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새벽기도[4]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어린 양 (요17:1~5) 말씀: 이재훈 목사
한 영혼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성경 지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지식”이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갖고도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을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통달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성경의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가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척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는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친히 아버지와 나누신 기도“의 내용입니다.
[주기도문]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기도이고,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직접 기도하신 내용이기에, 그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이 기도]가 위대한 까닭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첫째로, 이 기도를 들으신 예수님의 신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고, [아버지의 권세]를 의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셨습니다.
(2)두 번째로, 이 기도가 위대한 까닭은 ”이 기도가 드려진 시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또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에 오셨고,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감당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이 기도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놀라운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이 기도]의 위대함은 “세상에 있는 우리들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17장 중반 후반부에 보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①예수님 당시에는, 제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고,
②그리고 장차 예수님의 제자가 될, 저와 여러분을 위한 기도이고,
③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무엇을 알게 되나요?
①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을 알게 되고,
②“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파악하게 되고,
③“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알게 되고,
④“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⑤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이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요한복음 17장]을 한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쭉 읽어보시면, 신비로우신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1절의 말씀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울어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됐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요17:1)
여기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영광]이라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도 [영광]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요한복음 8장 50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나,
그러나 나를 위해 영광을 구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심판자, 곧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는데, 17장에 와서는 “나를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은 어떤 영광일까요? 요한복음에서는 영광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①첫 번째 영광은 창세전부터 가지신 본질적인 영광이고,
②두 번째의 영광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영광”입니다.
그 [영광]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은 “천지 창조”를 통해서 나타났고, 만물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섬세하신 솜씨, 우리 인간 안에 있는 작은 미세 핏줄을 다 연결하는 오묘하신 솜씨,
그 광활함과 그 섬세함,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호흡하고, 서로 대화하고, 인간들이 창의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고,
이 지구에서 개발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보여주신 영광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이 들여지는 것이죠.
그래서 “때가 이르렀다.”고 기도하셨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때]는 “영광이 나타나실 때가 됐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입니까?”라고 [질문형]으로 묻지 않으시고,
“때가 이르렀다.”고 [단답형]으로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아버지 이때입니다.”라고, 타이밍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행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예수님처럼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때가 올 겁니다.
요한복음 12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 받아야 할 때가 왔다.”(요12:23)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때]를 의식하며, 살았어요.
▶그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것은 ”그 때를 가리켜, 예수님은 영광 받으실 때“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성 어거스틴]는 ”예수님은 [때]가 되어 죽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때를 택하여 죽으신 것이다.“고 말씀했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스럽게 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세상의 임금이 되는 때가 아니고, 세상에 영화를 누리는 때가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하시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온 세상을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존귀가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 ”영광스런 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통해, ”영광스럽게 되신 어린 양“을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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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새벽기도[4]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어린 양 (요17:1~5) 말씀: 이기원 목사
예수님이 하나님께 간구하셨던 것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담대하게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2절에서 4절의 말씀인데, 정리하면,
(1)첫째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는 누구이십니까?
그 [아버지]는 “창세전에 예수님과 함께 계셨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사랑과 인자가 풍부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아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아들을 돌보시는 아버지이고,
그리고 그 아들을 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수 있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도 “하나님, 아버지”이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으시며, 우리의 마음의 소리도 들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2절을 보면,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요17:2)
▶아버지가 아들에게 두 가지를 주셨는데, 그게 뭘까요?
①첫째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셨고,
②두 번째는,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네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를 받으시고,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그 권세를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①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고,
②십자가를 지시는데 그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온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심으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생이 주어진 줄 믿습니다.
▶여기서 [영생]이 무엇입니까? 3절에,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영생]은 오랫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죽지 않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영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이란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루하루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알아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날마다 계속해서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조금씩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고,
그리고 점점 더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신 분입니까?
①그 [영생]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②하나님께 받은 모든 권세를 자기 자신의 유익에 사용하지 않으시고,
③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세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십시오.
무슨 권세든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고, 이미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입니다.”(롬13:1)
나에게 어떤 [권세]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가진 권세”는 나 자신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신 권세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 권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가지고 있는 권세“를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 권세]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 개인]이 영광을 받기 때문에, [그 영광]은 인간을 죄악에 빠지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신 권세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권세가 있다면, 그 권세를 가지고 사람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2)두 번째/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 완성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4절을 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일을 다 완성해, 이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요17:4)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신 모든 일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신 것도, 간음한 여인을 자유 케 한 것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사역을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이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예수님이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다 완성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주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에 따라, 온누리교회는 지난 40년간 이 사명을 감당해 온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40년,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런 명령에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셨을까요? 빌립보서 2장 7절과 8절에,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낮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빌2:7~8)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사명을 다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①오히려 자신을 비워서 종이 되심으로 사람이 되셨고,
②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으로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죽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감당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죽기까지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40일 새벽기도 하는 동안에,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과 같이, 보여주신 것처럼 “순종하는 40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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