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죄인의 자리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3:13~17) 2025.03.20

다이나마이트2 2025. 3. 20. 09:27

2025 40일 특새[11] 죄인의 자리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3:13~17)  말씀: 김승훈, 황신연 목사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알고, 그것을 간구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의]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 본문을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13절에,

그때,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셨습니다.“(3:13)

 

여기서 [그때],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때]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소리가 외쳤던 그 시간이기도 하지요.

 

저는 먼저 한 가지를 묻습니다.

[주님]은 준비가 되어서 오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시죠.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준비하는 자가 있으면, 그때에 임하시고 나타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주님]은 세례를 받으러 오셨기에, [요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참 귀하고 겸손한 [요한]이지만, 주님 앞에서 겸손도 교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던 [요한]이 순종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여자들에게서 난 자 중에서는 가장 큰 자이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본문은/ [요한]에게 답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1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해, 모든 []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러자 요한은 그대로 따랐습니다.“(3:15)

 

[세례의 자리]에 오신 예수님께서, 세례와 함께 더불어 [모든 의]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세례와 모든 []“를 어떻게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을까요?

먼저 [세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로 인하여 죽어야 함을 보여주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시고자,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모든 의]란 무엇입니까?

[모든 의]하나님에게서 주신 모든 말씀이고,

곧 언약이 그들 안에 이루어지고, 언약이 성취되는 모습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모든 의]를 이루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죄 없는 예수님께서 세례의 자리에 나오시므로,

사람과 같이 되셨고, 죄인의 자리에 서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뜻하는 것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고, 고난 받는 어린 양의 모습입니다.

 

세례 받으시는 주님은 바로 평화의 왕이 되셨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으로 실제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며, 언약을 성취하셨기에, [모든 의]를 이루셨던 것이고,

결국 [모든 의]궁극적인 언약의 성취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를 외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참된 의]란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의]에는 되갚음이 있기 때문에, 한계적 속성으로 [모든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정의]의 이름으로 []를 행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또 다른 되갚음이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하시는 [예수님]세례를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신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 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 안에는 되갚음이 없고, 오히려 우리의 죄를 덮으시고,

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를 덮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죄]를 속량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루시는 [모든 의]는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되갚음]을 온전히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의 의]를 따라가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세례를 본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얽매임, 세상의 원수 맺음, 세상에 용서 못함에, 묶이지 말고,

예수님이 받는 세례를 우리도 받아야 합니다.

 

이런 놀라운 세례를 받으신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16절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속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3:16)

 

[그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마가복음]에는 하늘이 갈라졌다.”고 했는데, “하늘이 찢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이런 [은혜]가운데, 무엇이 보이십니까?

하늘이 열리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약속하셨던 [성령의 역사]가 보이게 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찢어지므로, [세례]를 통하여 [모든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모든 의]를 이루셨고,

[주님의 의]를 이루심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 가운데에, [성령 충만함]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다짐해야 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받으신 그 세례를 우리도 받고,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우리도 따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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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0일 특새[11] 죄인의 자리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3:13~17)  말씀: 황신연 목사

 

앞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모든 의]를 이루시고,

[그때] 하늘이 열리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에서 깨달았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의]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가?”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십니다.

 

16절의 말씀에, “그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속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3:16)

 

여기를 보니까,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세례 받는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시는데,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영], 바로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역사를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167- 8절에, [하나님의 의]와 관련된 성령님의 역할이 나와요.

특별히 8절 말씀에, “보혜사가 오시면, []에 대해, []에 대해,[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16:8)는 말씀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에 대해서 책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의]와 반대되는 세상의 죄악들을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의]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알리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그럼,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실까요?

요한복음 16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들은 것만을 말씀하시며,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16:13)

 

이 말씀을 보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령님은 진리를 말씀하시고,

성령님은 [자의](자기 생각대로)로 스스로 말하지 않고,

성령님은 오직 들은 것만 말씀하고,

성령님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말씀을 따르도록 하신다.“는 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시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서,

그 모든 []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어,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2)두 번째로/ [하나님의 의]에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를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17절에,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또 성령님이 임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실 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한다.”[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애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는데, 심리학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아이와 부모]는 정상적으로 안정적인 정서적 관계로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애착이 잘 돼 있으면, ”아이가 안정감 있게 자라고, 때로는 부모가 떨어져 있어도,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자기 시간들을 잘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착이 잘 안된 자녀는, “다른 아이와 [관계]에서 늘 불안을 느끼고,

늘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하나님과 깊은 애착을 누리시는 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갖고 계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칭찬과 격려를 받고,

저기 앞에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제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질문이 하나 있는데, 풀렸어요.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가상 칠언]을 하시는데,

엘리 엘리 사박다니, 아버지 어째서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고백과

아버지, 내 영혼을 하나님 손에 의탁합니다.“라는 말씀에, ”[간격]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는 의문이 들었어요.

 

저는 이 고백에서, 그동안 참 잘 풀리지 않았는데, 이번 묵상에서 이게 깨달아졌어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에서, 깊은 사랑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고난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버림받은 것 같은 그런 순간을 경험하셨지만,

 

결국에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셨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예수님을 요한복음 129절에,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01:29)

 

[예수님]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시고, ”기뻐하시는 자이신데,

이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 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 때문이고,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 양이십니다.

 

이번에, 작은 예수 40일 새벽 기도의 [주제]어린 양을 바라보라.“는 것인데,

우리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어린 양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와야 합니다.

 

거기에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아들, ”내가 정말 기뻐하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었어.“라는

음성이 나에게 들려와야 합니다.

 

내가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어. 내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어.“

왜냐하면,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내가 너를 기뻐하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내가 너를 나의 백성, 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야.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