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바라본 천상 (계4:1~11) 말씀: 이재훈 목사님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우리의 일상에서 천상을 볼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이 ”예배는 장차 다가올 종말을 현재에 연습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미래의 천국]이 현재로 들어오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드릴 때, [미래의 천국]을 현재에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4장에서, [땅에 대한 환상]에서 이제 ”하늘에 대한 환상“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천상의 모습]에서 본 것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천상의 예배]를 미리 보여주신 것은 ”지상에서도 예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이렇게 지루한 예배를 영원히 드린다고요?“라고 질문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천상의 예배]는 [지상의 예배]와 완전히 다릅니다.
[지상의 예배]는 따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천상의 예배]는 온전히 구원받는 백성들이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니까, 온전한 기쁨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4장은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서, [하늘의 장면]을 보고,
땅에 있는 우리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을 해 주는 말씀입니다.
[요한의 눈]을 사로잡은 첫 번째 모습은 ”하늘의 보좌“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앉아 있는 분은 ”벽옥과 홍옥 같고,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에메랄드 같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빛은 다양한 색깔이 비춰지고 있다.“고 했어요.
여기서 [무지개]는 노아와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의 증거“이고,
인류에 대한 진노를 자제하시겠다는 ”자비하심의 상징“입니다.
”또 보좌 둘레에는 24개의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는 24명의 장로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계4:4)
여기서 [24]라는 숫자는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표와 신약의 12 사도를 더하면, [24명]이고,
곧 옛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합한 것이므로,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는 숫자”인 것인데,
이것은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보좌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보좌 앞에는 ”수정처럼 맑은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다.“고 했는데,
예배에서 보좌 앞에 나아가려면, 바다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의 백성들은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요난 강을 건넜듯이,
[천국의 백성]들은 수정같이 맑은 바다를 건너, 보좌 앞에 건너가게 됩니다.
또 6-7절에, ”보좌 가운데와 보좌 둘레에 대표적인 동물들이 있는데,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는데,
[네 생물]은 모든 생물을 대표하는 [사자], 가장 강한 것을 상징하는 [황소], 가장 지혜로운 것을 상징하는 [사람],
가장 민첩한 것을 상징하는 [독수리]를 말합니다.
이 모든 만물이 보좌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데,
모든 백성들과 모든 만물들이 보좌를 중심으로 하여 예배드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지상의 예배]는 ”설교가 주된 내용“을 차지하지만, [천상의 예배]는 ”찬송이 주된 내용“이고,
[말씀이신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그분 앞에 드리는 찬송이 더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나타난 천상에서 [예배하는 모습]에서, [참된 예배]의 특징으로, 5가지를 설명합니다.
①첫째로/ [참된 예배]는 당신이 하나님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보는 것”이 참된 예배의 모습입니다.
②두 번째로/ [참된 예배]는 당신을 한 가정의 일원으로 한 회중의 일원으로 만듭니다.
때로 우리가 불가피하게 영상으로 예배를 드릴지라도,
나는 한 회중에 속하여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③셋째로/ [참된 예배]는 당신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새로운 것을 보게 합니다.
[참된 예배]를 경험하고 나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데,
[말씀과 찬송] 속에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는 “영혼의 눈에 띄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④넷째로, [참된 예배]는 당신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이 노래는 나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인해서, 드려지는 노래입니다.
⑤다섯 번째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진실로 그러합니다.”는 의미이고,
“다시 오신다는 주님의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응답하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하여, “그저 좋은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①[예배]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인지를 분명히 알고,
②[예배]는 그분이 행하신 일, 또 행하시기로 약속하신 일,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인가?”를 우리가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말씀에도 이런 반응을 했는데, [이사야 6장 3절]에 보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고 했어요.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거룩하심]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을 체험할 때,
우리는 그분의 높고 위대하심을 높여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때로는 우리가 처한 입장과 상관없이,
내 마음의 감정과도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 되게 예배해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의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하여 그분을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높여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에, “24명의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사시는 분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이시여,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의 기쁘신 뜻으로 인해 만물이 존재했고, 또 창조됐습니다.”(계4:10-11)
여기서 “보좌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비해, 우리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4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할 때 한 행위가 있습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린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주께서 씌워주신 거죠.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 면류관을 받는다.“고 할 때,
그것이 경쟁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고, ”모두의 기쁨과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천국을 바라보면, [천국]은 보이지 않아요.
[성경]에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을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①첫째로, [의]의 면류관이고,--- 믿는 자에게 주는 상,
②둘째로, [생명]의 면류관이 나오고,---순교자에게 주는 상,
③세 번째로,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목자에게 주는 상,
④네 번째로, [자랑]의 면류관이 있는데, ---성도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 자신이 천국 문에서 주님을 만날 때,
자랑스럽게 받을 수 있는 면류관은 곧 ”성도들“이라고 했으니, 우리는 자랑의 면류관이 영광스러운 것이죠.
그런데 [24 장로]들이 ”면류관을 주님 앞에 벗어드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클라이막스]인데, 그것은 주님 보좌 앞에 엎드렸을 때,
주님께서 기쁨으로 씌워주신 면류관조차도 주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되지 못하므로,
그것마저도 내려놓는 것이 [참된 천상의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참된 예배]란 우리가 쓰는 면류관조차 초점이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초점이 되고,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끝으로, 5장 14절에, ”이제 예배의 마지막은 네 생물이 [아멘]하고 화답했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로 끝이 납니다.
이것은 1세기 초대교회에 [예배의 모습]은 언제나 예배가 끝날 때면,
모든 회중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아멘]으로 응답하며, 예배를 마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것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라는 뜻이고,
”주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합니다.“라는 동의와 또 찬양의 고백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예배]입니다. 이런 [천상의 예배]를 우리가 경험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이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란 [자기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중심으로 다시 새롭게 보아야” 합니다.
[예배]란, 이런 훈련을 하기에,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일상에서 천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그분 앞에 엎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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