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닿다, 그 용기와 완전한 치유 (막5:25~34) 2025.03.25

다이나마이트2 2025. 3. 25. 10:08

2025 40일 특새[16] 닿다, 그 용기와 완전한 치유 (5:25~34)  말씀: 이기복, 김성욱 목사

 

우리는 요즈음에, “이 땅에 오신 [어린 양]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어린 양]은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고,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간]이 되어서,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죽음을 넘어선 [십자가의 사랑]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섬김의 어린 양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이사야서 537절에 기록한 대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을 깎이는 잠잠한 어미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53: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갈릴리 호수 근처인데,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밀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믿는 것]은 다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아는 것]은 단지 아는 것이기에,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것]은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하기에,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아는 사람이 있고, “믿는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아는 것과 그것을 믿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것인지, 믿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문제를 만나보면알 수가 있습니다.

그 문제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시험을 만나게 되면, 금방 [표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지만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한 [여인]듣고, 아는 것을 넘어서, [믿음 있는 행동]”을 보여 줍니다.

 

525- 26절의 말씀에, ”그 가운데는 혈루병으로 12년 동안 앓고 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여러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으며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잃었지만,

병이 낫기는커녕 악화될 뿐이었습니다.“(5:25~26)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가운데, [한 여인]이 있는데, ”[혈루병]에 걸린 여인입니다.

[혈류병][레위기] 기록을 보면, 여자가 하혈을 계속하는 병인데, ”부정한 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이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았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따라서 이 여인은 모든 종교 활동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았을 겁니다.

 

[여인]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움]을 느끼고, 질병의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이 27- 28절에. “그러던 중 예수의 소문을 듣고, 뒤에서 무리들 틈에 끼어들어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예수의 옷자락만 닿아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5:27-28)

 

[율법]에 의해 부정한 사람이 된, 이 여인은 가족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고, 여인이 만약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면,

이혼의 사유가 되었기에, 남편에게도 버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하는 순간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매우 신속하게 행동합니다.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예수님에게 꽂혀서, 군중사이를 뚫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닿는 순간에, 그 녀의 혈루병이 낫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여인]은 소문이 들려졌을 때,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여인에게 들린 [이 소문]“은 그냥 소문이 아니고, [희망의 소리], [복음의 메시지]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인]용기를 내어, 믿음 있는 결단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12년 동안을 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니까,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 있는 게 편한 여인입니다.

 

그런 여인이 포기해야 되겠습니까? 아니죠.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28절에, ”예수의 옷자락만 닿아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이 지금,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녀의 [시선]이 지금 예수님을 향하고, [시선]이 꽂혀지는 순간에, 예수님은 더 크게 확대되어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기에, 평생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잡으려고,

군중 사이를 뚫고 들어가, 온 힘을 다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되뇌었던 내 병이 낫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29절에, “그러자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면서, 이 여인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5:29)

 

그런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출혈이 말랐다.”는 표현은

이 병의 치료가 일시적으로만 한시적으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병이 완벽하게 뿌리까지 치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병이 나을 것이라.”[용기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시선]이 예수님에게 고정되었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시선],

작은 예수 40일 새벽 기도 동안에, [어린 양]에게 집중하고, 예수님께 고정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찬양은 [시선]입니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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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0일 특새[16] 닿다, 그 용기와 완전한 치유 (5:25~34)  말씀: 김성욱 목사

 

우리가 함께 찬양한 것처럼,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온전히 돌릴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만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닿으려는 [믿음의 용기]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 닿을 때, 일어나는 [치유와 회복]에 대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여인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철저한 고립] 가운데 있었으므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다.“는 율법의 [부정함]으로 인해, 12년 동안 억눌려 지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마저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상처의 근원이 치유되었지만, 여전히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로부터의 외면을 당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스토리]이제, [여인]에게서 --> [예수님]에게로, [시선]이 전환됩니다.

30절 말씀에, ”동시에 예수께서도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알아차리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옷자락에 손을 대었느냐?‘“(5:30)

 

예수님께서도 이 여인이 변화한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여기서 능력이 나갔다.“는 표현은 헬라어 시제로 [완료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이 닿기까지 [미완료 시대]였던 그녀의 간절함이,

이제 옷자락에 닿음으로 인하여서 완료가 되었고,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이 그 여인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는 여전히 나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직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육체적으로 치유를 받았지만, 그 이후에 전인격적인 회복이 필요하고,

예수님은 오늘 이 사건을 통하여서, [이 여인]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혈루병]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것조차 금지되기에, 군중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은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몸도 마음도 지친 여인에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삶 자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사람 앞에 나설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여인]예수님이 나를 찾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사라지고, 일주일 지난 후에 회복된 다음에, 만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조용히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나를 만졌는지?“를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집요하게 여인을 찾았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육신의 치유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회복을 원하신 것입니다.

 

[]만 낳는다면, 그것은 반쪽 치유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치유를 받았다면, 그 다음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이 질병이 죄로 인해서 왔다.“고 믿었기에,

더 큰 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 여인에게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되, 숨어 살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회복시키는 분이십니다.

 

33- 34절에, ”그러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이 여인이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면서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이제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해방돼 건강하여라.“”(5:34-35)

 

[이 여인]의 마음속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율법]을 어기고,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죄책감][수치심],

예수께서 자신을 책망할까 하는 [불안함],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여서 느끼는 [경외심],

이 모든 것들이 이 여인을 떨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복잡한 여인의 심경 속에 찾아오셔서, “네 마디 문장으로 온전한 회복을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이제 안심하고, 가거라.

병에서 해방되었으니, 앞으로 건강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녀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이 한마디로/ 이 여인의 [죄책감][수치심]을 떨쳐 버리고, 잃어버린 그녀의 존재를 발견하도록 회복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섬기는 어린 양, [예수님]을 통해서, 혈루병에 걸린 여인의 믿음 있는 행동을 보았고,

[예수님]은 그녀의 몸과 마음에 정체성을 심어 주었고, 삶 전체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에서의 회복뿐만 아니라,

그녀 안에 있던 두려움과 수치심, 정죄감의 근원까지 치유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삶의 순간마다, “이 여인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는 질병이나 있거나, 마음에 상처로 인해, 패배감이 들거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을 부르짖지만,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께 더 나아가기를 망설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겪는 작은 오해나 갈등으로, 서로의 마음이 다쳐서, 때로는 예배드리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웃으면서, “갓 블레스 유축복하면서 찬양하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으로 홀로 고민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예수님]우리가 숨어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길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작은 상처와 아픔 하나까지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내셔서 온전한 회복과 치유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여인]이 가지고 있는 [질병]뿐만 아니라,

[두려움][죄책감], 그리고 [사회적인 소외감]을 모두 치유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용기를 내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온전한 자유]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속에서,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 있는 용기와 같이,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