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 말씀

어린 양을 바라보라 (히12:1~2) 2025.03.10

다이나마이트2 2025. 3. 10. 17:56

 

2025 새벽기도[1] 어린 양을 바라보라 (히12:1~2)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오늘부터 “어린 양을 바라보라”는 주제를 가지고, “2025년 작은 예수 40일 새벽기도“가 시작됩니다.
 
금년에는 새롭게 기획했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과 마지막 날은  제가 혼자 설교하고, 
나머지 모든 날들은 30-40대 젊은 목사님이 짧게 두 번을 설교하고, 50-60대 목사님들이 기도로 인도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혹시 ”나는 아무 것도 바라보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틀림없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바라보건, 물질을 바라보건, 명예를 바라보건,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바라보는 것“에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바라봄]을 통하여, 생각하고 묵상하고 더 알아가서, 
①그것을 기뻐하고, ②그것을 사랑하고, ③그것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신 예수를 바라봅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 어떤 [성화](예수님을 그린 그림)를 ”떠 올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분을 생각하며, 깊이 묵상하고, 
①”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의미는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원하고, 
②”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뻐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예수님]을 가리켜, [개정 번역]에서는 ”믿음의 주.“라고 번역을 했으나,
우리말 성경은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라고 선명하게 번역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 ”[우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의 대상이신, 내가 바라보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선물]이 나에게 찾아옵니까?
①[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을 바라볼 때, 
②[그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을 우리가 확인할 때, 
③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가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믿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창시자이신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 믿음]이 나에게 찾아옵니다.
또 [그 믿음]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점점 더 자라나서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믿음이 없는 분”도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고, “믿음이 성장한 분”도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제까지 믿음 생활을 잘했다.”는 분도 [오늘의 믿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언제나 현재 형이죠. [오늘의 믿음]이 없으면, 오늘 우리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에서 “바라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줍니다,
 
2절 후반부에,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념이나 기대를 따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①”물질적인 번영으로 바라보면, 교회는 그저 [성공 집단]이 될 뿐이고,
②“정치적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면, 교회는 [정치 집단]으로 전락합니다.
③또한 인간적인 위로로 바라보면, 교회는 [교제 집단]이 될 뿐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로 바라봤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고난 받는 메시아“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어린 양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고 계셨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소망을 따라, 예수님을 바라봤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12장 2절의 말씀에, 
①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담당하시고, 
②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요한계시록] 말씀에서, 
①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②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지만,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어린 양, 
--- 이런 예수님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11장에 보면,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한 [믿음의 선배]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그들은 고난과 핍박 속에 던져졌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며, 승리한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엄청난 고난 속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한 겁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출발이자, 전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에도 그 예수님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영적 싸움]을 ”경주“라고 비유했습니다.
12장 1절에, ”이와 같이 우리를 둘러싼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합시다.“(히12:1)
 
여기서 [경주]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매우 격렬한 진이 빠지도록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경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마라톤]과 같은 경기입니다.
 
먼 거리를 홀로 뛰려면, [짐]을 질 수가 없고, 모든 것을 벗어야 됩니다.
▶그 [짐]은 무엇입니까? 그 [짐]은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죄]는 ”우리가 [짐]을 지는 것“과 같이, ”[죄]는 얽매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죄]는 일상생활 속에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그 순간에, ”[죄]에 빠져든다.“는 것이니까, 매 순간마다 어린 양 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응시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죄에 얽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의 [눈]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갈망하죠.
전도서 1장 8절에,
”[눈]은 아무리 보아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귀]는 아무리 들어도 채워지지 않는구나.“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눈]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거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믿음의 원리]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2장 4절에, ”여러분이 죄와 싸웠지만, 아직 피를 흘릴 정도로 대항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는데,
어린 양을 바라볼 때 ”우리가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을 집중하여 바라볼 때, 우리는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 양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연단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7절에, ”연단을 견뎌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들들같이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연단하지 않은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히 12:07)
 
예수님을 바라볼 때, 아버지가 주시는 모든 연단 견뎌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모든 연단을 견디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에, 
”그러므로 여러분은 피곤한 팔과 연약한 무릎을 강하게 하십시오.“(히12:12)
 
▶여기서 ”강하게 하라.“는 [원리]는 뭡니까?
①그것은 어린 양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있고, 
②또 우리는 [연단]을 견뎌낼 수 있고, 
③또 우리는 [강]하게 변화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신체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①우리의 [눈]은 더 선명해지고, 
②우리의 [얼굴]은 더 밝게 될 것이며, 
③우리의 [어깨]는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며, 
④우리 연약한 [무릎과 발]도 더 견고하게 될 것이며, 
⑤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방향]도 더욱 정확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번 [40일]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여정]이 되기를 바라고,
이번 [40일]이, ”예수님을 올바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