼그라드는 게” 아니에요.
[위축]은 “내가 너무 팽창되어서, 나밖에 안 보이는 것”이 위축입니다.
[사울의 군대]가 구척장신인 [골리앗]에게 쫄아서 벌벌 떤 것은 [위축]된 것이고,
②반대로, [축소]는 을 보세요.
거대한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를 보면서, [소년 다윗]은 “할례 의식을 치르는 방법도 모르는 저 짐승 같은 자가,
어디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을 하느냐?”고[거룩한 분노]를 느끼면서 [돌]을 듭니다.
여기서 [다윗]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요?” 그것은 [축소의 힘]입니다.
[다윗]은 “너무나도 명확한 믿음의 설정 값”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인다.”고 고백해요.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자신을 축소하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늘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성령 받은 죄인“이니까, 그러기에 ”나의 삶은 주님이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축소의 힘]이에요.
[바울]은 ”내가 약할 때, 곧 온전해진다.“고 말씀하면서,
더 나아가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0%, 주님은 100%“ 이게 [축소의 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방향성]을 잘못 잡은 사람들이나, [디폴트 값]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정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곡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거예요.
▶이와 반대로/ 예수님은 누구에 의해 전파됐습니까?
오늘 말씀에, [베드로] ”예수님이 발을 씻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처음에는 거부합니다.
그러면 “너와 나는 아무도 상관없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목욕도 시켜 주세요?“라고 요구합니다.
[베드로]는 나약하지만, 잃어버리지 않은 게 있어요.
▶그건, 뭡니까? 그것은 [방향성]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가 변하고, 물 건너 강 건너 지금 대한민국에 [예수님]이 전파되어, 우리가 믿고 있는 거예요.
[서구]의 기독교가 목소리를 안내서 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서“ 망한 것입니다.
[미국]에 개척 당시에는 마을의 중심에는 ”늘 교회가 먼저 세워졌다.”고 해요,
그리고 여인들의 혼수품에, ①첫 번째가 [성경책]이고, ②두 번째가 [요리 책]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소박한 집중력을 잃어버렸어요.
[베드로]는 완벽하지 않아도, 일관적으로 [주님]을 붙들고 있어요.
이와 같이, 우리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관성을 추구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예수를 사랑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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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낮아진 예수님 (요13:3~17) 말씀: 김상규 목사
앞서 임용성 목사님이 “[믿음의 삶]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였다면,
저는 “[믿음의 삶]은 섬김으로 증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린 양을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어린 양을 따라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어린 양을 닮아가서, 어린 양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4- 5절에,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요13:4~5)
식사를 마치신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차례가 오자, ”주여, 제 발도 씻겨주시려 하십니까?“라고 거절합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겨주신다는 것“이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팔레스타인 문화에 [샌들]을 신어서, 발이 더러워지기 쉬웠고,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면, [종]들이 주인의 더러워진 발을 씻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행위“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신이셨던 [예수님]은 얼마든지 섬김을 받으실 수 있지만,
그와 반대로, 오히려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낮추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셨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고아와 과부를 가까이하며, 늘 낮은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결국 제자들의 신체 중에 가장 낮은 곳인, “[발]을 씻겨 주심으로”
“[낮아짐의 섬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삶]에 있어서, [섬김]은 “낮아져야”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낮추지 않으면, 그것은 섬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섬김의 대상]보다 높아져 있다면, 그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히시고, 낮아지심으로,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2)두 번째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은 [희생]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 역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온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완전한 섬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물과 피를 쏟고, [섬김]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를 섬길 때,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서 [물질]을 나누고, [시간]을 쪼개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조금 더 [희생]하여, 공동체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제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의 [결혼식]에서, 목사님께서 저와 아내에게 한 가지 [숙제]를 주셨는데,
그것은 오늘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가서, “서로의 발을 씻겨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지만, 목사님의 부탁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아내를 섬겨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하는 존재“로만 알았지, ”섬겨야 되는 대상“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발]을 씻기면서, “아내를 평생 섬겨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 깨달음]으로, 아내보다 높아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14-15절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주었으니,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겨주기를 원하셔서, “본을 보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직 늦지 않으셨으니,
오늘 저녁에 여러분들도 집에 돌아가셔서, 아내의 발을 씻겨주셔서, 섬김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깨달음]을 주셔서, [섬김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낮아짐]으로 서로를 섬기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복음의 원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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