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40일 특새[17] 생명을 살리는 완벽한 가장 완벽한 시간과 방법 (요11:39~44)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제주 온누리교회에서 말씀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영어로는 [사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7가지 표적들 중에서 마지막 표적입니다. 이런 [표적]은
①“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믿게 하고,
②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하려 한다.”는 목적입니다.
7가지 [표적]은
①첫 번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2장)이고,
②두 번째 표정은 갈릴리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표적(4장)이고,
③세 번째는 베데스타 연못가에서 고쳐주신 표적(5장)이고,
④네 번째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6장)이고,
⑤다섯 번째는 폭풍 속에서 물 위를 걸어오신 사건(6장)이고,
⑥여섯 번째는 날 때부터 눈이 먼 병자를 고쳐 주는 사건(9장)이고,
⑦일곱 번째 표적은 사랑하시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표적(11장)입니다.
11장 53절에 보면, “그날로부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그날]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표적”을 의미하고,
“[그날] 이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표적을 보면서, 질투심과 경계심을 가지고, 무척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거짓된 사상]과 [시스템]이 드러나고, 붕괴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나사로]의 사건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가만히 두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아이러니]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죽임을 당하는 분]이기에, [역설]이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분“이 ”죽어야 하는 사건“이 [십자가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역설]이고,
이것이 [십자가의 아이러니]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십자가의 역설]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게 하십니다.
여기서 결정적 사건의 주인공은 평소에 사랑하시던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와 함께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종 삼남매의 가정에 들리시고, 묵으시고, 안식하는, 일종의 [리트릿 센터]처럼
이 가정에서 머무신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나사로]가 병에 들어 죽게 되었을 때, 두 자매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11장 3절에,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주여,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들었습니다.’“라고 전달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도 병이 들고, 죽음이 피해 가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①첫 번째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이고, 이것은 [징계성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거룩해지도록 만드시는 고난입니다.
②두 번째 고난은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한 고난”이고,
우리의 믿음이 더 자라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입니다.
③세 번째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선교사님들이 받는 고난”이고,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내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할 때의 고난이고,
이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때로는 [순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이틀이나 더 머무셨다.”는 겁니다.
11장 5- 6절에,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녀의 자매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예수께서는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요11-05-06)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랑하시는 사람이 죽어간다.“고 하면, 빨리 달려가야 하는데, 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틀이나 더 지체하셨다.“는 것은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굳이 나사로가 있는 곳까지 가지 않으셔도 되는 분인데,
”말씀으로“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 지체하신 이유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는 상황에는 중요한 [영적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비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왜, 나사로가 죽도록 [이틀]을 더 지체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를 사랑하신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뭘까요?
(1)첫째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11장 15절의 말씀에,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는 까닭은 너희를 위해서다. 이 일로 인해,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 이제 나사로에게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거기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또 이어서 ”너희를 위해서다. 이제 너희가 이 일로 인해서 믿게 될 것이다.“라고 이해 할 수 없는 말씀을 연속으로 하십니다.
▶”무엇을 믿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게 되는 것.
그로 인해서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죽은 자가 사흘 동안(4일 정도) 영혼이 몸 근처를 맴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님께서 당장에 가서, 살려 주셨다면, ”당연한 것을 하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4일] 만에 가신 것은 ”완전히 죽은 것으로 인정 할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완전히 시체 썩은 냄새까지 날 때까지,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죽은 자“임을 확인하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신 후에 살리시려고 [이틀]을 더 지체하신 겁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2)둘째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남으로 인해서, 가족과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지 나사로의 생명의 연장“이 아닙니다. 사실 그 사건이후에, [나사로]는 다시 죽었지만,
이것은 진정한 [부활]이 아니라, [소생]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소생]은 ”일시적으로 다시 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통해서, [나사로]와 그 가족들, 그리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분이며
또한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임을 먼저 체험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를 택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확실하게 부활하신 것이고,
[나사로]는 소생한 것으로 일시적으로 소생하여, 살다가 죽게 됩니다.
(3)셋째로/ 우리에게 [기다림의 믿음]을 가르쳐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기다림을 포함합니다.
”[기다림]이 곧 믿음”은 아니지만, 믿음은 기다림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은 이후에, [25년]을 기다렸어요.
▶왜, 25년을 기다렸을까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기다렸을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처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더 나이가 많아져서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 거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기다림의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서두르고 재촉하지만,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고, 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니다.
▶[그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기다림의 믿음이 찰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라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겁니다.
이제/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출발하셔서 도착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와서 맞이한 [마르다]는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섭섭한 말을 좀 하죠.
여기서 [예수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1장 25- 26절에,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이 말씀하신 이후에,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돌을 옮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마르다가 또 나서니까 40절에,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책망성 교훈을 하십니다.
41- 42절에, “이제 사람들이 돌을 옮겨놓자,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요11:41-42)
이 [기도]를 잘 보시면,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기도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한 것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때로 기도를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도]도 잘 들을 필요가 있는 거예요.
“믿음이 성숙한 다른 사람”의 기도를 통해, [내 믿음]이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도]도 참고하여, 내가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뭡니까?
지금,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저희 같았으면 ”하나님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기도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나사로 살려 달라.“는 기도와 간청은 없습니다.
오직,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이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냈다는 걸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①그것보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고,
②그리고 아버지의 자녀 됨에 대한 감사,
③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감사,
④아버지께 이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에 감사,
⑤그런 [감사]가 ”우리의 간구와 필요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 서 계십니까? 그럴 때도
”하나님께 감사함“를 드리고, 나중에 ”우리의 필요“를 얘기하십시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주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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