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마1:18~25) 2025.03.17

다이나마이트2 2025. 3. 18. 17:14
2025 40일 특새[8]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마1:18~25)  말씀: 변대섭 목사
 
예수님의 탄생은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한 사이에, “성령으로 임신하게 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이 사실을 고민할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이하라. 마리아가 가진 아기는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다.
그는 예수라 하라. 예수가 그들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마1:20-21)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날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마1:21-23)는 말을 듣습니다.
 
천사가 한 말씀은 [주]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어린 양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을 [마태]는 복음서 첫 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 위에만 계시거나, 우리의 머릿속에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신실하고 진실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는 공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우리의 삶의 순간마다 분명하게 의식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 생활에 [두려움]이 있는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린 양이 이 땅에 오시는 시간에, 한 가정에 뜻밖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메시아]의 탄생은 큰 기쁨의 소식인데, 처음에 한 가정에 충격을 줍니다.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에, [갑작스런 예언]에 당황합니다.
그 당시에 “약혼한 후 남자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면, “끌어내어 돌로 쳐 죽여라.”는 법이 있으니,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수도 있고, 동네에서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에, [요셉]의 선택은? 
19절에,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마리아]가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될까 봐,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
 
[요셉]은 공개적인 고소와 정죄로 나아가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리아]가 수치를 겪지 않고, 다른 사람과 약혼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요셉]이 이런 생각 안에도, 하나님께선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어떤 액션을 취하려고 할 때에, 지체 없이 [하나님의 손길]이 그에 임합니다.
 
[주님의 천사]가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도하시며,
마태는 이 타이밍을 성경에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20절에,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내 아내로 맞아라. 마리아가 가진 아기는 성령으로 임신된 것이다.”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명확해 지고, [파혼의 위기]는 하나님의 섭리로 마무리 됩니다.
이런, 아찔한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다음에, 반드시 하는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이 뭘까요?--- 그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함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강하게 하고, 너를 도와주겠다. 내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을 때, 나타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임마누엘의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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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0일 특새[8]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마1:18-25)  말씀: 김용산 목사
 
앞에서, “두려움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두 번째로/ “죄인에게 오셔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먼저 본문 21절과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를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마1:21-23)
 
본문에 기록된, “어린 양의 이름”은 [예수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는 그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미이고,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이름을 왜,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어린 양]을 두 이름으로 구분하는 데는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 양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①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고, 
②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자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어린 양의 사명입니다.
 
[어린 양]은 이 사명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명]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죄는 결코 정결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어린 양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고,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셨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와 함께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해, 좀 더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았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걸까요?
누가복음 15장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오셨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에서, [길]을 잃은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잃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회개를 들으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걸까요?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화목 제물]이 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여기서 [이때]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먼저 회개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우리를 찾아오셨을까요? 요한일서 4장 10절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 어린 양을 우리 가운데 보내어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먼저 찾으셨고, 먼저 용서하셨으며,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기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죄인 된 인간을 찾은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난 이름”과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하시러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임마누엘, 어린 양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 자체로 [은혜]입니다.
[에스겔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택하신 공간에 인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의 언약]은 언제까지 유효한 언약일까요?
혹시 아니면, 어린 양]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을 때, [임마누엘의 언약]은 종결되었을까요?
아니면 승천하실 때, [언약]은 끝이 났을까요?
마태복음은 [임마누엘의 언약]을 시작으로, [임마누엘의 언약]이 성취될 때까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언약]은 마태복음의 결말입니다. 28장 19절 20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28:19-20)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겠다.“고 언약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세상의 [끝 날]이 언제입니까? 
여기서 [끝 날]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이 세상의 [끝 날]입니다.
 
그래서 20절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보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지 않았는데, [주님]은 우리를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회개하지 못했는데, 주님이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어린 양]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영원한 언약]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도 ”내 곁에 함께하시는 어린 양“을 온전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게 돈과 명예와 자랑을 앞세우고, ”내 안에 있는 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어린 양]을 온전히 바라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