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생명을 살리는 완벽한 가장 완벽한 시간과 방법(요11:39~44) 2025.03.26

다이나마이트2 2025. 3. 26. 10:45

2025 40일 특새[17] 생명을 살리는 완벽한 가장 완벽한 시간과 방법 (요11:39~44)  이재훈 목사님

 

오늘은 제주 온누리교회에서 말씀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영어로는 [사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7가지 표적들 중에서 마지막 표적입니다. 이런 [표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믿게 하고,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하려 한다.”는 목적입니다.

 

7가지 [표적]

첫 번째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2)이고,

두 번째 표정은 갈릴리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표적(4)이고,

세 번째는 베데스타 연못가에서 고쳐주신 표적(5)이고,

네 번째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6)이고,

다섯 번째는 폭풍 속에서 물 위를 걸어오신 사건(6)이고,

여섯 번째는 날 때부터 눈이 먼 병자를 고쳐 주는 사건(9)이고,

일곱 번째 표적은 사랑하시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표적(11)입니다.

 

1153절에 보면, “그날로부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그날]“[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표적을 의미하고,

“[그날] 이후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표적을 보면서, 질투심과 경계심을 가지고, 무척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거짓된 사상][시스템]이 드러나고, 붕괴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나사로]의 사건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가만히 두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아이러니]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죽임을 당하는 분]이기에, [역설]이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분죽어야 하는 사건[십자가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역설]이고,

이것이 [십자가의 아이러니]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십자가의 역설]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게 하십니다.

여기서 결정적 사건의 주인공은 평소에 사랑하시던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와 함께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종 삼남매의 가정에 들리시고, 묵으시고, 안식하는, 일종의 [리트릿 센터]처럼

이 가정에서 머무신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나사로]가 병에 들어 죽게 되었을 때, 두 자매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113절에,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주여,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들었습니다.’“라고 전달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도 병이 들고, 죽음이 피해 가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이고, 이것은 [징계성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거룩해지도록 만드시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 고난은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한 고난이고,

우리의 믿음이 더 자라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입니다.

 

세 번째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선교사님들이 받는 고난이고,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내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할 때의 고난이고,

이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때로는 [순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소식]을 듣고, 이틀이나 더 머무셨다.”는 겁니다.

115- 6절에,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녀의 자매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예수께서는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11-05-06)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랑하시는 사람이 죽어간다.“고 하면, 빨리 달려가야 하는데, 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틀이나 더 지체하셨다.“는 것은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굳이 나사로가 있는 곳까지 가지 않으셔도 되는 분인데,

말씀으로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 지체하신 이유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는 상황에는 중요한 [영적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비밀]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그런 믿음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 나사로가 죽도록 [이틀]을 더 지체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를 사랑하신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뭘까요?

(1)첫째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1115절의 말씀에,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는 까닭은 너희를 위해서다. 이 일로 인해,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 이제 나사로에게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거기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또 이어서 너희를 위해서다. 이제 너희가 이 일로 인해서 믿게 될 것이다.“라고 이해 할 수 없는 말씀을 연속으로 하십니다.

 

무엇을 믿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게 되는 것.

그로 인해서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죽은 자가 사흘 동안(4일 정도) 영혼이 몸 근처를 맴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님께서 당장에 가서, 살려 주셨다면, ”당연한 것을 하셨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4] 만에 가신 것은 완전히 죽은 것으로 인정 할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완전히 시체 썩은 냄새까지 날 때까지,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완전히 죽은 자임을 확인하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신 후에 살리시려고 [이틀]을 더 지체하신 겁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2)둘째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남으로 인해서, 가족과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지 나사로의 생명의 연장이 아닙니다. 사실 그 사건이후에, [나사로]는 다시 죽었지만,

이것은 진정한 [부활]이 아니라, [소생]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소생]일시적으로 다시 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통해서, [나사로]와 그 가족들, 그리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분이며

또한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임을 먼저 체험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를 택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확실하게 부활하신 것이고,

[나사로]는 소생한 것으로 일시적으로 소생하여, 살다가 죽게 됩니다.

 

(3)셋째로/ 우리에게 [기다림의 믿음]을 가르쳐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기다림을 포함합니다.

”[기다림]이 곧 믿음은 아니지만, 믿음은 기다림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은 이후에, [25]을 기다렸어요.

 

, 25년을 기다렸을까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기다렸을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처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더 나이가 많아져서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 거예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기다림의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표][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서두르고 재촉하지만,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니다.

 

[그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기다림의 믿음이 찰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라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겁니다.

 

이제/ []가 되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출발하셔서 도착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와서 맞이한 [마르다]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섭섭한 말을 좀 하죠.

 

여기서 [예수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125- 26절에,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11-25-26)

 

이 말씀하신 이후에,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돌을 옮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마르다가 또 나서니까 40절에, [예수님]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책망성 교훈을 하십니다.

 

41- 42절에, “이제 사람들이 돌을 옮겨놓자,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11:41-42)

 

[기도]를 잘 보시면,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기도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한 것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때로 기도를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도]도 잘 들을 필요가 있는 거예요.

믿음이 성숙한 다른 사람의 기도를 통해, [내 믿음]이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도]도 참고하여, 내가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뭡니까?

지금,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저희 같았으면 하나님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기도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나사로 살려 달라.“는 기도와 간청은 없습니다.

 

오직,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이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냈다는 걸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중요한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고,

그리고 아버지의 자녀 됨에 대한 감사,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감사,

아버지께 이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에 감사,

그런 [감사]우리의 간구와 필요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 서 계십니까? 그럴 때도

하나님께 감사함를 드리고, 나중에 우리의 필요를 얘기하십시오.

 

[예수님]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주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